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 12월 20일 을미 2번째기사
1785년 청 건륭(乾隆) 50년
단천 부사가 체포한 거사 4명의 추국을 행하다
추국(推鞫)을 설행(設行)하였다. 이보다 앞서 단천 부사(端川府使) 구담(具紞)이 거사(居士) 【우파색(優婆塞), 곧 인도(印度)의 말로서 승려(僧侶)의 부류(部類)이다.】 유한경(劉漢敬)·이태수(李泰守)·김명복(金命福)·송두일(宋斗一) 등 4인을 체포하고 그 전대[橐]를 뒤지니, 《점법서(占法書)》·《백중력(百中曆)》·《감영록(鑑影錄)》 등의 책이 있었고, 또 접은 소지(小紙)가 있었는데, 소지의 첫머리에 수인록(讎人錄)이라고 표제(標題)하였다. 제1항(行)에 9자의 흉언(凶言)이 있고 【그 9자의 흉언은 전하지 않았으나 대체로 감히 말할 수 없는 자리를 가리킨다.】 그 아래에 문무(文武) 귀근(貴近) 13인의 이름이 죽 기록되었고 그 성(性)은 쓰지 않았으며, 또 두서너 줄의 난언(亂言)이 있었다. 【역시 전하지 않는다.】 구담이 이들을 가두고 관찰사 이문원(李文源)에게 보고하니, 이문원은 영옥(營獄)으로 옮겨 가두고 비밀히 아뢰었다. 임금이 선전관(宣傳官)을 보내어 밀지(密旨)를 가지고 함경 감영(咸鏡監營)에 달려가 체포하여 포도청에 넘기어 구문(究問)하였으나 단서가 없었다. 이때에 와서 시임·원임 대신과 의금부 당상 및 좌우포도 대장이 모두 국청(鞫廳)의 설치를 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546면
- 【분류】사법(司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