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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6권, 정조 7년 10월 15일 계유 4번째기사 1783년 청 건륭(乾隆) 48년

정언 이석하가 과장의 기강·구휼·역로·수원의 중군에 대해 상소하니 비답하다

정언 이석하(李錫夏)가 상소하기를,

"요사이 선비들의 풍습이 단정하지 못하고 과장(科場)이 엄격하지 못하여, 경성(京城)도 오히려 그러하니 시골 과장을 알 만합니다. 매양 시관(試官)이 고을에 이르게 될 때가 되면, 유생(儒生)들이 십 또는 백이 무리가 되어 앞 뒤에서 에워싸고 갖가지로 공갈하고 협박한다는 것을 신(臣)이 일찍이 듣고서 그럴까 하며 의아해 했었는데, 그만 지난달에 장시(掌試)하러 갔을 적에 이 몸이 직접 당해 보니 과연 허언(虛言)이 아니었습니다. 신칙하는 분부를 내리셨는데도 도리에 어그러진 풍습이 여전했으니, 이는 너무나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또한 시문(試文)으로 말하더라도, 시(詩)는 18구(句), 부(賦)는 30구라야 바야흐로 1편을 이루게 되는 것인데, 지금은 시는 15구를 넘지 못하고 부는 또한 26, 7구뿐으로, 편을 이루게 되는 것이 거의 없이 어쩌다 있었으니, 이러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얼마 안가서 전혀 글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버리지 않겠습니까? 이 뒤로는 준엄하게 과조(科條)를 세워 향외(鄕外)에 반시(頒示)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을 듯 싶습니다.

올해의 농사가 흉년 들었음은 도신(道臣)들의 장계(狀啓)가 자세하게 되어있고, 내리신 윤음(綸音)이 간절하고 진지하게 되어있기에, 신(臣)이 다시 번독(煩瀆)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내왕(來往)할 참에 당하여, 거듭 굶주리게 된 잔약한 민생들이 길을 막거나 말[馬]을 막거나 하며, 신에게 돌아가서 그들의 질고(疾苦)하는 실정을 아뢰어 주기를 요구했습니다. 다가오는 해에 돌보아 구제해 갈 황정(荒政)에 대해 묘당(廟堂)을 신칙하여 미리 상확(商確)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역로(驛路)의 피폐는 요사이와 같은 적이 없었는데, 진실로 그 피폐하게 된 원인을 추구(推究)해 보면 마위전(馬位田)을 도지(睹地)로 사매(私賣)한 소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뒤로는 해도(該道)와 해역(該驛)으로 하여금 평민(平民)들 가운데 사매(私買)한 자를 사핵(査覈)해 내어 준엄하게 형벌해서 먼 데로 귀양 보내고, 살펴서 검칙(檢飭)하지 못한 해당 역관(驛官)에 있어서도 적발되는 대로 논죄(論罪)하여 감단(勘斷)한다면, 거의 조금이라도 소생(蘇生)시켜 개혁하는 방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원(水原)의 중군(中軍)은 곧 양남(兩南)의 인후(咽喉)와 같은 것이니 관계됨이 어떠한 것이겠습니까마는, 차임(差任)하여 보내기를 전조(錢曹)에서 하지 않고, 다만 해부(該府)에서 계청(啓請)하여 하기 때문에 자급(資級)이 낮고 물망(物望)이 가볍게 되므로, 대개 겨우 도임(到任)했다가 앞당겨 돌아가버리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만일에 다른 데의 중군의 예대로 삼망(三望)을 갖추어 낙점(落點)을 받게 한다면, 처지와 물망이 묵직해지게 되고 군무(軍務)도 비게 되는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제 1건(件)의 일은 묘당으로 하여금 별다르게 말을 만들어 중외(中外)를 준엄하게 신칙하도록 하겠다. 제 2건의 일도 역시 묘당으로 하여금 유의하여 강구하게 하겠고, 제 3·제 4건의 일은 그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49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39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군사(軍事) / 교통(交通) / 농업(農業)

○正言李錫夏上疏曰:

近來, 士習不端, 科場不嚴, 京城猶然, 鄕圍可知。 每當試官之到邑, 儒生輩十百爲群, 遮擁前後, 恐脅百端, 臣嘗聞而然疑, 乃於前月掌試之行, 身親當之, 果非虛語。 飭敎之下, 悖習猶前, 此已寒心, 而且以試文言之, 詩之十八句、賦之三十句, 方爲成篇。 今則詩不過十五句, 賦亦止廾六七句, 成篇者絶無而堇有。 若此不已, 幾何而不至於專不成文乎? 此後則嚴立科條, 頒示鄕外, 恐不可已也。 今年穡事之告歉, 道啓詳備, 綸音懇摯, 臣不必更煩, 而來往之際, 荐飢殘民, 攔道遮馬, 要臣歸奏其疾苦之情。 嗣歲賙捄之政, 請申飭廟堂, 預加商確。 驛路凋殘, 莫近日若, 苟究爲弊之源, 莫非馬位田私賣賭地之致。 此後令該道、該驛, 査櫛平民之私買者, 嚴刑遠配, 不能察飭之該驛官, 隨現論勘, 則庶可爲一分蘇革之道矣。 水原中軍, 卽兩南咽喉, 關係何如, 而差遣不由銓曹, 該府只以啓請, 故資淺望輕, 率多纔到經還。 若依他中軍例, 備望受點, 則地望可重, 戎務無曠。

批曰: "第一件事, 令廟堂別般措辭, 嚴飭中外。 第二件事, 亦令廟堂, 留心講究。 第三件、第四件事, 依施。"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49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399면
  • 【분류】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군사(軍事) / 교통(交通) /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