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수령에게 진휼에 힘쓸 것을 명하다
경기·호서의 감사에게 유시하기를,
"지난해 가을 경기와 호서에 큰 흉년이 들면서부터 내가 편안히 밥을 먹지 못한 지 벌써 한 해가 넘었다. 재부(宰夫)가 때로 수라를 올리게 되면 몸시 굶주린 백성들이 생각나서 곧바로 대그릇에 담고 병에 넣어서 두루 민간에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아! 세금을 견감하고 적곡(糴穀)의 상환을 중지시켰으나 견감과 중지의 혜택을 입는 자가 솥과 집을 파는 고초를 면하기 어려운데, 무슨 남은 곡식이 있어서 춘궁기(春窮期)까지 지탱하겠는가? 또 더구나 견감하지 않고 중지해주지 않은 사람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세전(歲前)에 몇 차례 급한 상황을 구제하였는데, 구제받은 사람은 그래도 부황(浮黃)의 색을 면하였지만 구제받지 못한 사람은 배가 고파 아우성을 치지 않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지금 봄이 된 지 여러 날이 되었고 진휼도 이미 시작되었다. 아! 의지할 데 없고 하소연할 데 없는 나의 백성들이 과연 구렁에 쓰러지거나 길거리에 떠돌지 않고 안도하여 먹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진휼하는데 네 가지 어려운 점이 있는데, 굶주린 사람과 굶주리지 않은 사람이 뒤섞이기 쉽고 영근 곡식과 쭉정이 곡식이 뒤섞이기 쉽고 큰 되와 작은 되가 바뀌기 쉽고 짠 장과 싱거운 장이 혼합되기 쉬우니, 이 네 가지가 잘못되면 진휼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기 때문에 곡식을 나누어줄 때에는 몸소 수량을 살펴보고 죽을 나누어줄 때에는 몸소 맛을 보는 것인데, 그 의의가 우연한 것이 아니다. 내가 또한 듣건대, 백성들 중에 품을 팔거나 땔나무를 하여 한 해 동안 부지런히 노동을 해도 곡식이 생길 데가 없는 자는 물론 불쌍하기는 하나 부식(付食)할 데가 있다. 그렇지만 전에 벼슬하였던 조정의 관원과 선비들에 있어서는 구제받는다는 명칭이 부끄러워서 굶주림을 참으면서 원치 않는가 하면 또 그 가운데 양반붙이 중 홀로 된 궁한 부녀자들은 이미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데다가 노복도 없어서 사정을 말하지 못하고 앉아 있는 바람에 누락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람은 수령이 몸소 여염을 돌면서 마음을 다해 찾아보고 유시를 선포한 다음 뽑아내어 나누어 줌으로써 한 사람이라도 살 곳을 잃지 않게끔 하라. 예로부터 흉년이 들어 진휼한 일이 얼마나 많은가마는, 반드시 익주(益州)의 한기(韓琦)와 청주(靑州)의 부필(富弼)을 일컬은 것은 그들의 정성이 민정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헌(軒)·기(歧)017) 가 의술에 능통하고 공(龔)·황(黃)018) 이 백성을 잘 다스렸던 것 역시 정성으로 하였을 뿐이다. 옛날에 얽매이거나 상례에 구애받지 말고 나의 정성을 다하여 해 나감으로써 송(宋)나라에의 한기·부필만 미명(美名)을 독차지하게 하지 말라.
두 도의 진휼할 밑천은 이미 계획을 짜게 하였다. 국가의 창고를 열어 국민을 구제하면 별도로 마련할 것이 없을 것 같지만, 내가 왕위를 계승한 뒤로 내수사에 관계되는 용도를 일체 줄여서 별도로 하나의 내탕고에 저축해 두었는데, 이는 그 재물을 사사로이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백성이 수재나 한재를 당하였을 때 기근을 구제하는 밑천을 삼기 위해서였다. 별도로 은택을 베푸는 국가의 고사까지 있지 않는가? 지금 경기에는 돈 6천 민(緡)과 호초(胡椒) 2백 근을, 홍충도에는 돈 4천 민과 호초 1백 근을 내리는 바이니, 경은 이를 받아 진휼을 설치한 여러 고을에 적당히 분배하여 부족한 것에 보탬이 되게끔 하라. 아! 물에다 술을 푼 고사019) 가 있는데, 물이 어찌 술맛이 나겠는가마는 서로 감동되는 것은 마음이다. 이 물건이 얼마 안되지만 내가 수라를 들면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지극한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구중 궁궐이 깊숙하여 몸소 살피지 못하므로 믿는 것은 감사와 수령들이니, 한 명을 뽑아 곡식 한톨을 나누어 주더라도 내가 직접 보는 것처럼 하라. 밤낮으로 경각심을 가지고 게을리하거나 소홀히 하지 말아 우리 궁한 백성들을 살리어 큰 공을 아뢰도록 하라. 근실히 하면 상을 주고 게을리하면 벌을 줄 것이니, 내가 많이 말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내가 지금 사직단에 가서 오는 상신일(上辛日)에 몸소 희생과 폐백을 올리고 백성을 위해 풍년을 기도하려고 한다. 이에 향소(享所)에서 유시를 반포하는데, 이는 백성을 위해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344면
- 【분류】구휼(救恤)
- [註 017]헌(軒)·기(歧) : 헌(軒)은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이고, 기(歧)는 기백(歧伯)으로 모두 의가(醫家)의 시조임. 옛날 의서(醫書) 《소문(素問)》에 황제와 기백을 가탁하여 문답을 적어 놓았음.
- [註 018]
공(龔)·황(黃) : 한(漢)나라 선제(宣帝) 때의 공수(龔遂)와 황패(黃覇)를 말함. 공수는 발해 태수(渤海太守)로 있을 때 난민을 너그럽게 다스리어 병기(兵器)를 가진 자에게 그것을 팔아 소를 사서 농상(農桑)을 힘쓸 것을 권하여 도적이 지식되었고, 황패는 하남 태수(河南太守)로 재임시 관화(寬和)하게 선정(善政)을 하였는데, 모두 치군(治郡)을 잘한 명신(名臣)임.- [註 019]
물에다 술을 푼 고사 : 옛날 훌륭한 장수가 있었는데, 어떤 자가 술 한 병을 바치자, 병사(兵士)들을 생각하여 혼자 마실 수가 없어 그것을 하수(河水)에 던져 풀어서 병사들에게 그 흐르는 물을 맞아 마시게 했다는 고사(故事)로, 병사들과 고락(苦樂)을 함께 한다는 말임.○諭京畿湖西道臣曰: "自去秋, 畿湖大歉, 予之不遑寧食, 已踰歲矣。 宰夫以時進饍, 輒思顑頷之民, 直欲包于簞、盛于壺, 遍及于蔀屋, 而不可得也。 噫! 稅則蠲, 糴則停, 蠲者停者, 難免鬻鼎賣屋之苦, 有何餘粟, 能及窮春? 又況不蠲而不停者乎? 歲前之幾巡救急, 見救者容或免浮黃之色 不見救者, 安知無癸庚之呼乎? 方今開春有日, 賑事已始。 嗟! 予無依無告之民, 果能不于溝壑, 不于道路, 而安堵待哺否歟? 賑之難有四, 飢口之虛實易蒙也, 穀品之精粗易雜也, 斗升之大小易換也, 鹽醬之醎酸易混也。 失此四者, 與不賑等耳。 故分粟則躬自監量, 饋粥則躬自嘗味者, 法意非偶爾也。 予又聞之, 小民之或事傭賃, 或事薪樵, 終歲勤動, 無穀可生者, 固所矜惻, 而自在付食。 至於前銜朝官曁夫章甫之士, 恥於其名, 忍飢不願。 又其中班族婦女之窮寡, 旣難呼籲, 且乏僮僕, 莫之自衒, 坐而見漏。 如此之人, 守令躬行閭里, 極意搜訪, 宣布曉諭, 抄出分受, 毋令一人不獲其所。 歉歲開賑, 從古何限, 而必稱益州之韓, 靑州之富, 以其一箇誠字, 貫徹民情故耳。 軒、岐之聖於醫, 龔、黃之工於治, 亦是誠而已。 毋泥於古, 毋拘於常, 盡吾誠做將去, 無令韓、富專美有宋。 兩道賑資, 己令區劃。 發公倉賑國民, 若無事乎別般拮据, 而予自嗣服以後, 凡係內需之用, 一切省減, 別儲一帑, 予非私其財也, 蓋爲吾民水旱飢饉之資也。 別施恩澤, 況有國朝故事? 今下京畿, 錢六千緡、胡椒二百斤。 洪忠道, 錢四千緡、胡椒一百斤。 卿其祇受, 酌量分排於設賑諸邑, 以補不足。 噫! 投醪於水, 水豈有味, 而所相感者心也。 此物雖薄, 亦庶幾知予臨御膳思蔀屋之至意也。 九重夐邃, 莫能躬察, 則所恃者方伯與守宰也。 抄一口、分一粟, 若予之臨視。 夙宵憧憧, 毋怠毋忽, 活我窮民, 以奏膚功。 勤則有賞, 慢則有罰。 予又何多誥? 予方祇詣社稷, 以今上辛之日, 躬薦牲幣, 爲民祈豐。 玆於享所, 庸敷十行, 卽爲民祈豐年之意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15권 8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344면
- 【분류】구휼(救恤)
- [註 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