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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 3월 15일 경자 2번째기사 1784년 청 건륭(乾隆) 49년

구휼에 대해 하교하다

하교하기를

"조정에서 호서(湖西)에 대하여 어찌 하루라도 마음에 잊어버리겠는가? 농사는 연변(沿邊)의 들판이 거듭 흉년이 들었고, 대체로 저장된 것이라고는 공사(公私)가 모두 텅텅비어 진휼하는 일에 힘을 쓰려고 하면 도리어 백성들이 곤궁함을 당하게 되며, 환정(還政)에다 뜻을 이루려고 하면 진민(賑民)이 해(害)를 받게 되어 실제로 진휼과 환정 두 가지가 온편한 방법이 없으니 백성들의 형세가 갈수록 황급(遑急)해짐을 미루어서 알 수 있다. 더구나 호서는 사대부(士大夫)의 고장이다. 사대부가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은 도야(陶冶)나 판매(販賣)하는 공부가 아니며, 자신을 위하여 도모하는 데 있어서는 단지 농토[畎畝]에 의탁하는데 지금 농토에 재차 흉년이 들었다고 알리니 만약 공곡(公穀)을 돌아다니며 계산하여 조곡(糶穀)을 나누어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겠으며 농사를 다듬겠는가? 나는 지난 해 호서의 대민(大民)과 소민(小民) 양자(兩者)가 결국은 같은 것같이 생각이 된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영남의 곡식 및 돈과 콩을 밑거리로 하여 진환(賑還)하는 물자로 잇달아서 나누어 준 것이 곡포(穀包)가 9만여가 되고 전화(錢貨) 또한 1만 금(金)에 이르는데, 모르기는 하지만 그것을 나누어 주는 데 균등하지 않다는 탄식이 없으니 백성들의 먹을 것이 조금 여유가 있어 좋아서 그런 것인가? 내가 요량하는 바로는 결단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곡식 장부를 가지고 저 호구(戶口)와 비교하여 보면 끝내 서로 잘 맞지가 않는다. 그런데도 도백(道伯)이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으니 어떻게 혹시라도 별도로 온편하게 주선하는 계책이 있어서인가? 아! 종자(種子)가 없으면 경작도 못하고 양식이 없으면 김매기도 못하는데, 양식도 없고 종자도 없어 경작하고 김매는 것을 그르친다면 내년의 근심 또한 현재 〈굶주려서〉 부황이 든 것에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잊지 못하는 일념(一念)으로 잠자는 것과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노심초사하면서 곧 병(病)이 나기에 이르게 된 까닭이다. 경상 비용을 수습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이와 같은 흉년에 어찌 일반적인 규정에 얽매이겠는가? 월전(月前)에 구획(區劃)한 것 역시 끌어다 하기에는 부족하다. 본도(本道)의 각 고을에서 당연히 바쳐야 할 조목의 결전(結錢)과 어염 선세전(魚鹽船稅錢)이 2만 3천 냥 영(零)이라고 하니, 특별히 전수(全數)를 더 나누어 주도록 허락한다. 그러니 도신(道臣)에게 주어 편리한대로 진휼하는데 보충하도록 하라. 그리고 진휼곡(賑恤穀) 가운데서 얼마의 숫자를 덜어내어 그 완급(緩急)을 참작하고 헤아려서 조곡을 나누어 주게 하여 농사일에 마음을 붙이도록 하고 순행을 끊거나 시기를 놓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 그리고 진휼하는 정사에 이르러서는 성공할 실마리가 열렸다고 말하지 말라. 현재 봄볕이 점차로 길어져 고생과 굶주림이 더욱 심하니 수령들에게 엄중히 신칙하여 보살피기를 더욱 자상하게 해서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혹시 빠뜨리지 말도록 하여 내가 남쪽을 돌보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펴게 하라. 그리고 또 만약 질병(疾病)이 있는 자는 바야흐로 앓고 있거나 이미 앓았거나를 논하지 말고 반드시 모두 구료(救療)할 방편을 강구하여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혹시 버려지거나 야위는데 이르지 않도록 하라. 그런 뒤에야 내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다. 그러니 도신과 수령이 된 자는 어찌 나의 마음을 펴보이는 유시(諭示)를 체득하여 대양(對揚)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를 전교(傳敎)하니 묘당(廟堂)에서 본도에 행회(行會)하는 내용에 거듭 신칙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432면
  • 【분류】
    구휼(救恤) / 재정(財政)

○敎曰: "朝家於湖西, 何嘗一日忘于心哉? 年事則沿野荐歉, 蓋藏則公私俱空, 欲着力於賑事, 則還民被困, 欲致意於還政, 則賑民受害。 實無賑與還兩便之道, 民勢之去益遑急, 可推而知。 況湖西士夫鄕也。 士夫契活, 非陶冶販賣之工, 於謀身, 只寄於畎畝之中, 今畎畝再告荒, 若無公穀之計巡分糶, 何以資生而治農乎? 予則曰昨年湖西, 大民小民, 將無同也。 向來嶺穀及錢豆之爲資, 賑還之需, 鱗次劃給者, 穀包爲九萬有餘, 錢貨亦至萬金, 未知分俵無不均之歎。 民食有差裕之喜乎? 以予所料, 決知爲不然。 將此穀簿, 較彼戶口, 終不能相當。 道伯之迄今無言, 豈或有別般周便之策耶? 噫! 非種不耕, 非糧不耘。 無糧無種, 耕耘以愆, 則嗣歲之憂, 又非目下顑頷之比。 此予所以耿耿一念, 忘寢與食, 焦勞將至生病也。 經用之莫可收拾, 予非不知, 而似此荒歲, 何拘常規? 月前區劃, 亦不足較挈。 本道各邑當捧條結錢、魚鹽、船稅錢, 爲二萬三千兩零云, 特許全數加劃, 付之道臣, 從便補賑。 賑穀中除出幾許數, 就其緩急, 酌量分糶, 着念課農, 俾無絶巡失時之弊。 至於賑政, 莫曰就緖。 見今春煦漸永, 阻飢轉甚, 嚴飭守宰, 詳加審察, 無令一民, 或致遺漏, 少紓予南顧之念。 又若有疾病者, 無論方痛已痛, 必皆方便救療, 無令一民, 或至於捐瘠, 然後予心可安。 爲道臣、守令者, 寧不體予敷心之諭, 思所以對揚之方乎? 以此傳敎, 自廟堂行會本道, 措辭申飭。"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432면
  • 【분류】
    구휼(救恤) / 재정(財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