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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18권, 정조 8년 11월 18일 기사 2번째기사 1784년 청 건륭(乾隆) 49년

선전관의 추천법에 대해 신칙하다

장신(將臣)들에게 유시하여 선전관(宣傳官)의 추천법에 대하여 각별히 신칙(申飭)하였다. 이보다 하루 전에 하교하기를,

"이번 세자 책봉에 대한 경과(慶科) 때에 합격한 무사들이 무려 2천 6백 76명이나 된다. 사부(士夫)와 한량(閑良)들 중에는 문벌이 두드러진 자들도 매우 많다. 이제 그들을 추천하는 달이 곧 다가오는데, 별도로 신칙하지 않을 수 없다. 숙종[肅廟]병진년337) 에 만과(萬科)를 보인 뒤로 1백 7년 동안 다시 1백여 명을 넘도록 추천한 일은 전혀 없었다. 선조(先朝)께서 등극하신 이후 50년 동안 추천하는 법이 아주 엄격하여 적게는 한두 명이고 많아야 수십 명이었다. 다만 신사년338)남행(南行)339) 으로 55명을 추천하였고, 임진년340) 에 과거 출신 50명을 추천하였을 뿐이다. 이번의 나라 경사로 인하여 이번에는 크게 벌려 실행하는데, 어찌 상전(常典)만을 고수하여 무사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할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9월, 10월에도 월천(越薦)한 전례가 많으니, 선전관에 신칙하여 이달 안으로 월천하게 하라."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하교하기를,

"이제 다시 고사(故事)를 상세히 상고해 보니, 숙종 병진년의 무과 출신(武科出身)이 1만 4천여 명이었고, 그 중 사대부의 숫자도 많았었는데, 무인년341) 이 되어서야 비로소 월천하는 것을 끝마쳤다고 한다. 올가을의 과방(科榜)에서 사대부가 합격한 것이 병진년(丙辰年)에 비하여 1백 명 가운데 한두 명이 겨우 될까말까 한 만큼 올 겨울과 내년 여름의 두 절기의 추천에는 절로 채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무오년의 추천록(推薦錄)을 가져다 보니, 3월에 추천한 것이 69명인데 그 중 서울 무사 출신은 불과 3명이었고, 10월에 추천한 것이 1백 9명인데 서울 무사 출신이 역시 14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대개 그때 지방의 무사를 채용하라는 성상(聖上)의 하교가 자주 내렸고, 또 선조(先朝) 때에도 특별히 윤음(綸音)을 내려 관청벽에다 게시하고 무사들을 짝지워 채용하는 현상을 철저히 금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그렇지 않아서 선전청(宣傳廳)에서 월천하는 것을 도리어 전조(銓曹)에서 통의(通擬)하는 나쁜 규례를 본따 방안(榜眼)이 한 번 나오자 문득 미리 예측하고 구별하며 인물이 정해지기도 전에 뒤따라 계산하고 안배(安排)하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누른 것을 뽑아 흰 것에 맞추는 식으로 하고, 지방에서는 도(道) 안의 고을을 단위로 하여 인재를 선발하기 때문에, 얼룩진 것이 점박이 말을 탄 것과 같고 알록달록한 것이 숨어있는 표범과 같다. 시속에서 이른바 가위다리와 바둑판 무늬의 정사라는 것이 이와 근사하다. 이 무리들이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은 동시(東施)가 서시(西施)의 찡그린 얼굴342) 을 흉내낸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런 버릇은 문관의 경우에도 금지되어야 하겠는데 하물며 무인의 경우이겠는가? 무인에 대한 일은 무장(武將)이 통할(統轄)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서울의 무인 중에서 똑똑한 사람들을 빠뜨린 것이야 추후에 월천(越薦)할 수 있지만, 지방의 무인 가운데 재주를 자진 자들은 누가 두루 살피겠는가? 지방이나 서울에서 고르게 혜택을 입혀 채용하는 것이, 어찌 단지 여러 무인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할 뿐이겠는가? 또한 하늘의 화기(和氣)를 맞아 오기에도 충분할 것이다. 이 뜻을 여러 장신(將臣)들은 잘 알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478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註 337]
    병진년 : 1676 숙종 2년.
  • [註 338]
    신사년 : 1761 영조 37년.
  • [註 339]
    남행(南行) : 음직(蔭職).
  • [註 340]
    임진년 : 1772 영조 48년.
  • [註 341]
    무인년 : 1698 숙종 24년.
  • [註 342]
    서시(西施)의 찡그린 얼굴 : 서시는 중국 춘추(春秋) 시대 월(越)나라의 미인으로서, 하루는 병이 있어 눈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이를 본 마을의 못생긴 여자가 눈을 찌푸리면 아름답게 보이는 줄 알고 흉내를 내 더욱 못나게 보였다는 고사. 곧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됨을 이른 말임.

○諭將臣, 另飭宣傳官薦法。 前一日, 敎曰: "今番冊封慶科, 武士入格, 至於二千六百七十六人之多, 而士夫、閑良家閥表表者, 亦甚不少。 見今薦月在卽, 不可無別般申飭。 肅廟丙辰萬科後, 一百七年之間, 更無百人越薦之事。 先朝御極以後, 五十年薦法至嚴, 少則一二人, 多是數十人。 惟辛巳南行薦五十五人, 壬辰出身薦五十人。 以今番邦慶, 行今番大比, 豈可膠守常例, 不念慰悅之方乎? 九月、十月, 亦多越薦之例, 申飭宣傳官廳, 今月內越薦。" 至是敎曰: "今又詳閱故事, 肅廟朝丙辰武科出身, 一萬四千餘人, 其中士夫數多, 至于戊寅, 始得畢越云。 今秋科榜, 士夫入格, 比丙辰不啻百之一二, 當於今冬來夏兩等薦, 自可收用, 而因此取見戊午薦錄, 三月薦爲六十九人, 而京武不過三人。 十月薦, 爲一百九人, 而京武亦不過十四人, 而槪伊時, 頻降鄕武收用之聖敎, 且在先朝, 特下綸音, 揭板廳壁, 洞禁武弁偏係之私。 近來則不然, 憲廳越薦, 反效銓通謬規, 榜眼一出, 輒先揣摩, 區別物色未定, 從又較計安排。 京以抽黃配白, 鄕以道類邑分, 駁若乘騅, 斑若隱豹。 與俗所謂: ‘剪對棋紋之政’, 近之。 此輩之倣象, 何異東施之效西施顰也? 此習在文當禁, 況武弁乎? 武弁之事, 武將無不統轄, 京武遺珠, 官可越薦, 鄕武玉抱, 孰爲周章? 于鄕于京, 均沾收錄, 奚但慰悅群武? 亦足以導迎太和。 此意諸將臣知悉。"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52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478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