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정조실록21권, 정조 10년 4월 22일 을미 2번째기사 1786년 청 건륭(乾隆) 51년

몽고어 통역과 홍역의 처방에 대한 보고를 듣다

양의사(兩醫司)와 사역원 도제조를 불러 보았다. 이복원(李福源)이 아뢰기를,

"역관 중 한어(漢語)·청어(淸語)를 잘하는 사람이 물론 드뭅니다만, 몽고어를 통역하는 것에 있어서는 더욱 말이 아닙니다. 당장에는 비록 긴급히 관계된 일은 없습니다만, 이왕 그 방면의 학교를 설치하였으니, 이처럼 실효가 없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배울 책이 원래 매우 빈약하고 또 많이 산실되었다고 하니, 앞으로 사신이 갈 때에 몽학(蒙學)의 서적을 찾아 구입해 오고 몽역(蒙譯)과 몽고 사람과의 대화하는 방법도 유의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살펴서 지휘하는 책임은 오로지 사신에게 있으니, 이로써 신칙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임금이 말하기를,

"요즈음 홍역이 한결같이 치성하니, 의약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치료의 방법을 모를까 염려되어 방금 양의사(兩醫司)에 명하여 의원을 두고 약제를 준비하여 마음을 써 구제하라고 하였는데, 앞으로 실효가 어떨지 모르겠다. 대체로 홍역의 발생은 전적으로 중운(中運)의 객기(客氣)로 말미암은 것이고 그 치료하는 방법도 한결같지 않은데, 증세가 이미 다르기 때문에 약을 쓰는 길도 따라서 다른 것이다. 예로부터 의원 중 의술에 정통한 사람들은 반드시 운기(運氣)를 우선으로 삼아 홍역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통행되는 처방을 만들어 후일의 사용에 대비하는 자가 있었다. 그리고 홍역이 이미 발생한 뒤에 세운(歲運)을 살피고 시후(時候)를 참작하여 하나의 처방을 만들어 내어 만백성들에게 돌려 보인 자도 있었다. 올해의 홍역도 하나의 운기이니, 안팎에 의술을 업으로 삼은 숱한 사람들 중에 어찌하여 이러한 처방이 없고 이러한 사람이 없단 말인가? 전 지신(知申)082) 의 말이 물론 실정과 거리가 먼 것 같지만, 나는 의견이 없지 않다고 본다. 지금 만약 성심으로 널리 찾아 증세에 맞는 통행의 좋은 처방을 얻어 과연 널리 중생들을 구제하는 효과가 있을 경우 또한 큰 다행이 아니겠는가?"

하니, 혜민서 제조 이복원(李福源)이 말하기를,

"서울에 행세하는 의원들이 운기에 대해 꼭 잘 알지는 못할 것입니다만, 넓은 사방에 어찌 그러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하고, 전의감 제조 정창성(鄭昌聖)이 말하기를,

"영남은 본디 명의(名醫)가 많으니, 필시 이러한 처방에 유의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혜민서 제조 서유린(徐有隣)이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호남의 관찰사로 있을 때에 보았는데, 의술을 업으로 삼은 자들이 대부분 운기를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상당히 전해 익혔습니다. 지금 만약 널리 수소문한다면 또한 시험해 볼 만한 좋은 처방이 있을 듯합니다."

하였다. 이복원이 청하기를,

"묘당에서 두 도의 도신(道臣)에게 알리되, 사족(士族)이나 향품(鄕品), 그리고 고방(古方)·신방(新方)할 것 없이 운기에 정통하여 처방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을 경우 영읍(營邑)에 와서 바치면 그것을 경사(京司)에 올려 보내어 잘 만들어서 중외에 두루 시행할 자료로 삼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하교하기를,

"묘당으로 하여금 서울과 지방의 선비로서 의술을 업으로 삼은 자에게 두루 알리게 되면, 자기를 자랑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감추고 있는 처방을 스스로 와서 보고하기 어려울 것인데, 만일 가로막아 알리지 못하는 폐단이 있을 경우 조정에서 우리 백성을 위해 부지런히 자문하는 본의가 심히 아니다. 옛날에 파묻혀 있는 서적을 구하면서 벼슬을 제수한 일이 있었으니, 백성을 오래 살 수 있게 하는 좋은 처방이 있어 뚜렷한 공효가 있을 경우 그 공로가 어찌 파묻혀 있는 서적을 바친 것과 비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565면
  • 【분류】
    신분-중인(中人) / 보건(保健)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召見兩醫司及司譯院都提調。 李福源啓: "譯官之善爲語者, 固已鮮少, 而至於譯, 尤不成樣。 目下雖無緊關, 旣設其學, 不可如是無實。 本業冊子, 元甚零星, 又多散缺云。 來後使行時, 學冊子, 使之搜訪得來, 蒙譯與蒙人接語之道, 亦宜留意, 而照管指揮之責, 專在使臣。 謂以此申飭。" 從之。 上曰: "近日疹疫, 一向熾盛, 爲慮醫藥之失宜, 診治之昧方, 纔命兩醫司, 置醫設藥, 着意拯濟, 未知將來實效之如何, 而大抵疹疫之作, 專由中運之客氣, 其所治療之方不一, 症情旣殊, 藥路隨異。 從古醫人之精通術業者, 必以運氣爲先, 疹疫未出之前, 預作通行之方, 以備後日之用者有之。 疹疫已出之後, 察其歲運, 參以時候, 拈出一方, 輪示萬民者有之。 今年疹疫, 亦一運氣。 中外之許多業醫者, 何獨無此等之方, 此等之人哉? 前知申之言, 固似迂闊, 予則曰不無意見。 今若誠心廣求, 得對症之通行良方, 果有普濟群生之效, 則不亦大幸?" 惠民署提調李福源曰: "京裏行世之醫, 運氣未必曉解, 四方之廣, 豈無其人乎?" 典醫監提調鄭昌聖曰: "嶺南, 素多名醫, 必有留意於此等方文者矣。" 惠民署提調徐有隣曰: "臣曾按湖南時見之, 則業醫者多主運氣, 人頗傳習。 今若廣加搜問, 則亦似有合試之良方矣。" 李福源請自廟堂, 行會於兩道道臣, 無論士族鄕品與古方、新方, 如有精通運氣, 搆出方文之人, 則使之來呈營邑, 轉上京司, 以爲爛加裁擇, 遍施中外之地。" 從之。 敎曰: "令廟堂, 遍諭京外儒士之業醫者, 恥其自衒胥靡之藏方者, 難於來告, 若有閣而未達之弊, 甚非朝家爲吾民勤諮之本意。 古有求逸書除官之事, 苟獲壽民良方, 行之有灼然之效, 其功豈比逸書之來獻乎?"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565면
  • 【분류】
    신분-중인(中人) / 보건(保健)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