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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5권, 정조 7년 4월 27일 정해 3번째기사 1783년 청 건륭(乾隆) 48년

원자의 태를 봉하는 일에 관한 예조 판서 서호수 등의 상소

예조 판서 서호수, 참판 이숭호 등이 상소하기를,

"신들이 원자(元子)의 태(胎)를 봉하는 일에 대해 의견이 있습니다. 신들이 삼가 선왕의 수교(受敎)를 상고해 보니, ‘이 뒤로는 어원(御苑)에다 태를 묻도록 정하라.’고 하셨는데, 이는 그때 옛 대궐 안에서 석함(石函)에 새겨진 글을 얻은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태를 봉하는 법은 본래부터 1등, 2등, 3등의 구분이 있는데, 신의 부서의 등록 가운데 우리 조정 18대 임금의 태봉(胎峰)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1등 태봉은 옛 대궐 안에 있지 않고, 석함에 있는 것은 2등 이하란 것이 확실합니다. 수교 가운데 비록 1, 2등을 구분하는 말씀은 없었으나, 옛 대궐 석함에 있는 것이 2등 이하이고 보면 1등의 의절을 이것으로 인용하여 예를 삼을 수 없다는 것은 단연코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이 일은 전례(典禮)에 관계되므로 감히 묵묵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재량하여 채택하셔서 국가의 체통을 중하게 하소서."

하니, 대신에게 의논한 다음 품처하라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365면
  • 【분류】
    왕실(王室)

○禮曹判書徐浩修、參判李崇祜等上疏曰:

臣等以元子宮胎封事, 竊有愚見。 臣等謹稽先朝受敎, 則此後藏胎之以御苑爲定, 亶由伊時, 適得舊闕內石凾書刻, 然胎封之法, 元有一等、二等、三等之分, 而臣曹謄錄中, 國朝以來, 十八朝胎峰, 歷歷見載, 則一等胎峰之不在舊闕, 石凾之爲二等以下明矣。 受敎中, 雖無一二等分別之敎, 而舊闕石函, 旣爲二等以下, 則一等儀節之不可援此爲例, 斷然無疑。 事係典禮, 不敢泯默。 乞賜財擇, 以重國體焉。

命就議大臣稟處。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365면
  • 【분류】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