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정조실록 16권, 정조 7년 8월 23일 임오 2번째기사 1783년 청 건륭(乾隆) 48년

성경 예부의 자문에 회답할 말을 의논하다

성경(盛京)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에 이르기를,

"건륭(乾隆) 48년 8월 14일 행재 예부(行在禮部)의 자문에 개열(開列)한, 등정(等情)에 의거하여 대신 상주(上奏)하는 일을 접준(接准)하여, 본부(本部)에서 구주(具奏)한 내개(內開)에, 8월 3일에 접준한 성경 예부의 자칭(咨稱)에, 조선 국왕(朝鮮國王)이 자칭한 것을 접준하건대, ‘삼가 받들건대 황상(皇上)께서 성경에 가림(駕臨)하시게 되고 때마침 성절(聖節)을 만나게 되어, 다행히도 도산(塗山)에서처럼 옥백(玉帛)을 들고 갈 기회를 당하였기에, 당신(唐臣)처럼 헌감(獻鑑)하는 정성을 바치려고 하느라, 우리 동토(東土) 대중의 심정이 모두 들뜨는 기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삼가 대신 하나의 천사(賤使)를 보내어 두 차례의 하의(賀儀)를 겸하여 닦게 하면서, 변변치 못한 것으로 따로 토공(土貢)을 갖추고, 쏠리는 정성을 외람하게도 낭함(琅函)에 진달(陳達)하여, 삼가 문안하는 예를 닦고 또한 수무 족도(手舞足蹈)하는 심정을 펴느라, 범이 하늘을 보며 절하고 자라가 해를 가리키며 손뼉 치듯이 하게 됩니다. 전번에 귀부(貴部)의 지조(知照)와 점단(粘單)을 받들건대 황상(皇上)께서 성경(盛京)에 가시는 날짜를 8월 16일로 기일을 고친 것이었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소방(小邦)의 구구(區區)하나마 정성을 다하는 길은 오직 의물(儀物)을 바치고 경하(慶賀)하는 예를 하는 것뿐입니다. 난가(鑾駕)가 길을 떠나는 날짜가 비록 만수 영절(萬壽令節)의 뒤에 있게 되더라도 호숭(呼嵩)178) 하는 한 가지 생각은 단심(丹心)처럼 훤하여, 감히 행행(幸行) 기일이 고쳐진 것 때문에 스스로 막히게 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하물며 비개(鄙价)가 행장을 꾸리어 길을 떠날 적에, 정결하게 치재(致齋)하고 좋은 날을 가리어 몸소 신료(臣僚)들을 거느리고 백배(百拜)하며 멀리 전송했습니다. 사신의 수레가 도중에서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또 달리고 또 달리어 장차 중국 땅으로 건너가서는 가지고 간 문자(文字)를 장차 을람(乙覽)하시게 해야 할 것이기에 뒤쫓아 고치게 할 수가 없었고, 준례대로 공헌(貢獻)하는 방물(方物)도 마땅히 예법대로 겸하여 올려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번독(煩瀆)스럽게 됨을 피하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대로 달려가서 주필(駐蹕)하시는 날을 의대(擬待)하고 있다가 축화(祝華)하는 정성을 펴도록 했습니다. 이를 위해 자청(咨請)하게 된 것이니, 자세히 참조하여 시행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등인(等因)이었습니다. 상응(相應)하여, 조선국(朝鮮國)에서 자보(咨報)한 거가(車駕)를 영접(迎接)하여 공헌(貢獻)하게 할 장수를, 행재 예부(行在禮部)에 자명(咨明)해 주기 바란다는 등인(等因)이 전래(前來)해 왔는데, 사리가 등정(等情)에 의거해서 해야 하기에, 삼가 섭주(攝奏)를 대신하여 상주(上奏)하고 대신하여 명이 내리기를 기다리건대, 신부(臣部)에서 성경 예부(盛京禮部)에 행문(行文)하여 준례를 참조하여 판리(辦理)하게 하라는 등인(等因)이었습니다.

건륭(乾隆) 48년 8월 6일의 주본(奏本)에, ‘봉지(奉旨)하건대, 조선(朝鮮)이 외번(外藩)의 반열에 있으면서 부지런히 직공(職貢) 닦기를 가장 공순(恭順)하게 했다. 이번에는 짐(朕)이 성경(盛京)에 임행(臨幸)하게 된 것 때문에, 배신(陪臣)을 보내 표문(表文)을 올리어 직공(職貢)을 닦고 거가(車駕)를 영접(迎接)하여 문안하고, 아울러 만수(萬壽)를 축하하여 침곤(忱悃)을 펴는 일을 하겠다니, 매우 아름답게 여겨야 할 일이다. 그때가 되면 마땅히 은혜로운 상사(賞賜)를 내리어 우악(優渥)한 은총(恩寵)을 보이어야 할 것을, 예부(禮部)의 당관(堂官)이 전유(傳諭)하여 알아차리게 하라. 흠차(欽此)하여 흠준(欽遵)하라.’고 하였습니다.

상응(相應)하여, 성경 예부에 행문(行文)하여, 유지(諭旨)를 흠준(欽遵)하여 판리(辦理)하게 한다는 등인(等因)이기에, 이를 접준(接准)하고, 상응(相應)하여 조선 국왕에게 지조(知照)하여 흠준(欽遵)하게 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묘당(廟堂)에 명하여, 회자(回咨)할 말을 상확(商確)하도록 하매,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이번의 황지(皇旨)는 격외(格外)의 것이니, 마땅히 가까운 무진년179) 의 사례대로 회계(回啓) 내용에 먼저 따로 사신을 보낸다는 언급(言及)을 하는 것이 진실로 사의(事宜)에 합당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황지가 이처럼 누누이 하였으니, 따로 말을 잘 만들어 자문(咨文)을 지어, 심경(瀋京)에 이르기 전에 들여보내어 우리 나라의 신사(申謝)하는 뜻을 보여야 한다. 따로 사신을 보내는 한 가지 조목에 있어서는, 비록 가까운 무술년180) 의 사례가 있으니 이번에도 또한 인순(因循)하여 사용한 다음에 마땅히 영원토록 응당 거행하는 것으로 해야 하기는 하지마는, 사행(使行)이 중첩되는 폐단이 없게 될 수 있겠느냐? 또 저들이 심경에 온 다음에는 반드시 별반(別般)의 은혜로운 사례가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별도로 사신을 차출(差出)하여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지 않겠느냐? 내 생각에는 이번 회자 내용에다가 성대하게 사은(謝恩)하는 뜻을 진달하고, 따라서 다음 사행(使行) 때에 마땅히 다시 표문(表文)을 올려 칭사(稱謝)할 것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알 수 없지마는 어떨런가 싶다. 이러는 것이 혹시라도 범홀(泛忽)한 혐의가 있게 될 것이라면, 경(卿)들의 말대로 칭사하는 사신을 따로 보내는 것도 또한 안될 것이 없으니, 다시 더 상의하여 하나로 확정지어 초기(草記)를 만들라."

하였는데,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회자(回咨)의 내용에, 다음 사행 때에 마땅히 다시 표문을 올려 칭사하겠다고 말하자는 것은, 성상께서 하신 분부가 지당한 것으로써, 따로 사신을 보내게 되는 뜻이 자연히 그 속에 들어 있게 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에 의하여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391면
  • 【분류】
    외교-야(野)

  • [註 178]
    호숭(呼嵩) :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숭산(嵩山)에 올라가 제사를 지낼 때 곳곳에서 만세 소리가 들렸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로서, 백성들이 임금을 찬양하여 만세를 부르며 즐거워함을 말함.
  • [註 179]
    무진년 : 1748 영조 24년.
  • [註 180]
    무술년 : 1778 정조 2년.

○盛京禮部咨曰: "乾隆四十八年八月十四日, 准行在禮部咨開, 據情代奏事, 本部具奏內開, 八月初三日, 准盛京禮部咨稱, 准朝鮮國王咨稱: ‘伏承皇上駕臨盛京, 時値聖節, 幸際塗山執玉之辰, 佇效臣獻鑑之忱, 東土群情擧懷欣聳。 謹替一价賤使, 兼修兩度賀儀, 菲物別具於土貢, 葵悃猥陳於琅函, 恭修起居之禮, 且伸舞蹈之情, 瞻天虎拜, 指日鰲抃。 廼者獲奉貴部知照粘單, 皇上前往盛京日字, 改期於八月十六日。 竊念, 小邦區區盡誠之道, 惟有儀物之享、慶賀之禮而已。 啓鑾日字, 雖在萬壽令節之後, 呼蒿一念, 炳然如丹, 不敢以行幸之改期, 有所自阻。 況於鄙价裝發之時, 致齋之潔, 選日之良, 躬率臣僚, 百拜遠將。 星軺在途, 罔敢留滯, 載馳載驅, 將涉中土, 文字將塵於乙覽, 理難追改, 貢獻式遵於方物, 禮宜兼進。 玆庸不避煩瀆, 仍令依前趕到, 擬待駐蹕之日, 俾展祝華之悃, 爲此合行, 咨請照詳施行。’ 等因相應, 將朝鮮國咨報, 接駕貢獻之處, 咨明行在禮部等因前來, 理合據情, 恭摺代奏代候, 命下臣部, 行文盛京禮部, 照例辦理等因。 於乾隆四十八年八月初六日奏本曰: ‘奉旨, 朝鮮列在外藩, 勤修職貢, 最爲恭順。 今以朕臨幸盛京, 遣陪臣賫表修貢, 迎駕請安, 竝祝萬壽, 藉抒忱悃, 甚屬可嘉。 屆時當加恩賞賚, 以示優眷。 着禮部堂官傳諭知之。 欽此欽遵。’ 相應行文盛京禮部, 欽遵諭旨, 辦理等因, 准此相應知照, 朝鮮國王欽遵可也。" 上命廟堂, 商確回咨措辭。 備邊司啓言: "今此皇旨, 出於格外, 宜用戊辰近例, 回啓中先及別送謝价之語, 允合事宜。" 批曰: "皇旨如是縷縷, 則別撰咨文, 善爲措辭, 趁到瀋京前入送, 以示我國申謝之意。 至於別送謝价一款, 雖有戊戌近例, 今又循用後, 當永作應行之擧, 使行得無稠疊之弊乎? 且彼到瀋京之後, 必有別般恩例。 然則別使自不得不差遣? 予意以爲: ‘今番回咨措語, 盛陳謝恩之意, 仍以來頭使行, 更當奉表稱謝爲說, 未知如何。’ 此或有泛忽之嫌, 則依卿等言, 別送謝使, 亦無不可。 更加商確, 指一草記。" 備邊司啓言: "回咨措語中, 來頭使行, 更當奉表稱謝爲說, 聖敎允當, 別送謝价之意, 自在其中矣。" 批曰: "依此爲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16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391면
  • 【분류】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