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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 4월 10일 계미 2번째기사 1786년 청 건륭(乾隆) 51년

홍역이 유행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다

이때 진두(疹痘)077) 가 매우 심하게 유행하였다. 하교하기를,

"홍역을 비는 제사는 비록 과거의 사례가 없으나, 먼저 해조로 하여금 대략 을미년의 사목을 모방하여 여제(厲祭)를 지내기 하루 이틀 전에 날을 가려 향(香)을 받게 하라. 비록 절제(節祭)가 아니라도 먼저 성황(城隍)에 고하는 것은 본래 응당 행해야 할 법이니, 발고제(發告祭)를 지내고 나서 각부(各部)의 중앙에서 여제를 지내되, 지방 고을에도 일체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

하였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사부(四部)의 여제는, 동쪽엔 왕십리(往十里), 서쪽엔 홍제원(弘濟院), 남쪽엔 석우(石隅), 북쪽엔 절제(節祭)의 처소 이외에 별도로 여단(厲壇)이 있으니, 지금 이에 의하여 하겠습니다. 발고제는 봉상시에서 받드는 성황의 위패를 관례에 따라 모시고 가겠습니다만, 사교(四郊)의 제사는 성황 및 무사 신위(無祀神位)는 하나뿐이므로 나누어서 제사를 지낼 수 없기 때문에 그전부터 지방(紙榜)에다 써서 제사를 지낸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절제의 제문 가운데 ‘당처 성황지신(當處城隍之神)’이란 말이 있으니, 이번 사교에 제사를 지낼 때에 지방에다 ‘모교 성황 신위(某郊城隍神位)’라고 쓰고, 무사 신위는 모두 설치할 필요가 없습니다. 15개 위패도 지방으로 무사 신위라고 써서 매 단마다 좌우로 지방 하나씩 나누어 설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춘추 절제 때에 성황의 신위에는 축문이 없고 별기양제(別祈禳祭)는 이왕 폐백(幣帛)이 있으니, 축문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문관으로 하여금 짓게 하소서. 성황의 헌관은 이미 중신(重臣)을 차출해 보내라는 명이 있었으니, 무사 신위의 헌관은 음관(蔭官) 중 4품 이상으로 차출해 보내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하교하기를,

"예조 판서의 말을 들으니, 태상(太常)의 제품(祭品) 규식은 원래 사교의 여단제가 있었는데, 근래에는 북교(北郊)의 한 곳에 절제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동·서·남 세 교외는 반드시 별제로 인해 한다고 하였다. 사교의 여제 헌관은, 을미년에는 절제의 사례를 적용하였고, 그 이전의 별제는 모두 중신으로 차출하였다고 하니, 다르게 해서는 안된다. 사교의 별여제 헌관은 일체 옛날의 사례에 따라 중신으로 차출하고, 지방 고을은 측근의 신하를 보낸 사례가 있으며, 또한 도내의 문관 수령으로 차정한 사례가 있는데, 측근의 신하를 별도로 보낼 경우 바쁜 농사철에 음식을 제공하느라 도리어 민폐를 끼칠 뿐만 아니라, 이미 각 고을에서 사세를 보아가며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특별히 문관 수령으로 차정할 필요가 없다. 해조에서 잘 알아 알리도록 하라."

하였다. 봉상시에서 아뢰기를,

《제물등록(祭物謄錄)》을 소급해 상고해 보니, 임진년 4월에 별도로 기양제를 지냈는데, 북교에다 성황의 위패를 두고 지냈으며, 그 제단은 창의문(彰義門) 밖에 있었습니다. 임자년 5월에 별여제(別厲祭)를 동·서·남의 교외에다 지냈는데, 동단은 왕십리에, 서단은 홍제원에, 남단은 석우(石隅)에 있었습니다. 을미년 8월에, 전쟁에 죽은 명나라 장사(將士)를 민충단(愍忠壇)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그 단이 홍제원에 있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동·서·남교의 별여제는 흉년이 들었다고 하여 특별히 명하여 조정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64면
  • 【분류】
    보건(保健)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時疹痘熾行。 敎曰: "疹痘禳祭, 雖無已例, 先令該曹, 略倣乙未事目, 厲祭一兩日內, 卜日受香。 雖非節祭, 先告城隍, 自是應行之典。 發告祭設行, 仍設勵祭於各部中央處。 外邑, 一體設祭。" 禮曹啓言: "四部勵祭, 東則徃十里, 西則弘濟院, 南則石隅。 北則節祭處所外, 別有厲壇, 今當依此爲之。 發告祭, 則奉常寺所奉城隍位版, 依例陪進, 而四郊祭, 則城隍及無祀神位, 只是一版, 無以分設, 自前有紙榜行祭之例。 且於節祭祭文中, 旣有使當處城隍之神句語, 今此四郊祭時紙榜, 書以某郊城隍神位, 無祀神位, 則不必盡設。 十五位版, 亦以紙榜, 書無祀神位, 每壇左右, 分設一榜似好。 春秋節祭時, 城隍位, 則無祝文, 而別祈禳祭, 則旣有幣帛, 宜有祝文。 請令藝文館撰出。 城隍位獻官, 旣有差遣重臣之敎。 無祀位獻官, 以蔭官四品以上差送爲宜。" 從之。 敎曰: "聞禮判言, 太常祭品式例, 元有四郊厲壇祭, 而近來則北郊一處, 只行節祭。 至於東西南三郊, 必因別祭云。 四郊厲祭獻官, 乙未年, 則用節祭例, 伊前別祭, 皆以重臣塡差云。 不可異同。 四郊別厲祭獻官, 一依古例, 以重臣塡差, 外邑則有遣近臣之例, 亦有道內文守令差定之例, 而別遣近臣, 非但方農, 廚傳反貽民弊。 旣自各該邑, 觀勢設祭, 則不必以文守令別差。 該曹知悉行會。" 奉常寺啓言: "溯考《祭物謄錄》, 則壬辰四月, 設別祈禳祭, 而行城隍位於北郊, 壇在彰義門外。 壬子五月, 行別厲祭於東西南郊, 而東壇在徃十里, 西壇在弘濟院, 南壇在石隅。 乙未八月, 天朝戰亡將士, 祭於愍忠壇。 壇在弘濟院。" 又曰: "東、西、南郊別厲祭, 歲凶, 特命賜祭云。"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64면
  • 【분류】
    보건(保健)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