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정사 안춘군 이침과 부사 이치중이 북경에 다녀온 것을 보고하다
동지 정사 안춘군(安春君) 이침(李烿)과 부사 이치중(李致中) 등이 치계(馳啓)하기를,
"신 등이 12월 22일에 북경에 도착하여 예부(禮部)로 나아가 표문(表文)을 바쳤습니다. 예부에서 말하기를 ‘대신 화신(和珅)이 「24일은 장가불(張家佛)의 생일이므로 황제께서 친히 송죽사(松竹寺)에 가실 것이니, 사신은 어가를 맞이해야 한다.」고 하였다.’ 하기에 신 등이 그날 신무문(神武門) 밖에 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황옥교(黃屋轎)를 타고 나오자, 예부 상서 덕보(德保)가 앞에 나아가 아뢰기를, ‘조선의 사신이 어가를 맞이합니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황제가 묻기를 ‘그대의 국왕은 편안하신가?’ 하기에 신 등이 ‘편안합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뒤 사흘이 지나 예부에서 홍려시(鴻臚寺)로 나아가 유구국(琉球國) 공사(貢使)와 연의(演儀)에 참석하였고 그믐날 보화전(保和殿)에서 제석연(除夕宴)이 있었는데, 신 등을 유구국의 사신 윗자리에다 앉히었습니다. 정월 초하루의 하례는 일식이 있다고 하여 하지 않았습니다. 8일에 황제가 자광각(紫光閣)에다 세수연(歲首宴)을 설치하고 신 등으로 하여금 참석하라고 하였는데, 광대들이 희극을 벌였고 신 등에게 차등 있게 비단을 하사하였습니다. 10일에 황제가 원명원(圓明園)에 거둥하였는데, 신 등은 삼좌문(三座門) 밖에서 전송하였습니다. 화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아뢰자, 황제가 눈여겨 보았습니다. 그 뒤 며칠이 지나 신 등을 군기방(軍機房)으로 나오라고 부르더니, 예부 시랑 달춘(達春)이 노란 쟁반에다 백옥여의(白玉如意) 1개, 옥기(玉器) 2개, 파리기(玻璃器) 4개, 벼루 2개, 견전(絹箋) 2속(束), 필묵(筆墨) 각 2갑을 담아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황제께서 친히 골라 국왕에게 보내라고 한 것이다.’고 하기에 신 등이 경건히 받았습니다. 상원(上元)의 새벽에 신 등이 광명전(光明殿) 뜰 위의 자리에 들어가 방생희(放生戱)를 관람하고 정오가 지나서 또 산고수장각(山高水長閣)에 들어갔는데, 달춘이 신 등을 인솔하여 어좌의 앞에 이르러 한 번 꿇어앉아 세 번 머리를 조아리게 하였는데, 이는 하사품에 대한 사례였습니다. 각저기(角觝技)를 관람하고 잠시 물러나와 있었는데, 합등(盒燈)·포장(炮𤍤)·추천(鞦韆) 등 여러 희극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날 예부 시랑이 원명원으로부터 와서 황제의 칙지를 선포하였는데, 신 등으로 하여금 시를 지어 올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신 등이 각각 칠언 율시(七言律詩) 한 수씩 지어 올렸습니다. 예부 상서 덕보가 신 등의 시를 보고 드디어 화답하고는 또 신 등에게 화답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 며칠이 지나 신 등이 군기방에 나가자, 덕보가 황제의 분부라고 하면서 신 등에게 각각 비단·붓·먹 등의 물품을 주었는데, 시를 지어 올린 것에 대한 상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황제가 산고수장각으로 거둥하자, 덕보가 신 등을 인솔하고 어좌에서 몇 걸음 안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황제가 말하기를 ‘그대들은 시를 잘 짓는구나.’ 하니, 덕보가 신 등으로 하여금 머리를 조아리게 하였습니다. 황제가 또 말하기를 ‘지금 국왕에게 물품을 주었는데, 길이 멀므로 사신을 보내어 사례할 것이 없다고 돌아가서 전해야 할 것이다.’ 하기에 신 등이 예절대로 대답하니, 덕보가 머리를 조아리게 하였습니다. 또 내반(內班)에 앉아 등희(燈戱)를 관람하게 하였는데, 황제가 음식물을 하사하였습니다. 날이 저물어지자 황제가 들어갔습니다. 덕보가 신 등으로 하여금 따라 들어가라고 하기에 들어가 보니, 작은 호수가 있었는데, 봄 얼음이 녹지 않았습니다. 황제가 설마(雪馬)를 탔는데, 모양이 용주(龍舟)와 같았습니다. 신 등도 설마를 타고 호수를 건너 언덕으로 올라가자, 황제가 경풍도(慶豊圖)로 들어가 누각의 아래에 앉았는데, 등뒤에 유리병(琉璃屛)이 쳐져 있었습니다. 화신이 신 등을 인솔하여 계단에다 앉히고 등희(燈戱)와 광대들의 갖가지 희극을 열었는데, 얼마 있다가 물러났습니다. 그 다음날 신 등이 내무부(內務府)와 무비원(武備院) 등의 아문에다 세폐(歲幣)025) 의 토산물을 바치고, 표문은 내각(內閣)에서 청나라 말로 번역하여 올렸습니다. 28일에 칙지가 내렸는데, 통관(通官)이 정월 초하루의 하례는 일식으로 인해 중지하고, 2월 5일에 황제가 전(殿)에 올라가 하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예부에서 ‘조선과 유구의 사신이 백관을 따라 예를 거행할 것을 아뢰어 윤허를 받았습니다. 그날에 이르러 태화전(太和殿)에 들어가 예를 행하였습니다. 예가 끝나자, 신 등을 2품의 반열 끝에다 앉히고 낙다(酪茶)를 하사하였습니다.’ 듣자 하니, 황제가 앞으로 남해자(南海子)에 거둥하여 사냥을 하고 또 서산(西山)에도 가며 또 태원부(太原府)의 오대산(五臺山)에 거둥하여 분향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오대산은 연경에서 7백 리라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556면
- 【분류】외교-야(野)
- [註 025]세폐(歲幣) : 매년 음력 10월에 중국에 가는 사신이 가지고 가는 공물.
○冬至正使安春君 烿、副使李致中等馳啓言: "臣等十二月二十二日, 到北京, 詣禮部呈表文。 禮部言: ‘大臣和珅以爲: 「二十四日, 卽張家佛生日, 皇帝親幸松竹寺, 使臣當接駕。」 臣等伊日, 詣神武門外等候。 皇帝乘黃屋轎出, 禮部尙書德保前奏曰: ‘朝鮮使臣接駕矣。’ 皇帝問曰: ‘儞國王平安乎?’ 臣等謹對曰: ‘平安矣。’ 越三日, 禮部令詣鴻臚寺, 同琉球貢使演儀, 除日參除夕宴於保和殿, 坐臣等於琉球使之上。 正朝賀, 以日食免。 初八日, 皇帝設歲首宴於紫光閣, 令臣等入參。 設倡優襍戲, 賜臣等緞疋有差。 初十日, 皇帝幸圓明園, 臣等祗送于三座門外。 和珅指點而奏, 皇帝注視之。 後數日, 召臣等詣軍機房, 禮部侍郞達春, 以黃盤, 盛白玉如意一、玉器二、玻璃器四、硯二、絹箋二束、筆墨各二匣, 授之曰: ‘此乃皇上親揀送于國王也。’ 臣等祗受。 及上元曉, 臣等入光明殿陛上班次, 觀放生戲。 過午, 又入山高水長閣。 達春引臣等, 至御座前, 行一跪三叩頭, 謝珍賜也。 觀角觝技乍退, 設盒燈、炮𤍤、鞦韆諸戲。 越翌日, 禮部郞自圓明園, 來宣皇旨, 令臣等製詩以進。 臣等各製七言律一首以進。 禮部尙書德保, 要見臣等詩遂和, 而又要臣等和之。 後數日, 臣等詣軍機房, 德保, 以皇旨, 賜臣等各緞絹筆墨等物, 賞應製詩也。 少頃, 皇帝御山高水長閣, 德保引臣等, 入違御座數步。 皇帝曰: ‘儞們善詩矣。’ 德保令臣等叩頭。 皇帝又曰: ‘今有贈於國王, 而道途遙遠, 不必專价致謝, 歸傳可也。’ 臣等對如禮。 德保令叩頭, 又令坐內班, 觀燈戲。 皇帝賜饌。 向晦, 皇帝入。 德保令臣等隨入, 有小湖, 春氷未泮。 皇帝乘雪馬, 狀如龍舟。 臣等亦乘雪馬, 涉湖登岸。 皇帝入慶豐圖, 坐於樓下, 背設琉璃屛。 和珅引臣等, 坐陛上。 設燈戲, 及倡優雜戲。 須臾退。 翌日。 臣等交納歲幣方物於內務府、武備院等衙門, 表文自內閣, 翻淸入奏。 二十八日, 旨下通官言: ‘元朝賀, 以日食停免。 二月五日, 皇帝當陞殿受賀。’ 禮部奏朝鮮、琉球使, 當隨百官行禮奉旨。 及是日, 入太和殿行禮。 禮畢, 坐臣等於二品班末, 賜酪茶。 聞皇帝將幸南海子打圍, 又幸西山, 又幸太原府 五臺山燒香。 五臺去燕都七百里云。"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556면
- 【분류】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