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방 등의 죄인을 국문하여 역모사건에 대해 알아내다
문인방(文仁邦) 등 여러 죄인을 친히 국문하였다. 문인방이 공초하기를,
"신이 얻은 요술의 책 중 하나는 《승문연의(乘門衍義)》이고 하나는 《경험록(經驗錄)》이고 하나는 《신도경(神韜經)》이고 하나는 《금귀서(金龜書)》입니다. 그리고 청계 선생(淸溪先生)은 바로 송덕상입니다. 백천식(白天湜)과 신이 함께 이 책을 익히다가 양성(陽城)과 진천(鎭川) 등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초막을 얽어 놓고 거처하였습니다. 난리가 날 것이라는 설과 별을 보았다는 설은 박서집이 공초한 것과 같습니다. 양양(襄陽)에 사는 이경래(李京來)는 이인(異人)이기 때문에 도원수를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도창국(都昌國)을 선봉장으로 삼고 박서집을 운량관(運粮官)으로 삼은 다음 신의 스승 송덕상이 귀양간 것으로 인하여 대선생(大先生)으로 일컫고 나서 김훈(金勛) 등 8명과 같이 성읍을 도략(屠掠)하고 도성으로 곧장 쳐들어가려는 모의까지 하였습니다."
하였다. 문인방을 박서집·백천식과 대질시켰다. 공초하기를,
"이경래·도창국·김정언(金廷彦)·오성현(吳聖賢)·김훈·백천식은 모두 같은 당류인데, 송덕상이 죄를 입은 것을 위해서 은밀히 군사를 일으켜 대궐을 침범하려고 모의했습니다."
하였다. 이경래가 말하기를,
"그는 이택징과 가까운 인척이고 송덕상의 제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역모를 했습니다."
하였다. 문인방의 결안(結案) 공초에,
"신이 역모를 한 것은 이미 박서집의 고발에서 드러났고 또 백천식의 공초에서 나왔으니, 낱낱이 바른 대로 불겠습니다. 박서집이 공초한 가운데 말들은 모두 신이 주고받은 흉악한 말입니다. 박서집이 하늘에 축수한 글 중에 석 자는 신이 지어낸 것으로 얽어 짜려는 계교였습니다. 《정감록(鄭鑑錄)》 가운데 여섯 자의 흉악한 말도 지어내어 모함하려는 계교였는데, 이 흉악한 말은 일찍이 신의 책자 중 《경험록》에서도 나타나 있습니다. 대체로 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합하면 네 책인데 모두 매우 요망하고 허탄한 글로서 오로지 거짓 핑계대어 대중을 현혹시키려고 꾀한 것입니다. 같은 당류 이경래는 양양(襄陽) 임천리(林川里)에 살고, 도창국은 영원(寧遠) 내락림(內樂林)에 있고, 김정언(金廷彦)은 안변(安邊)에 있고, 곽종대(郭宗大)는 순안(順安)에 있고, 오성현은 안변(安邊)에 있으며, 이밖에 김훈과 백천식입니다. 그리고 청계 선생은 송덕상이고 송계유(宋季琉)는 송덕상의 손자로 지금 나이 28세인데, 이들은 모두 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역모를 한 자들입니다. 신이 이경래·도창국과 같이 여느 때 서로 왕래하였는데, 신축년 9월에 또 이경래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이경래가 말하기를 ‘우리 선생 송덕상이 조정에 죄를 얻어 뜻밖에 멀리 귀양을 가 지금 사태가 이미 급해졌으니, 빨리 거행함이 좋을 듯하다. 그대가 인재를 잘 모집하면 성사된 뒤에 장수나 정승이든 간에 크게 등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경래를 도원수로, 도창국을 선봉장으로 삼았습니다. 양양에 그의 당류와 노복이 많이 있으므로 불시에 갑자기 일어나 먼저 양양 군수를 죽이고 나서 군기와 병사를 거두어 들인 다음 간성(杆城)을 공격하고 나서 강릉(江陵)으로 들어가고 강릉에서 곧바로 원주(原州)로 들어가고 이어서 계속 밀고 들어가 동대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일을 성공한 뒤에 송덕상을 대선생(大先生)으로 봉하기로 하였습니다. 거사할 날짜는 이경래와 도창국이 의논해서 갑진년 7월과 9월 사이로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경래가 말하기를, ‘우리 일가붙이에 이택징이란 사람이 있고 그밖에 또 많은 일가붙이가 있으니, 그들과 체결하겠다. 그리고 서울에 있어서는 내 또한 주선하겠으니, 너는 삼남(三南)으로 가서 힘이 세어 쓸 만한 무리가 있으면 어떠한 조건을 붙여서 찾아 모으라.’고 하였는데, 신이 진천(鎭川)에 와서 머물러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대역 부도한 짓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였다. 양사에서 합계하기를, 【 대사헌 정호인(鄭好仁), 대사간 신응현(申應顯), 사간 박성태(朴聖泰), 장령 권평(權坪), 헌납 김익휴(金翊休), 정언 권유(權𥙿)·이태형(李太亨)이다.】
"요즈음 난역이 뒤따라 일어난 것은 모두 송덕상을 위해 죽겠다는 계교인데, 그 기염의 치성함과 배포의 넓음이 사실 종사(宗社)의 말하기 어려운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과연 이번에 문인방이 출현하였는데, 내막의 흉악함과 모의의 음참함이 실로 역사상 있지 않았던 극도로 흉악한 악인들이었습니다. 삼자(三字), 육자(六字) 등의 흉악한 말은 참으로 너무나 불측한 것이었습니다만, 도당들을 불러모아 원수나 선봉장으로 일컫고 감영과 고을을 도략한 다음 곧바로 도성을 침범한다는 것에 있어서는, 오로지 송덕상을 위해서였다는 상황에 대해 낱낱이 바른 대로 공초하였습니다. 이미 결안을 받았는데 어떻게 다른 죄인을 미처 붙잡아 오지 못했다고 해서 일각이라도 천지 사이에 목숨을 부지하게 놔둘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대역 부도 죄인 문인방에게 사형을 시행하소서."
하니, 하교하기를,
"이미 정법하기로 결안을 받아냈으니, 어느 때인들 사형을 집행하지 못하겠는가마는, 앞서 하교한 대로 죄인들을 붙잡아온 뒤에 법을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331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출판-서책(書冊)
○癸丑/親鞫文仁邦等諸罪人。 仁邦供曰: "所得妖術之冊, 一則《乘門衍義》, 一則《經驗錄》, 一則《神鞱經》, 一則《金龜書》, 而淸溪先生, 卽德相也。 天湜與臣, 同習此書, 轉往陽城、鎭川等地, 搆草幕以居。 亂離等說、看星等事, 果如瑞集之供, 而襄陽居李京來, 是異人, 故欲爲都元帥。 都昌國爲先鋒將, 瑞集爲運糧官, 因臣師德相之被配, 稱以大先生, 與金勛等八人, 至有屠掠城邑, 直犯京城之謀矣。" 仁邦與朴瑞集、白天湜面質。 供曰: "京來、都昌國、金廷彦、吳聖賢、金勛、白天湜, 皆是同黨, 而爲德相被罪事, 密議稱兵犯闕之謀。" 京來以爲: "渠是澤徵之切姻, 又是德相之弟子, 故有此逆謀云矣。" 仁邦結案: "臣之逆節, 旣發於瑞集之發告, 又發於天湜之口招, 當箇箇直招矣。 瑞集所供中說話, 果皆臣酬酢之凶言。 瑞集祝天文中三字, 卽是臣做出搆捏之計也。 《鄭鑑錄》中六字凶言, 亦做出謀陷之計, 而此凶言, 曾於臣冊子中經驗錄見之。 蓋臣所持冊子, 合爲四冊, 皆是至妖至誕之書, 專出於假托惑衆之計, 而同黨李京來在襄陽 林川里, 都昌國在寧遠 內樂林, 金廷彦在安邊, 郭宗大在順安, 吳聖賢在安邊, 此外卽金勛ㆍ白天湜也。 淸溪先生, 卽宋德相。 季琉, 卽德相之孫, 年今二十八歲, 此皆臣同心謀逆者也。 臣與京來、昌國, 尋常往來, 而辛丑年九月, 又往見京來, 則京來曰: "渠之先生德相, 得罪於朝廷, 橫被遠配, 今則事已急矣, 卽速擧行爲可。 君若善募人才, 則成事後將相間當大用云云。 京來爲都元帥, 昌國爲先鋒將。 襄陽多有渠之同黨及奴僕, 不時猝發, 先殺襄陽邑倅, 收聚軍器及軍兵, 次伐杆城, 轉入江陵。 自江陵直入原州, 仍爲長驅, 自東大門入城。 事成後, 德相封大先生。 擧事日字, 京來、昌國議定以甲辰年七月九月間, 而京來曰: "吾之族黨, 有李澤徵, 其外又多有族黨, 自當結納。 至於京中, 吾亦當周旋, 汝則往三南, 有膂力可用之類, 某條求聚云, 故臣之來留鎭川者, 亦以此也。 大逆不道, 是實。" 兩司合啓。 【大司憲鄭好仁、大司諫申應顯、司諫朴聖泰、掌令權坪、獻納金翊休、正言權𥙿ㆍ李太亨。】 近來亂逆之接踵而起者, 無非爲德相效死之計, 其氣焰之熾, 排布之廣, 實有宗社難言之慮。 果然今番仁邦之出, 而情節之窮凶, 謀議之陰慘, 實是載籍所未有之極惡大憝。 三字、六字等凶言, 固已萬萬叵測, 而至於嘯聚徒黨, 或稱元帥, 或稱先鋒, 屠掠營邑, 直犯京師, 專出於爲德相之狀, 一一直招。 旣捧結案, 則豈可以他罪人之未及拿來, 一刻容息於覆載之間乎? 請大逆不道罪人仁邦, 卽爲正法。" 敎曰: "旣捧結案, 正法何時不可? 依前下敎, 待罪人拿來正法。"
- 【태백산사고본】 14책 14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331면
- 【분류】사법-치안(治安)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