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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21권, 정조 10년 1월 6일 신해 2번째기사 1786년 청 건륭(乾隆) 51년

채제공에 대한 인사·군사·훈련·연복·팔포법에 대해 논의하다

차대(次對)하였다. 좌의정 홍낙성(洪樂性)이 말하기를,

"도목 정사 때 도총관의 의망에 채제공(蔡濟恭)을 더 써 넣었는데, 낙점을 받았습니다. 채제공과 같은 흉측한 역적을 죄를 씻어 주고 발탁하였으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 일은 잠시 놔두도록 하라. 그전부터 한번 제기할 때마다 풍파가 생기고 점차로 한층 더해졌었으므로 나 역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 일은 넉넉히 화기(和氣)를 이끌어 펼쳐지게 할 수 있으니, 이로 인해 등용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하였다. 행 사직 이명식(李命植)이 말하기를,

"채제공의 목숨이 지금까지 붙어 있는 것이 비록 신하들의 불성실로 말미암은 것이기는 하나, 전하께서도 어찌 이로 인해 그의 죄를 처벌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은 바로 채제공을 공격하는 주된 인물인데, 과연 분명하게 그에 대한 단안을 가지고 있는가?"

하자, 홍낙성이 말하기를,

"지난해 역적 김하재(金夏材)가 전관(銓官)으로 있을 때의 일로 보건대, 결코 내막으로 연결되었다고 봅니다."

하였다. 홍낙성이 수어청과 총융청 및 여러 도의 조련을 시행할 것과 북도(北道) 남관(南關)의 조련을 정지할 것을 청하니, 비답하기를,

"봄 조련과 가을 조련은 다르지만, 한창 바쁜 농사철에 백성을 투입할 수 없으니, 모두 정지하라."

하였다. 또 말하기를,

"역관(譯官)들이 글을 올렸는데, ‘후시자(後市者)들이 돌아오는 사행(使行) 길에 연복(延卜)002) 의 잡물로 책내(柵內)에서 교역을 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이러한 일이 없었습니다. 법을 만든 초기에는 의주부(義州府)에서 말만 보내어 복물(卜物)을 실어 왔었고, 갑술년003) 에 이르러서는 연복의 잡물 수량을 대략 정해 놓았으므로 매매하는 것은 관동의 물량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10여년 이래로 평안도의 상인들이 잡물 가운데 은화(銀貨)를 감추어 가지고 가서 사사로이 오랑캐 상인들과 체결하여 낭자하게 교역을 하는데, 그 수량이 4, 5만 냥이나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잡물은 어느 해나 풍족하지만 팔포(八包)004) 는 어느 해나 텅텅 비어 있으니, 연복의 잡물을 들여보내는 건을 영구히 혁파해야 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복의 법은 또한 의주부에서 빚을 탕감해 주기 위해 대신 만든 것이고 또 변방 백성들이 생활해 가는 밑천이므로 지금 대뜸 혁파에 대해 의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절사(節使)와 별사(別使)가 갈 때에 가지고 가야 할 수량이 정해져 있으니, 앞으로는 연복의 잡물을 한결같이 원포(元包)의 비례에 의하여 서장관으로 하여금 일체 법을 준행하게 하되, 만일 범한 자가 있을 경우에는 보고하여 엄단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54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司法) / 외교(外交) / 무역(貿易) / 정론(政論) / 인물(人物) / 군사-병법(兵法)

  • [註 002]
    연복(延卜) : 조선조 때 중국에 갔던 사신이 돌아올 때 가지고 오는 복물(卜物)을 운반하기 위해 의주(義州)에서 압록강 대안(對岸)의 책문(柵門)으로 말을 보내는 일.
  • [註 003]
    갑술년 : 1754 영조 30년.
  • [註 004]
    팔포(八包) : 선덕(宣德) 연간에 상역(象譯:통역)의 반전(盤纏:여비) 조로 매인(每人)에게 인삼 80근을 가지고 가는 것을 허가하였는데, 이것을 팔포(八包)라고 하였음. 뒤에는 백금과 잡물을 대신 가져가게 하였음.

○次對。 左議政洪樂性曰: "都政時, 都摠管望, 添書蔡濟恭名, 落點矣。 以濟恭之凶逆, 從而洗滌而甄拔之, 豈不失當乎?" 上曰: "姑捨是。 自前每一番提起, 輒生風波, 轉加一節, 予亦趑趄, 而此事足可爲導揚和氣, 非欲因此而登庸也。" 行司直李命植曰: "濟恭之至今容息, 雖緣群下之不誠, 而殿下豈可因此, 而不以其罪罪之乎?" 上曰: "卿卽攻主人, 果能明執渠之斷案乎?" 樂性曰: "以昨年賊居銓時事觀之, 腸肚次是相連也。" 樂性啓請行守摠兩營及諸道習操, 北道南關停操。 批曰: "春操與秋操有異, 方農不宜役民, 幷停。" 又啓言: "象譯輩上言以爲: ‘後市者, 使行之還也, 以延卜雜物, 互市於柵內, 古則無是事, 而及其作法之初, 自灣府, 只送空馬, 迎運卜物而已, 逮至甲戌, 延卜雜物, 略定數爻, 其所買賣, 不過關東物件, 而十數年來, 西商輩, 暗藏銀貨於雜物中, 私結商胡, 狼藉交易, 其數至於四五萬兩。 故雜物則無年不豐, 八包則無年不空, 延卜雜物入送一款, 永爲革罷’ 爲辭。 延卜之法, 亦爲該府蕩債之代, 又係邊民聊活之資, 今不可遽議革罷, 而節使與別使時, 其所應入, 自有定數。 請此後則延卜雜物, 一依元包比例, 使書狀官, 一遵令甲。 如有犯者, 狀聞嚴斷。" 從之。


  • 【태백산사고본】 21책 21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54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司法) / 외교(外交) / 무역(貿易) / 정론(政論) / 인물(人物) / 군사-병법(兵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