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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5권, 정조 7년 2월 6일 정묘 2번째기사 1783년 청 건륭(乾隆) 48년

화순 귀주의 마을에 정문을 세우는 기념으로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다

화순 귀주(和順貴主)의 마을 어귀에 정문(旌門)을 세우게 하였다. 하교하기를,

"사람이 제몸을 버리는 것은 모두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하가 그리하였을 경우에는 충신(忠臣)이 되고 자식이 그리하였을 경우에는 효자(孝子)가 되고 부녀자가 그리하였을 경우에는 열녀(烈女)가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어미가 지아비를 따라 죽는 것은 교훈으로 삼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자식이 생명을 잃은 것을 성인이 경계하였지만 거상(居喪)을 끝내지 못하고 죽어도 효도에 지장이 없고 보면 지어미가 지아비를 위하는 것에 있어서 무엇이 이와 다르겠는가? 부부(夫婦)의 의리를 중히 여겨 같은 무덤에 묻히려고 결연히 뜻을 따라 죽기란 어렵지 않는가, 매섭지 않은가? 여염의 일반 백성들도 어렵게 여기는데 더구나 제왕(帝王)의 가문이겠는가? 백주(栢舟)를 읊은 시는 겨우 《시경(詩經)》에 나타나 있으나 죽음으로 따라간 자가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화순 귀주는 매우 뛰어났다고 하겠다. 월성 도위(月城都尉)의 상(喪)에 화순 귀주가 10여일 간 물과 음식을 먹지 않다가 죽었는데, 그때 선대왕께서 그의 집에 가시어 위로하면서 음식을 권하였으나 끝내 강권하지 못하였다. 어질고 효성스러운 화순 귀주가 임금과 어버이의 말씀을 받들어 따라야 한다는 의리를 모르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그의 한번 정한 뜻을 바꾸지 않았던 것은, 정말 왕명을 따르는 효도는 작고 남편을 따라 죽는 의리는 크기 때문이었다. 아! 참으로 매섭도다. 옛날 제왕의 가문에 없었던 일이 우리 가문에서만 있었으니, 동방에 곧은 정조와 믿음이 있는 여인이 있다는 근거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어찌 우리 가문의 아름다운 법도에 빛이 나지 않겠는가? 더구나 화순 귀주는 평소 성품이 부드럽고 고우며 덕의가 순일하게 갖추어져 있었으니, 대체로 본디부터 죽고 사는 의리의 경중을 잘 알고 있으므로 외고집의 성품인 사람이 자결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아! 참으로 어질도다. 화순 귀주와 같은 뛰어난 행실이 있으면 정문의 은전을 어찌 베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이를 잊은 적이 없었으나 미처 거행하지 못하였다. 지금 각도의 효열을 포상하는 때를 맞아 슬픈 감회가 더욱더 일어난다. 유사로 하여금 화순 귀주의 마을에 가서 정문을 세우고 열녀문(烈女門)이라고 명명하라."

하였다. 또 하교하기를,

"화순 귀주의 집에 이미 정문의 은전을 시행하기로 하였으니, 마을에 정문을 세우는 날 치제(致祭)하고 제문은 마땅히 내가 직접 지어야겠다. 이로 인해 또 감회가 생기는 것은 화평 귀주(和平貴主)의 덕행을 궁중에서 지금까지 여자 중의 군자라고 일컫고 있다. 그리고 또 하늘에서 타고난 효성과 우애에 있어서는 실로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하는데, 한스럽게도 내가 늦게 태어나 모습을 뵙지 못하였다. 장주(長主)의 마을에 정문을 세우라고 명하였는데, 화평 귀주의 마을에 어찌 뜻을 표시하는 일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그 역시 날을 가려 제사를 지내야 하겠다. 그 제문도 내가 직접 짓겠으니, 모두 열흘 뒤에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350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

○旌和順貴主之閭。 敎曰: "人有身而能捐者皆難也, 故在臣爲忠, 在子爲孝, 在婦爲烈, 或謂婦從夫死, 難以爲訓, 然子之滅性, 聖人所戒, 而不勝喪者, 不害其爲孝, 則婦之於夫, 何異於是義, 重齊體, 志在同穴, 決然捐身而殉志, 不其難歟? 不其烈歟? 閭閻匹庶, 猶以爲難, 矧在帝王家乎? 栢舟之詠, 堇見於經, 而以死從者, 蓋未之聞也。 若我和順貴主, 可謂卓然已矣。 月城都尉之喪, 貴主絶水穀凡十許日而卒。 其時先大王臨第慰勸, 而終不能强焉。 夫以貴主之賢且孝, 非不知奉承君親之義, 而竟不回其一定之志者, 誠以從命之孝少, 而殉身之義大也。 噫其烈哉! 從古帝王家所無, 而獨我家有之。 不但東方貞信之有徵, 豈不有光於我家之懿節乎? 況貴主平日資性婉柔, 德誼純備, 其明於死生義理之輕重, 蓋有素矣, 非取決於介然者之比也, 噫亦賢哉。 卓絶之行, 有如貴主, 則(棹)〔綽〕 楔之典, 烏可不施。 予未嘗忘于懷, 而未遑擧也。 今當各道孝烈褒奬之日, 尤切興愴, 其令有司, 就和順貴主之第, 旌其門曰: "烈女。 又敎曰: "和順貴主主第, 旣擧(棹)〔綽〕 楔之典, 旌閭日致祭, 祭文當親撰矣。 因此而又有起感者。 和平貴主之德之行, 宮中至今稱女中君子, 若又孝友根天之誠, 實有不可殫記者, 恨予生晩, 儀容未逮, 而長主之門, 有此旌異之命。 此主第, 豈可無表意之擧, 亦令卜日致祭, 祭文亦已親撰。 皆以旬後擧行。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20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350면
  •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