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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7권, 정조 8년 1월 14일 경자 1번째기사 1784년 청 건륭(乾隆) 49년

기전과 호서에 윤음과 별진자를 내리다

기전(畿甸)과 호서(湖西)에 윤음(綸音)을 내리고 이어서 별진자(別賑資)를 내리고, 이르기를,

"아! 너희 기전과 호서의 백성은 오히려 내가 좋은 음식을 달게 먹고 고운 담요에서 편안히 쉰다고 생각하는가? 가을부터 겨울을 거쳐 해가 바뀌기까지 자야 할 때에 자지 못하고 먹어야 할 때에 못하며 오직 너희들의 굶주려 여위고 해진 옷을 입고 곤궁하여 어쩔 줄 모르는 형상이 내 눈에 보이는 듯한데, 너희들은 오히려 내 마음을 알 수 있는가? 아! 기전과 호서에서 흉년을 당한 것이 무릇 두 해이거니와, 재작년에는 기전과 호서 두 도 밖의 여러 도는 조금 곡식이 잘되어 따로 황정(荒政)으로 번뇌할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무릇 굶주린 자를 돕고 돌보는 방도는 너희들에게 전념하였으므로 다행히 여윌 걱정이 없었으나, 지난해에는 여섯 도에서 기근을 고하는 서장(書狀)을 잇달아 아뢰었으므로 거의 응접(應接)할 겨를이 없었으니, 내가 밤낮으로 우로(憂勞)하며 불을 밝히고 밤을 샌 것이 몇 달인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곡식을 옮겨 가서 먹이기도 하고 내탕고(內帑庫)의 재물을 내어 진자를 보태며 이리저리 변통하여 겨우겨우 구제하였으나, 기전과 호서는 서울에서 멀지 않아서 소식 듣기에 가장 가깝고 봄 이후의 진휼(賑恤)하는 일은 편의에 따라 구제하여 살릴 수 있을 것이므로 한 번 구획(區劃)한 뒤에는 문득 마치 서로 잊은 듯하였거니와, 너희들이 어찌 내가 참으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는가?

아! 기전과 호서 80여 고을의 집은 수십만이 못되지 않는데, 밭이 있어서 스스로 지어 먹는 자가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밭이 있더라도 거둘 만한 것이 없는데, 더구나 고용되어 일하는 무리이겠는가? 풍년에도 마침내 괴로움을 면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거듭한 흉년 끝이겠는가? 고을에 낼 조세를 갚지 못하고 이웃에서 빌린 것도 이미 떨어졌으니 빈 항아리가 굶주린 열 식구를 구제하지 못하거니와 이미 버려진 벼에 어찌 한 번 배를 채울 희망이 있겠는가? 내가 이 때문에 너희들에게 먹을 것이 없는 줄 안다. 바닷가의 짠 땅은 목화 농사에 맞지 않고 산골짜기의 홍수가 또 한전(旱田)을 해치니 가난한 여자는 낼 만한 비단이 없고 어리석은 백성은 살 만한 실[絲]이 없거니와 따뜻한 방에 있을 철이 이미 지났어도 제몸을 쌀 방책에 희망이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내가 너희들에게 옷이 없는 줄 안다. 먹을 것이 없고 옷이 없는데 어떻게 한 해를 보냈겠는가? 한 해를 보내기도 어려웠을 것인데, 더구나 이 춘궁(春窮)이겠는가? 지난번에는 섣달 눈이 쌓이지 않아 겨울 날씨가 오히려 따뜻하므로, 너희들이 관에서 적곡(糴穀)을 내어 가면 흘간산(紇干山) 위에서 얼어 죽는 참새가 되는 것을 면할 수 있고, 산에서 칡부리를 캐면 수레바퀴 자국의 물에 있는 물고기 같은 곤경을 구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혹 오래 따뜻한 것을 근심하였으나 나는 도리어 너희들을 위하여 기뻐하였는데, 가평(嘉平)021) 이후로 추위가 이러하여 따뜻한 방에서 겹으로 갖옷을 입어도 살갗에 닥치는 괴로움을 느끼니, 가난한 집에 어찌 등질 따뜻함이 있겠는가? 매우 굶주린 끝에 추위를 막기 어려운데 늙고 어린 무리는 또 건장한 자와 다르니, 너희들의 부모 처자가 한 사발의 밥과 솜옷 하나를 얻어서 얼고 굶주린 몸을 구제하여 길에서 부르짖게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구급(救急)하는 정사는 지난 겨울에 시작하고 설진(設賑)하는 시기는 새해에 이르렀으니, 납세를 독촉받는 괴로움을 쾌히 벗어나고 점점 먹을 것을 기대할 곳이 있겠으나, 굶주린 자를 초록(抄錄)할 즈음에 빠지는 한탄이 없을 수 있겠으며, 진곡(賑穀)을 받을 때에도 서로 무릅쓸 걱정이 없겠는가? 곡물은 정(精)하고 두승(斗升)은 맞으며 장류(醬類)도 그 맛을 잃지 않겠으며, 수령(守令)이 각각 성근(誠勤)을 다하고 향리(鄕吏)가 간사하게 속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밤낮으로 불안한데 어찌 잠시라도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겠는가? 특별히 탕수(帑需)를 내려서 원진(元賑) 이외에 따로 일순(一巡)을 베푼 것은 너희 두 도에 지난해 이미 행한 전례이다마는, 올해에는 동·남·북 세 도의 기근이 너희 두 도보다 심하니, 이 때문에 별순(別巡)하는 일이 세 도에 먼저 있었던 것이다. 너희 두 도의 백성이 어찌 발돋음하고 나에게 ‘어찌하여 전에는 후하고 뒤에는 박할까?’ 하고 바라지 않겠는가?

내 탕장(帑藏)의 설치는 너희들이 홍수와 가뭄을 당하였을 때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니, 너희들이 바야흐로 거듭 기근을 당하였는데 내가 어찌 아끼겠는가? 이제 경기에 돈 2천 민(緡)과 후추[胡椒] 1백 근과 다목[丹木] 3백 근을, 호서에 돈 3천 민과 후추 1백 근과 다목 2백 근을 내린다. 아! 물건이 적어서 열흘 동안 먹을 것도 못되기는 하나 뜻은 실로 은근하여 오로지 밤낮으로 우근(憂勤)하는 데에서 나왔다는 것을 너희들은 헤아리겠는가? 돌아보건대, 이제 새해가 되어 만물이 다 소생하거니와 오늘은 한제(漢帝)가 조칙(詔勅)을 내린 날이다. 너희들이 잠시라도 굶주리고 추운 일이 없다면 천심(天心)이 기뻐하게 되고 이제 이 때문에 풍년이 와서 팔방이 먹을 것을 입에 담는 기쁨을 너희들과 함께 할 것이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구중(九重) 깊은 곳은 사방의 산야(山野)와 멀리 떨어졌으므로 너희 수만의 굶주리는 백성을 방악(方岳)022)장리(長吏)023) 에게 맡겼으니, 능히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몸받는 자가 있다면 스스로 게을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데, 또한 어찌 많이 말하겠는가?"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421면
  • 【분류】
    구휼(救恤)

○庚子/下綸音于畿甸、湖西, 仍賜別賑資曰: "嗟! 爾畿湖民人, 尙謂予甘玉食, 而安細氈也耶? 自秋而冬, 至于歲翻, 當寢而不能寢, 當飱而不能飱。 惟爾等鵠形鶉衣, 顚連遑汲之狀, 如在予眼中, 爾等尙能知予心乎否? 噫! 畿、湖之遭歉, 凡兩歲矣。 再昨年, 則畿、湖兩道之外, 諸路稍登, 無他荒政之擾惱者, 故凡係賙賑蠲恤之方, 專意爾等, 幸無捐瘠之患, 而昨年則六路告饑之狀, 相續登聞, 殆乎應接不暇。 惟予日夜憂勞, 呼燭明發, 不知爲幾許月矣。 或移栗而往哺, 或捐帑而補賑, 東西塗抹, 僅僅接濟, 而畿湖則距京師未遠, 聲聞最邇, 春後賑事, 可以從便救活, 故一番區劃之後, 便若相忘者然, 爾等其以予爲眞箇恝然乎? 嗚呼! 畿、湖八十餘邑戶, 不下數十萬, 有田而自食者, 能幾人也? 就使有田, 尙無可穫, 況傭作之類乎? 雖在樂歲, 未免終苦, 況荐歉之餘乎? 縣門之租稅未償, 鄕隣之假貸已絶。 甁罌之罄, 莫救十口之饑; 秉穗之遺, 寧有一飽之望? 予以是知爾等之無食也。 海沿斥鹵, 不宜緜農, 山峽水澇, 又傷旱田, 寒女無可出之帛, 蚩氓無可貿之絲。 就隩之節已過, 絲身之策無望。 予以是知爾等之無衣也。 無食、無衣, 何以卒歲? 卒歲猶難, 況玆春窮乎? 向也臘雪未積, 冬候猶暖, 念爾等糴于官, 可免紇干之雀; 採于山, 可救涸轍之魚。 人或以恒燠爲憂, 而予反爲爾等喜之。 嘉平以後, 一寒如此, 煖室重裘, 尙覺逼肌之苦, 蔀屋甕牖, 安有負背之暄? 周飢之餘, 難禦寒威, 老稚之類, 又異强壯, 爾等之父母妻子, 能得一㿻飯、一縕袍, 以濟其凍餓, 而不至於呼號道塗耶? 救急之政, 越自前冬, 設賑之期已屆, 新年快免催科之苦, 漸有待哺之所。 抄饑之際, 能無見漏之歎歟, 受賑之時, 亦無相蒙之患歟? 穀物精斗升準, 而鹽豉亦不失其味歟? 守宰各盡誠勤, 而吏鄕不容奸僞歟? 予之夙夜憧憧, 何嘗一息而忘爾等也? 特下帑需, 元賑外別設一巡, 卽爾兩道昨年已行之例, 而今年則東南北三道之飢荒, 甚於爾兩道, 所以別巡之擧, 先在三道也。 爾兩道之民, 其不翹足而望, 予曰: ‘何厚於前而薄於後歟?’ 惟予(孥)〔帑〕 藏之設, 爲爾等水旱之備, 爾方荐飢, 予其何惜? 今下京畿, 錢二千緡, 胡椒一百斤, 丹木三百斤;湖西, 錢三千緡, 胡椒一百斤, 丹木二百斤。 噫! 物雖尠少, 未滿旬日之食, 意實慇懃, 亶出宵旰之憂, 爾等其諒之否? 顧玆三元載屆, 萬品咸蘇。 今日卽帝頒詔之日也。 如使爾等少須臾無飢寒, 則天心底豫, 迄用康年, 八方含哺之喜, 將與爾等共之, 豈不樂哉? 九重深邃, 四野遠隔, 付爾幾萬飢口於方岳及長吏, 苟能有一分體予心者, 自可毋怠, 又何多詰?"


  • 【태백산사고본】 17책 17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421면
  • 【분류】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