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처리에 대해 논의하다
처음에 평안도 관찰사 정일상(鄭一祥)이 아뢰기를,
"용천부(龍川府)의 미곶진(彌串鎭) 신도(薪島)는 육지와의 거리가 60리(里)입니다. 저쪽 사람들이 늘 와서 물고기를 잡아가기 때문에 본부에서 관례대로 장교(將校)를 보내어 수색해서 토벌하게 하였는데, 장교들이 말하기를 ‘은밀히 신도에 들어온 저쪽 사람이 5백 88명이고 크고 작은 배가 30여 척이며 초막(草幕)이 40여개 소(所)입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지난해에 봉성장(鳳城將)이 보낸 공문에 ‘공문이 없이 국경을 넘어간 자는 보는 대로 죽이라.’라고 하였다는 뜻으로 타이르고 또 봉성장이 얼음이 녹으면 나와서 모조리 체포하겠으니, 너희들은 죽을 것이다. 빨리 본토로 돌아가라고 하자, 저쪽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곳의 어장(漁場)은 천하에서 가장 좋기 때문에 재물을 털고 힘을 들여 이렇게 무릅쓰고 왔으니, 가을까지 시한을 봐주었으면 한다.’고 하였으나, 실은 철수할 의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사가 그 진의 첨사와 같이 포수 3백여 명을 거느리고 섬으로 들어가 위엄을 보여 기어코 쫓아내려고 합니다만, 신도에 와 있는 이 호인(胡人)들은 쫓으면 갔다가 다시 돌아온 지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지금 만약 한결같이 완고하게 굴면서 끝내 철수해 돌아가지 않을 경우 사세상 전쟁을 해야 하겠으나, 조정에서 명하지 않으면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종전에 마음을 써서 쫓아내지 못하였고 지금 수령의 치계에 도리어 그만두자고 청하려 하였으니, 허물을 남에게 떠넘기려는 흔적이 있어 매우 타당치 않은 일이므로 경을 추고하겠다. 묘당으로 하여금 회계(回啓)하게 하라."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정일상이 아뢰기를,
"수군 방어사 유진숙(柳鎭淑)과 용천 부사 이윤빈(李潤彬) 등이 그들을 수색하여 토벌하기 위해 신도에다 배를 정박해 놓고 그의 두목 호인을 불러 두 나라간에 맺은 조약을 보이자, 그 역시 잘못인 줄을 알고 있다고 말하였으나, 끝내 돌아갈 의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쫓아내는 방법은 소굴을 없애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여 그들의 초막과 새로 만든 배와 어망 따위를 모두 불태웠습니다. 그러자 배를 탄 자들은 먼저 돌아가고 배가 갯벌에 걸린 자들은 미처 떠나지 않았는데, 관병(官兵)이 섬에 머물러서 기어코 모두 쫓으려고 합니다."
하니, 묘당에서 또 신칙하였다. 하교하기를,
"그들을 쫓아내도 안될 것은 없으나, 끝내 가볍게 서둘었다. 그리고 매월마다 세 차례씩 수색하여 토벌하는 것은 본래의 떳떳한 법인데, 여러 해 동안 모여 살아 소굴이 이미 조성되었으니, 지난해 겨울 이후에 모두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사리상 우리 나라의 기강을 먼저 수립해야만 저쪽 사람들이 넘어오는 것을 책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묘당에서는 자체를 반성하는 방도는 의논해 보지도 않은 채 저들을 책망하는 것이 혹 완만해질까 염려만 하고 있으니, 변방의 대비책이 과연 이런 것인가?"
하였다. 정일상이 또 그들을 모두 쫓아냈다는 상황을 치계하니, 임금이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에게 문의하고, 도신(道臣)·수신(帥臣)과 수신(守臣)을 처벌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판중추부사 서명선이 말하기를,
"지레 먼저 소굴을 불태운 것은 정말 경솔한 잘못을 저질른 것입니다. 지난해에 봉성장이 보낸 공문에 ‘보는 대로 죽이라.’라는 말이 있었으니, 무력을 사용한 것은 논할 것이 없으나, 소굴을 소탕하는 것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정사입니다. 만약 이 일로 도신과 수신을 처벌한다면 후일 그들을 토벌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리고 일찍 발각하지 못해서 힘을 들여 쫓아낸 것은 그 폐단의 원인을 상세히 상고하여 엄중히 처벌하여 후일을 징계하는 방도가 없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고, 판중추부사 이복원은 말하기를,
"이번에 신도에 와서 살았던 저쪽 사람들은 일시적으로 왕래하는 사람과는 다르니, 쫓아낼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무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하여도 됩니다. 그러므로 수령과 변장이 신도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도신과 묘당에 의논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은 채 신도에 들어간 뒤에 갑자기 제멋대로 초막을 불태우고 배를 불태우기까지 하였으니, 처음에 이미 소홀히 하였고 끝내 또 경솔하였으니, 처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 영의정 정존겸은 말하기를,
"이 일을 감영이나 병영에 보고하지 않고 그때 임시로 제멋대로 처리하였으니, 정말 경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을 따져 보면 오로지 토벌이 실행되지 않은 것과 일찍 발각하지 못한 것으로 말미암아 결국 군사를 동원하여 불태우는 일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도신과 수신이 먼저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변방의 금법이 엄하다 하더라도 국가의 기강 중에 하나이다. 국가의 기강이 확립되면 변방의 금법은 엄하게 하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히 엄해질 것이다. 이번 용천의 일은 나의 생각에 국가의 기강에 크게 관계된다고 여긴다. 어찌 경솔하다고만 말할 수 있겠는가? 쫓아낸다고 명목을 붙였으면 배와 초막을 불태우는 것도 점잖은 것이다. 크게는 자문을 보내도 되고 급보를 보내도 되며, 작게는 한 고을의 병력을 동원하여 그들의 소굴을 쓸어버리고 그 무리를 섬멸해도 안될 것이 없다. 그런데 이미 조정이 지휘해 줄 것을 청하였으니, 그 뒤의 일은 공순히 회답을 기다려야 할 것이지 어찌 감히 제멋대로 일을 하고 함부로 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애당초 장계의 말 중에 ‘의리로 타이르고 위엄으로 협박하겠다.’고 한 것부터 이미 마음대로 한 죄를 면하기 어려웠다. 설사 저쪽 사람들이 잘못을 알고 철수해 돌아가더라도 안될 말인데 더군다나 이보다 더 큰 일이겠는가? 저들이 비록 다른 종족이지만 그 역시 사람이다. 만약 타일러서 움직일 수 없을 경우 어찌 처리할 방법이 없겠는가? 그런데 지금 피차의 힘이 강하고 약하다는 것만 믿고 일시의 보고 듣는 사람을 시원스럽게 하기에 힘을 썼다.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불길이 사방으로 번져서 아름드리의 재목과 큰 고기 그물이 모두 불속으로 들어갔는가 하면 불길이 지나는 곳에는 닭과 돼지도 없어져 수백 명의 장사꾼으로 하여금 발을 구르며 도망가게 하였다. 그 광경을 상상해 볼 때 나의 백성들과 다름이 없다. 이는 하찮은 인(仁)에 얽매여서 이렇게 하교한 것이 아니다. 충신(忠信)의 교훈이 어찌 이런 것을 용납하겠는가? 저들이 비록 위엄에 두려워서 영원히 보이지 않더라도 정말 이른바 이기기는 하고도 무용(武勇)이 아닌 것인데 더구나 그들이 조만간에 다시 온다는 것은 명약관화하고 기회를 틈타 분풀이를 하는 것은 이치상 오게끔 되어 있는데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앞으로 변방의 어디에서나 말썽이 생길 것이다. 이때에 가서는 비록 10여 명의 용천 부사와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를 괴롭혔다는 항의를 막게 하더라도 해만 있고 이익은 없을 것이다. 가령 이 조치가 전적으로 용천 부사의 독단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도신과 수신은 그때마다 논죄해야 하고 또 도신과 수신이 익히 의논하여 지시한 것이라면 어찌하여 묘당에 한 마디의 공문도 보내지 않았는가? 지난해 그들을 쫓을 때에 쫓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조정을 속인 것이었다. 지금 소문이 전파된 뒤에 속인 죄를 엄폐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격문을 보내려고 하였는데, 교묘하게 꾸미려다가 도리어 졸렬해져 두서너 읍진을 시끄럽게 보고하여 파직되었다. 변방 소식은 엄밀(嚴密)히 해야 한다는 것을 헤아려 보지 않아 이웃 고을에 소요가 일어나게 하였으니, 심하게 모순되었고 극도로 잘못하였다. 지방 곤수들이 국가의 기강을 이처럼 두려워하지 않은데 고을 수령과 진의 장수가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어떻게 책망하겠으며, 또 저쪽 사람들이 함부로 금법을 범하는 것을 어떻게 책망할 수 있겠는가? 도신·수신(帥臣)·지방관이 어떻게 중한 처벌을 모면할 수 있겠는가? 신관과 구관을 맞이하고 보내는 폐단은 비록 말할 것조차도 없으나, 말하는 자들이 ‘만일 수색 토벌의 일로 인해 처벌을 받을 경우 변방의 금령이 해이될까 염려된다.’고들 한다. 정말 그러할 경우 우환을 염려하는 의의에 부쳐 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되겠다. 평안 감사 정일상, 병사 이한태(李漢泰)는 함사(緘辭)026) 를 받아 엄중히 추고하고, 용천 부사 이윤빈은 우선 녹봉 10등을 감하고, 선천 부사 유진숙은 바다에서 지체한 것으로 보면 그가 당황하여 일을 회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겨를에 예속된 진과 수령들에게 계획과 지시를 내릴 수 있겠는가? 관직이 상관이므로 처벌을 요행히 모면하기 어렵다. 앞으로 나가지 못한 죄는 결국 대충 넘길 수 없다. 이 건은 수색 토벌에 관계가 없는데, 지금 과격한 의논을 견지하는 사람도 여기에 대해서 시비가 없는 것 같다. 의금부로 하여금 잡아다 문초하여 처리하게 하라. 수토가 중간에 폐지된 것은 별도로 조사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아무튼 그 도로 하여금 연조(年條)를 상고해서 이름을 지적해 장계를 올리게 하라. 말하는 자들이 또 ‘지금 이미 쫓아버렸으니, 무사하겠다.’고들 하나, 이익을 따라가는 것은 죽음도 피하지 않는데 어찌 일시의 위협이 두려워서 다시는 우리 땅을 한 발자국도 엿보지 않겠는가?
대체로 신도는 여도(輿圖)에 우리 나라에 속해 있으나 길은 저들의 강토와 매우 가깝다. 우리는 구도하(九渡河)의 어려움이 있지만 저들은 배 한 번 타면 빠르게 건널 수 있다. 토질의 비옥과 어물의 풍부가 천하에서 제일가는데, 버린 땅으로 여기는 우리들과 꼭 차지하려고 하는 저들의 세력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땅과 그 땅이 저절로 철(鐵)의 한계가 이루어졌으니, 물론 떼어서 줄 수는 없다. 한번 떼어준다면 다시는 그들의 끝없는 욕심을 채워주기 어려우므로 오늘날의 계책은 배척하여 단절하느니만 못하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관서의 강가에 접해 있는 일곱 고을과 관북의 들판에 가로막혀 있는 6진 등의 인접한 지역은 잇달은 거처가 한이 없는데다가 옷의 띠처럼 가는 강이 끼어 있어 연기가 서로 바라다 보이고 있으나 이로 인해 말썽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신도가 읍의 소재지와 1백 리 떨어졌지만 백성들과의 거리가 1사(一舍)027) 이고 보면 또 무엇 때문에 가까운 곳만 살피고 먼 곳은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른바 자문을 보내고 급보를 보냈다는 설은 결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 나라의 기강을 닦아 밝혀서 저쪽과 이쪽 사람들로 하여금 함부로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뚜렷이 알게 해야 할 것이다. 하필 총을 쏘아 섬멸하고 활을 쏘아 죽이고 또 뒤따라 그물과 배를 불태워야만 마음에 시원스럽고 국가에 이롭다고 하겠는가? 앞으로 한 달에 세 번 수색 토벌하는 제도를 회복하여 그들이 오면 내쫓고 오지 않으면 놔두어야 할 것이니, 당면한 계책은 여기에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묘당의 의논도 다른 견해가 없으면 이를 본도에 알리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22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57면
- 【분류】군사-관방(關防) / 외교-야(野)
○庚戌/初, 平安道觀察使鄭一祥啓言: "龍川府之彌串鎭 薪島, 距陸爲六十里。 彼人每來漁採, 故自本府, 如例送校搜討矣。 將校等言: ‘彼人之潛接本島者, 爲五百八十八名。 船大小三十餘艘。 草幕四十餘所。’ 卽以昨年鳳城將移牒有曰: ‘無公文犯境者, 逢輒殺之。’ 之意, 諭之, 又以鳳城將, 待氷解出來勦捕, 汝等竝爲魚肉。 須卽速還本土云爾, 則彼人等以謂: ‘此地魚場, 爲天下第一, 故傾財費力, 有此冒犯。 願限秋寬暇。’ 而實無意撤還。 故該府使, 與該鎭僉使, 方率砲手三百餘名, 入島盛威, 期於逐送, 而此胡之來接本島者, 驅去復來, 積有年所。 今若一直肆頑, 終不撤歸, 則勢將失石從事, 而如非朝命, 不敢擅便。" 云。 敎曰: "向來追逐, 旣不能着意。 及今該守之馳報, 反欲請罷。 跡涉委咎, 事極未妥, 卿則推考。 令廟堂回啓。" 未幾, 一祥啓: "水軍防禦使柳鎭淑、龍川府使李潤彬等, 以搜討事, 船泊薪島, 招其頭目胡人, 示兩國約條。 渠亦曰知罪, 而終無歸意。 故念其追逐之道, 莫如勦巢, 乃於草幕及新造船漁網之類, 幷燒之, 則其乘船浮水者, 先歸船, 掛泥坂者未及去, 官兵留島中, 期於盡逐。" 廟堂又飭之。 敎曰: "追逐固無不可, 而燒船焚幕, 終涉輕先。 且月三搜討, 自是常典, 而屯聚多年, 巢穴已成, 決知非昨冬以後未盡追逐也。 事當先修我國之紀綱, 然後方責彼人之犯禁。 廟堂未嘗議到於反己之方, 而惟恐責彼之或緩, 籌邊之策, 果如是乎?" 一祥又啓盡逐狀。 上詢時、原任大臣, 欲罪道、帥臣與守臣。 判中樞府事徐命善以爲: "徑先焚蕩, 誠有妄率之失。 昨年鳳城將之馳通, 旣有逢輒銃殺之語, 兵器從事, 雖非可論, 掃蕩窩窟, 亦係不可已之政。 若以此勘罪道帥臣, 則日後搜討。 恐難措手, 至於發覺未早, 費力追逐, 則溯其弊源, 不可無重勘懲後之道。" 判中樞府事李福源以爲: "今此薪島來接之彼人, 與一時往來有異。 苟有可逐之方, 則兵刃之外, 皆可從事守令、邊將, 所當於入島之前, 先爲議定於道臣及廟堂, 而不此之爲, 乃於入島之後, 倉卒擅便, 至於燒幕、燒船之境, 初旣踈忽, 終又妄率, 不可無罪。" 領議政鄭存謙以爲: "此事之不報營閫, 臨時擅便, 誠爲妄率, 而究其本, 則專由於搜討不行, 發覺未早, 終至於動軍焚燒之擧。 道、帥臣宜先受罪云。" 上曰: "邊禁雖嚴, 卽國綱中一事。 國綱立, 則邊禁不期嚴而自嚴。 今番龍川事, 予則以爲大係國綱。 奚但曰妄率而已乎? 名以追逐, 則燒船焚幕, 猶涉雍容。 大而移咨可也, 馳通可也。 小則動一邑之兵, 蕩其巢穴, 殲厥種落, 亦無所不可。 而旣請朝家處分, 向後擧行, 但當恭竢回下, 豈敢擅便從事, 輕易下手乎? 厥初狀辭中, 以義喩之, 以威脅之云云, 已難免自專之罪。 設令彼人知罪撤歸, 尙云不可, 而況大於此之擧措乎? 彼雖殊類, 卽亦人耳。 苟不能曉, 譬以動得, 則處置豈患無方? 而今乃徒恃兩力之强弱, 務快一時之觀聽。 積薪厝火, 烟焰四漲, 連抱之材, 巨鱗之網, 盡入煨爇之中, 鬱攸所過, 鷄犬亦空, 使數百商人, 頓足鼠竄。 想來光景, 無異吾民。 此非區區於小仁而有是敎也。 忠信之敎, 豈容若是? 彼雖畏威永遁, 眞所謂勝之不武, 伊況早晩重來, 灼若觀火, 乘機逞憤, 理所必至? 繼今邊門, 竊恐無往而不生釁。 當是時也, 雖使十百輩龍倅, 以塞其困我之嘖言, 只見其無益, 而有害也。 藉令此擧, 專出龍倅之獨辦, 爲道、帥臣者, 宜有登時論勘, 又若道、帥臣所爛議, 而授計者, 何無一言關由於廟堂也? 前冬追逐時, 不逐曰逐, 是欺朝廷也。 及今傳聞轉播之後, 偸鈴之罪, 自知難掩, 囊檄之謀, 欲巧反拙, 數三邑鎭, 紛然啓罷。 不揆邊奇之嚴密, 以致隣藩之繹騷, 矛盾甚矣, 妄錯極矣。 藩閫之不畏國綱如此, 何責乎邑倅、鎭將之不守法? 又何責乎彼人之冒干禁條乎? 道、帥臣地方官, 焉逭重勘? 而迎送爲弊, 雖不足恤, 說者以爲: ‘若因搜討事坐勘, 恐致邊禁之解弛。’ 審如是也, 付之慮患之義, 宜念含垢之方。 平安監司鄭一祥、兵使李漢泰緘辭, 從重推考。 龍川府使李潤彬, 姑先越俸十等。 宣川府使柳鎭淑, 觀於洋中逗遛, 可知其慌亂避事。 奚暇節度方略於屬鎭守宰乎? 官是上官, 罪難倖免。 不能前進之罪, 終不可歇。 看此一款, 無關於搜討, 今之持峻議者, 亦似無雌黃。 令該府, 拿問處之, 搜討之中廢, 不可不另行査究, 第令該道, 考出年條, 指名狀聞。 說者又以爲: ‘今已追逐, 可謂無事。’ 而利之所趨, 死猶不避, 夫豈畏一時嚇喝, 更不敢窺我境跬步地乎? 大抵薪之爲島, 輿圖雖屬於我方, 道里偏近於彼壤。 在我有九渡河之難, 在彼有一抗葺之捷。 土沃而魚肥, 冠於天下, 豈必以我等棄之地, 較彼必爭之勢乎? 然此疆爾界, 自成鐵限, 固不宜割而與之。 一與之, 更難充谿壑之慾, 爲今之計, 莫如斥絶, 而且思之, 關西之沿江七邑, 關北之隔坪六鎭, 諸凡地相隣, 而居相接者何限, 隔一衣帶之水, 幾乎烟火互望, 而未曾聞, 因是生釁。 本島距邑治爲百里, 距民衆爲一舍, 則又何爲而察近而忽遠耶? 今所謂移咨馳通之說, 決知爲知一, 未知二也。 但當修明我國之紀綱, 使彼我之人, 逈然知不可冒犯, 斯其可矣。 何必放銃而殲殪, 抽矢而勦滅, 又從以焚其網、燒其船, 方可謂快於心而利於國乎? 從今申復月三搜討之制, 來則逐之, 不來則已之, 目下籌策, 似無出此。 廟議如無異同之見, 以此行會本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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