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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8권, 정조 8년 9월 18일 경오 3번째기사 1784년 청 건륭(乾隆) 49년

인정전에서 백관의 하례를 받고 대사령을 반포하다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서 백관(百官)들의 하례(賀禮)를 받고, 중앙과 지방에 대사령(大赦令)의 교서(敎書)를 반포하였는데, 이르기를,

"큰 운수가 다시 돌아와서 풍성한 상서로움을 내려주는 영광을 길이 입으니, 빛나는 책문(冊文)을 거듭 올리어 융성하게 보답하는 전장(典章)을 시행하였다. 욕의(縟儀)의 경사(慶事)를 다섯 차례나 거행하고, 고유문(誥由文)을 팔방(八方)에 널리 선포한다.

생각하건대, 선대왕(先大王) 50년 동안의 정치와 모유(謨猷)는 실로 우리 나라 억만 년에 이르도록 세상의 보록(寶籙)과 관계된다. 우(禹)임금의 근면함과 탕(湯)임금의 공경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성학(聖學)을 집희(緝熙)하였고, 요(堯)임금의 문치(文治)와 순(舜)임금의 문화(文華)의 경지에 올라갔으니, 지극한 정치는 온 세상에 차고 넘친다. 《춘추[麟經]》의 의리를 내걸고, 선왕의 뜻을 계승하여 삼단(三壇)에 제사하였고, 홍범 구주(洪範九疇)를 중심으로 세워 황극(皇極)을 실천하고 오복(五福)을 폈던 것이다. 영원히 후세에 물려줄 수많은 공로와 큰 업적은 역사책에 이루 다 기록할 수 없고, 산이 없어지고 바다가 마를 때까지 그칠 줄 모르는 추후(追後)의 칭송은 백성들이 능히 잊지 못한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모(聖母)께서의 궁중 규범은 태사(太姒)의 아름다운 덕을 이어받아서, 왕비의 높은 자리에 올라서 건원(乾元)의 짝이 되어 대업(大業)을 도왔으며, 동관(彤管)에 나타난 덕망은 곤후(坤厚)를 본따서 영광을 물려주었다. 태비(太妃)를 본받으리라 생각하고 궁중의 덕화를 크게 천명하였다. 자전(慈殿)의 보우(保佑)를 받은 은혜는 하늘과 땅과 같아서 길이 즐거워하며, 종묘 사직이 공고한 형세를 이루도록한 공로는 송(宋)나라 선인 태후(宣仁太后)를 능가하였다. 아! 경모궁(景慕宮)의 아름다운 공열은 일찍이 억조 만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하(夏)나라 세자에게 칭송하는 노래소리가 쏠리듯이 백성들이 목을 늘어뜨리고 바라는 소망에 부합되었으며, 순임금의 기무(機務)를 대신하였으니, 모두 눈을 비비고 볼만한 정치를 이룩하였다. 천승(千乘)의 봉양(奉養)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지극히 비통한 마음은 끝이 없고, 백 대를 내려가면서 본지(本支)가 번창할 것을 점치는 커다란 보록(寶籙)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뜻이 깊으신 자궁(慈宮)께서는 아름다운 덕망이 더욱 나타나서 나를 길러주신 지극한 은덕을 보답하지 못하니, 한갓 하루에 세 번 문안하려는 마음만 간절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덕행이 참으로 빛나니, 큰 상서로움이 이에 백복(百福)에 감흥하는 바이다. 오로지 이러한 공덕(功德)을 모두 드러내어 보이는 것이 마땅하므로, 이러한 전장(典章)을 더욱 높이는 일을 어찌 늦출 수가 있겠는가?

이제 성조(聖祖)께서 왕위에 오르시던 해의 60돌이 돌아왔고, 또 우리 조정의 빛나고 밝은 시기를 만났으니, 아름다운 상서로움과 복록이 더욱 많이 이르게 되었으므로, 생을 누리는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하늘에서 주는 것이다.’라고 하며, 경(卿)·사대부(士大夫)·서민(庶民)들의 감탄과 칭송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더구나 저사(儲嗣)를 일찍이 세워서 우리 나라의 보력(寶曆)이 끝이 없고, 복록을 열어주고 자손을 도와주는 것이 더욱 밝으니, 나의 마음속에 슬픔과 즐거움이 번갈아 든다. 조정의 의논에 물어보고, 배천(配天)의 일을 강구하였고, 《예경(禮經)》을 상고하여 부모에게 보답하려는 계책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열(功烈)을 기리고 공적을 기록하지만 오히려 형용(形容)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하며, 책문(冊文)을 올리고 금보(金寶)를 바쳐, 거의 정성을 조금이나마 표시하는 데에 의절(儀節)이 어긋나지 않고 물채(物采)가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

이에 금년 9월 13일에는 ‘영종 지행 순덕 영모 의열 장의 홍륜 광인 돈희 체천 건극 성공 신화 대성 광운 개태 기영 요명 순철 건건 곤녕 익문 선무 희경 현효 대왕(英宗至行純德英謨義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에게 ‘배명 수통 경력 홍휴(配命垂統景曆洪休)’라고 추상하였고, ‘혜경 장신 강선 공익 인휘 단목 장화 정성 왕후(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端穆章和貞聖王后)’에게 존호를 ‘소헌(昭獻)’이라고 추상하였다. 17일에는 ‘예순 성철 장희 혜휘 왕대비(睿順聖哲莊僖惠徽王大妃)’에게 존호를 ‘익렬(翼烈)’이라고 가상(加上)하였다. 18일에는 ‘사도 수덕 돈경 장헌 세자(思悼綏德敦慶莊獻世子)’에게 존호를 ‘홍인 경지(弘仁景祉)’라고 추상하였고, ‘효강 자희 혜빈(孝康慈禧惠嬪)’에게는 존호를 ‘정선(貞宣)’이라고 가상하였다. 이미 백록(百菉)의 축하를 받았으니, 이에 십행(十行)의 윤음(綸音)을 내린다. 옥과 금으로 새긴들 감히 아름다운 공열을 크게 천명하였다고 하겠는가? 손과 발로 춤을 추니, 만백성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경사를 같이 나누는 때에 대사령(大赦令)의 은전을 특별히 시행하는 것이다. 이달 18일 새벽 이전까지의 잡범(雜犯)으로서 사죄(死罪) 이하는 전부 용서하여 면제한다. 아! 화기(和氣)가 사방으로 미쳐서 만물과 더불어 함께 번영하고, 길(吉)한 경사가 연달아 이어져서 끝이 없이 자손들에게까지 내려갈 것이다."

하였다. 【대제학 오재순(吳載純)이 지었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470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司法) / 어문학(語文學)

○御仁政殿, 受百官賀。 大赦中外頒敎。

若曰, 景運重屆, 永荷錫羡之休; 顯冊荐揚, 聿修隆報之典。 縟儀誕擧於五慶, 渙誥庸宣於八方。 洪惟先大王五十載治謨, 實係我東方億萬世邦籙。 始以敬, 聖學緝熙; 躋于華, 至治洋溢。 《麟經》揭義, 繼先志而享三壇, 龜疇建中, 履皇極而敷五福。 史難勝述, 豐功峻德之永垂; 民不能忘, 窮山薄海之追頌。 竊念聖母壼範, 式嗣太姒徽音。 位高黃裳, 配乾元而贊業; 德著彤管, 象坤厚而垂休。 思齊太妃, 丕闡陰化。 恩侔天地, 長樂荷保佑之慈; 功邁宣仁, 宗國奠鞏固之勢。 猗歟! 景慕宮懿烈, 夙爲億兆民係心。 膺謳歌於儲, 允副延頸之望; 攝機務於倦, 咸仰拭目之治。 至痛無窮, 千乘之奉養靡逮; 景籙有自, 百世之蕃昌已占。 亦粤慈宮, 尤著懿德。 劬勞之至恩莫報, 寸心徒切於三朝, 柔嘉之徽則允彰, 洪余誕膺於百福。 惟功德倂宜於表揭, 伊典章詎稽於加隆? 玆回聖祖臨御之年, 又値我朝昭明之會。 休祥茀祿之滋至, 肸蠁咸曰自天而申之。 卿士庶民之咨嗟詠歎, 可見入人者深矣。 矧儲嗣之早建, 邦家之寶曆無疆; 仰啓舍之孔昭, 予心之愴嘉交集。 詢庭議而講配天之擧, 考《禮經》而思報本之圖。 摸烈紀功, 尙恨形容之未盡; 獻冊進寶, 庶幾忱悃之少伸。 儀文罔愆, 物采增煥。 乃於本年九月十三日, 追上英宗至行純德英謨毅烈章義弘倫光仁敦禧體天建極聖功神化大成廣運開泰基永堯明舜哲乾健坤寧翼文宣武熙敬顯孝大王尊號曰配命垂統景曆洪休, 惠敬莊愼康宣恭翼仁徽端穆章和貞聖王后尊號曰昭獻。 十七日, 加上睿順聖哲莊僖惠徽王大妃尊號曰翼烈。 十八日, 追上思悼綏德敦慶莊獻世子尊號曰弘仁景祉。 加上孝康慈禧惠嬪尊號曰貞宣。 旣受百祿之賀, 誕敷十行之綸。 玉琢金鐫, 敢曰休烈之丕闡? 手舞足蹈, 佇看黎庶之均歡。 乃於同慶之辰, 特施肆赦之典。 自本月十八日昧爽以前, 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 於戲! 和氣旁達, 與品物而同亨; 吉慶連綿, 垂來後而無極。 【大提學吳載純撰。】


  • 【태백산사고본】 18책 18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470면
  • 【분류】
    왕실(王室) / 사법(司法) / 어문학(語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