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휼 전칙을 중외에 반포하고 윤음을 내리다
자휼 전칙(字恤典則)을 중외(中外)에 반포(頒布)하고 윤음(綸音)을 내리기를,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해에 우리 민생들 중에 부황이 들어 전련(顚連)하게 되는 사람들이 어느 누가 왕정(王政)이 구제해 주어야 할 사람이 아니겠는가마는, 그 중에도 가장 말을 할 데가 없고 가장 가긍(可矜)한 사람은 어린 아이들이다. 저 장정(壯丁)인 사람들은 남의 용보(傭保)가 되어 물 길러 주고 나무라도 해 주며 그래도 살아 가게 될 수가 있지마는, 어린 아이들은 이와 달라 몸을 가리기와 입에 풀 칠을 제 힘으로 할 수 없으므로 훌쩍거리며 살려 주기를 바라며 의지할 데가 없게 된다. 길 가에 유기(遺棄)해 놓은 유(類)에 있어서는 그 동안에 무슨 사고가 있어선지 알 수 없지마는 요컨대 부모가 없어서 그 지경이 되었을 것이고, 설사 부모가 있다손 치더라도 몸에 기한(飢寒)이 절박해지자 둘 다 보존하게 되지 못할 것을 헤아리고서 인정도 없고 사정도 없이 길거리에 내다 놓으며 누군가가 애처럽게 여겨 구출해 주기 바랐을 것이다. 혹시라도 인인(仁人)이 있다가 그 즉시에 거두어다 기르게 된다면 진실로 천행이겠지마는, 그렇게 되지 않아 어느덧 시일이 지나버리면 그만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가게 될 것이다.
아! 천지가 만 물을 낸 뜻이 어찌 단순한 것이겠는가? 국가에서 활인서(活人署)와 혜민서(惠民署) 두 서를 설치하였음은 곧 의약(醫藥)으로 죽게 된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질병이 있는 민생에 있어서도 또한 오히려 관원을 두고서 구제하게 했는데, 하물며 이런 아이들이 더러는 구걸하게 되거나 더러는 유기(遺棄)하게 된 것은 질병이 있는 사람에 비하여 다급할 뿐만이 아닌 것이겠는가? 광제원(廣濟院) 및 육영사(育嬰社)의 좋은 법이나 아름다운 제도는 그전과 지금의 사정이 달라져 하루아침에 두루 시행하게 되기는 어렵거니와, 경사(京師)는 곧 팔방(八方)의 표준이 되는 터이니, 대강이라도 남아 있는 규정을 모방하여 우선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차차로 취택해서 사용해 가는 기초가 되게 하는 것이 진실로 인정(仁政)의 권여(權輿)가 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며칠 전에 우연히 생각이 나기에 대신들과 의논했더니 첨원(僉員)의 의논이 이미 같았었다. 어찌 꼭 지의(持疑)할 것 있겠는가? 유사(有司)로 하여금 난숙(爛熟)하게 강구(講究)하여, 갖가지의 시행하기에 합당한 사의(事宜)들을 절목(節目)으로 만들도록 하였고, 따라서 즉시 중외(中外)에 반시(頒示)하여 각자가 영구히 준행(遵行)하도록 하게 된 것이다. 풍년과 흉년에 따라 달라지는 사례와 연월(年月)을 작정하는 법제에 있어서는 자세하게 재량(裁量)을 가하여 차등(差等)을 구별하지 않을 수 없거니와, 친척(親戚)이 있는 자 및 주가(主家)가 있는 자는 찾아내어 기탁(奇托)하는 방도와 자녀가 없는 자 및 동복(僮僕)이 없는 자는 수양(收養)을 허급하는 법에 있어서는 또한 모름지기 되도록 섬실(纖悉)하게 거행하여 처음에서 끝까지 혜택이 있게 되도록 해야 한다."
하였다.
사목(事目) 【흉년에 구걸하는 아이에 있어서는 10세로 한도를 하고 길 가에 유기한 아이에 있어서는 3세를 한도로 하여, 오부(五部)에서 듣게 되거나 보게 되는대로 진휼청(賑恤廳)에 첩보(牒報)하면 진휼청에서 유양(留養)하기를, 구걸하는 아이는 단지 흉년에만 보리 가을까지 유양하고, 유기한 아이는 풍년과 흉년을 구애하지 말고 절목(節目)대로 시행해야 한다. 1. 구걸하는 아이는 반드시 부모와 친척도 없고 주인도 없고 의탁할 데도 없는 유(類)로 기준(基準)을 삼고, 해부(該部)의 이예(吏隷)나 해리(該里)의 임장(任掌)들이 혹시라도 부동(符同)하여 속여서 고하는 일이있으면 무거운 죄로 다스리고 물시(勿施)해야 한다. 비록 유양(留養)하게 된 뒤이지마는, 부모와 친척 및 주가(主家) 중에 추심(推尋)해 내지 못했을 경우에는, 그 가까운 이웃에게서라도 공초(供招)를 받아 그의 내력을 자세하게 사핵(査覈)해 보아 명백하게 의심이 없어진 다음에야, 해부(該部)에서 월일(月日)을 적기(籍記)하여 고음(侤音)을 받고서 내주어야 한다. 만일에 친척 및 주가(主家)의 형세가 조금 접제(接濟)해 갈 만 한데도 전연 돌보지 않고서 고의로 구걸하게 한 자에 있어서는 별다르게 수방(搜訪)하여 준엄하게 신칙해서 돌려 주며, 다시는 유리(流離)하여 흩어지는 폐단을 가져오는 수가 없게 되도록 해야 한다. 1. 구걸하는 아이들의 유양은, 진휼청(賑恤廳) 밖이나 창고 문 밖의 공한지(空閑地)에 따로 토우(土宇)를 마련하여 유접(留接)하는 장소로 해야 한다. 양식 지급은 진휼청 식례(賑恤廳式例)를 참조하여, 10세에서 7세까지는 하루 한 사람에게 쌀 7홉 장(醬) 2홉 미역[藿] 2입(立)씩으로 하고, 6세에서 4세까지는 하루 한 사람에게 쌀 5홉 장 1홉 미역 1입씩을 준다. 1. 유기한 아이는 마땅히 해부(該部)에서 발견하게 되는 대로 첩보(牒報)해 오게 되지마는, 궁벽한 항간(巷間)이나 깊은 벽지(僻地) 및 교외(郊外)의 조금 먼 곳에 있어서는, 비록 부관(部官)이 목도(目覩)하지는 못하더라도 듣게 되는 것이 있을 경우에는 심험(審驗)해 보고 수습하여 진휼청에 이송(移送)해야 한다. 대저 강보(襁褓)의 아이를 길 가에 유기하게 됨은 별다른 사고가 있은 것 이외에는 곧 부모가 만부득이 하여 인정을 끊어버린 것이지만 진실로 매우 차마 못할 짓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또한 유독 무슨 죄이겠는가? 측은(惻隱)한 인정에 있어서 마땅히 다급하게 구제하여 살리는 방도가 있어야 할 것이니, 오직 부관(部官)만 탐문(探問)할 것이 아니라 비록 지나가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만일에 목격하게 되는 일이 있으면 즉시 이임(里任)에게 부치어 우선 진휼청으로 보내고 따라서 해부(該部)에 통고하게 되어야 한다. 1. 유기한 아이를 유양(留養)하는 일에 있어서는 유랑(流浪)하여 구걸하는 여인들 중에서 젖이 나오는 사람을 가리어, 한 사람에게 두 아이씩을 나누어 맡겨야 한다. 유녀(乳女)에게는 하루 쌀 1되 4홉, 장 3홉, 미역 잎 3입씩을 주어야 한다. 비록 유랑하여 구걸하는 여인이 아니지마는, 혹시 수양(收養)하기를 자원하는 사람이 있으면서도 가난하여 잘 먹지 못하기에 젖을 주기가 어려운 자에 있어서는 단지 아이 하나만을 맡기고서 하루마다 쌀 1되 장 2홉 미역 2입씩을 주어야 한다. 1. 구걸하는 아이나 유기한 아이를 막론하고 만일에 수양하기를 자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결같이 속전(續典)의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진휼청에서 입안(立案)을 만들어 주고, 자녀가 되기 원하거나 노비(奴婢)가 되기 원하는 자가 있으면 각각 그 소원에 따라 시행하되, 양인(良人)과 공사천(公私賤)을 헤아리지 않고 몰아서 수양을 허락한 자와, 집지(執持)한 지 60일이 되지 못하여 시작만 있고 결말이 없게 된 자는 물시해야 한다. 부모나 족속 중에서 석 달이 되기 전에 추심(推尋)해 가는 자에 있어서는 수양(收養)에 쓰인 곡물(穀物)을 배상(倍償)해야 추심해 가기를 허락하고, 구제하여 살린 뒤에 염피(厭避)하는 자는 반주(叛主)로 논죄(論罪)하고, 위세(威勢)를 부려 도로 빼앗아간 자는 왕법(枉法)으로 논죄해야 한다. 1. 구걸하는 아이와 유기한 아이들에게 죽을 먹이고 젖을 먹이는 절차를 만일 관에서 검찰하고 신칙하지 않으면 유명 무실(有名無實)하게 되기 쉬우니, 월말 때마다 해청(該廳)의 낭관(郞官)이 비척(肥瘠)도 살펴보고 근만(勤慢)도 살펴보아, 죽을 잘 먹이지 못한 고직(庫直)과 젖을 잘 먹이지 못한 여인은 하나하나 경책(警責)해야 한다. 해부(該部)의 관원이 혹시 수습하여 첩보(牒報)하기에 소홀했고, 해청(該廳)의 낭청(郞廳)이 유양(留養)을 부지런히 아니한 것이, 염탐(廉探)할 때에 드러나게 되면 진휼청(賑恤廳)에서 초기(草記)하여 논죄(論罪)해야 한다. 1. 구걸하는 아이와 유기한 아이 중에 옷이 없는 유(類)에 있어서는, 진휼청의 전례대로 합당하게 요량하여 만들어 주어야 하고, 유녀(乳女) 중에 혹시 옷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발견하게 되는 대로 일체로 만들어 주어야 하고, 질병 등에 있어서도 해청(該廳)에서 혜민서(惠民署)에 분부하여 간심(看審)하고 구료(救療)하게 해야 한다. 1. 외방(外方)에 있어서는 각 면임(面任)과 이임(里任)이 발견하게 되는 대로 본관(本官)에 첩보(牒報)하면, 본관에서는 허실(虛實)을 잘 살펴 보아, 구걸하는 아이는 단지 진제장(賑濟場)을 차린 고을에서 유양(留養)하게 하고, 유기한 아이는 진제장 설치 여부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거행해야 한다. 죽 먹이고 젖 먹이는 절차와 유접(留接)하고 수양(收養)하는 방법은 한결같이 경절목(京節目)에 의해 시행해야 한다. 곡물(穀物)은 상진곡(常賑穀)으로 회감(會減)하고 장(醬)과 미역은 본관(本官)에서 담당하되, 월말 때마다 사람 수와 곡식 수를 감영(監營)에 신보(申報)하고, 감영에서는 고을마다 조목조목 열거하여 기록한 다음 장문(狀聞)하고, 성책(成冊)을 만들어 진휼청(賑恤廳)에 올려 보내 빙고(憑考)하는 자료가 되게 해야 한다. 각 고을 수령(守令)들이 만일에 혹시라도 사목(事目)을 위반하여 잘 거행하지 않았으면, 경청(京廳)의 사례대로 도신(道臣)이 장문(狀聞)하여 논죄(論罪)해야 하고, 수의(繡衣)가 염탐(廉探)할 적에도 일체로 적발하여 되도록 무겁게 감처(勘處)해야 한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6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409면
- 【분류】구휼(救恤)
○頒字恤典則于中外, 綸音曰: "荒年飢歲, 吾民之顑頷顚連者, 孰非王政之在所拯濟, 而其中最無告、最可矜者, 童稚也。 彼壯者, 爲人傭保, 汲水負薪, 尙可以資生, 童稚異於是, 掩身糊口, 莫之自力, 啼呼乞活, 無處可依。 至於道傍遺棄之類, 未知其間有甚事故, 要之無父母致此境。 設令有父母存焉, 飢寒切膚, 度不能兩全, 割情斷愛, 置之街巷, 以冀人之哀而救之也。 倘有仁人, 卽地收養, 誠幸耳, 不然而蹉過時日, 便無罪就死。 噫! 天地生物之意, 豈亶然哉? 國家之設置活人、惠民兩署, 卽醫藥濟死之意也。 民之有疾病, 猶且設官以救之, 況此童稚之或行乞或遺棄者, 比之疾病, 不啻緊急? 廣濟院、育嬰社之良法美制, 古今異宜, 有難一朝遍行, 而京師八方之所表準, 略倣遺規, 先從此始, 以爲就次取用之地者, 實合仁政之權輿。 予於日前, 偶然思及, 議于大臣, 僉謀旣同。 何必持疑? 其令有司, 爛漫講究, 諸凡合行事宜, 著成節目, 仍卽頒示中外, 俾各永久遵行。 若其豊歉之異例, 年月之定制, 不可無細加裁量, 區別差等, 而有親戚、有主家者, 搜訪寄托之道。 無子女、無僮僕者, 收養許給之法, 亦須務從纖悉, 俾有終始之惠。" 【事目曰: "一, 荒歲行乞之兒, 以十歲爲限。 道傍遺棄之兒, 以三歲爲限。 五部隨聞見牒報賑恤廳, 自賑恤廳留養, 而行乞之兒, 只荒年限麥秋留養, 遺棄之兒勿拘豊歉, 依節目施行。 一, 行乞兒, 必以無父母親戚無主無依之類爲準, 而該部吏隷、該里任掌輩, 或有符同瞞告之事, 重治勿施。 雖在留養之後, 父母親戚主家中, 如有來推者, 則取招於切隣, 詳査其來歷明白無疑, 然後自該部籍記月日, 捧侤音出給。 其親戚及主家之形勢, 稍可接濟, 而全不顧恤, 故令行乞者, 另加搜訪嚴飭還付, 俾無更致流散之弊。 一, 行乞兒留養, 賑廳外倉門外, 空別設土宇, 以爲留接之所。 給糧則參照賑廳式例, 自十歲至七歲, 一日每口米七合、醬二合、藿二立, 自六歲至四歲, 一日每口米五合、醬一合、藿一立計給。 一, 遺棄兒, 常自設部, 隨所見報來, 而窮巷、深僻之處、郊外稱遠之所, 則部官雖未睹有所及聞, 審驗收取, 移送賑廳, 而大扺襁褓兒遺棄道傍, 除非別有事故, 卽是萬不獲已割情之父母, 誠甚不忍。 無知之幼稚亦獨何辜? 其在惻隱之情, 宜急濟活之方, 不惟部官採問而已, 雖是過去之人, 如有目見之事, 卽付里任先送賑廳, 仍爲通至于該部。 一遺棄兒留養事, 流丐女人中, 擇其有乳者, 每一人分授兩兒。 乳女一日每口, 米一升四合、醬三合、藿三立計給。 雖非流丐, 如有自願收養之人, 而貪不自食, 難於飼乳者, 只授一兒, 每一日米一升、醬二合、藿二立計給。 一, 毋論行乞兒遺棄兒, 如有自願收養者, 一依《續典》事目, 自賑廳成給立案, 而願爲子女, 願爲奴婢者, 各從其所願施行, 而不計良人、公私賤竝許收養者, 執持未滿六十日, 有始無終者, 勿施。 其父母、族屬中, 三朔前推尋者, 倍償收養穀物, 許令還推, 救活後厭避者, 以叛主論, 威勢還奪者, 以枉法論。 一, 行乞及遺棄兒饋粥飼乳之節, 若不自官檢飭, 則易致有名無實, 每月終該廳郞官, 審其肥瘠, 察其勤慢, 不善饋粥庫直、不善飼乳之女人, 每每警責。 該部官員或忽收報, 該廳郞廳不勤留養, 有所現發於廉探之時, 則自賑廳草記論罪。 一, 行乞及遺棄兒中, 無依之類, 依賑廳前例, 量宜造給, 乳女中, 或有無衣者, 隨所見一體造給。 疾病之類, 自該廳分付惠民署, 使之看審救療。 一, 外方則各其面里任, 隨所見報于本官, 自本官審察其虛實, 行乞兒只設賑邑留養, 遺棄兒毋論設賑與否, 通同擧行。 饋粥飼乳之節, 留按收養之法, 一依京節目施行。 穀物以常賑穀會減, 醬藿自本官擔當, 而每月終, 口數、穀數報于監營, 自監營逐邑條列後錄狀聞, 修成冊上送賑恤廳, 以爲憑考之地。 各邑守令, 如或違越事目, 不善擧行, 則依京廳例, 道臣狀聞論罪, 繡衣廉探時, 一體摘發, 從重勘處。"】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6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409면
- 【분류】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