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참의 이택징이 유지에 응하여 올린 상소문
공조 참의 이택징(李澤徵)이 상소하기를,
"재변은 헛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부르게 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대저 인신(人臣)으로서 하늘에 닿을 만한 죄악으로 난역(亂逆)보다 더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등극하신 처음부터 요망스러운 난역들이 차례로 주륙(誅戮)을 받았는데, 선조(先朝) 때 교목 세가(喬木世家)들의 태반이 무참하게 참절(斬截)당하는 속으로 들어가 세도(世道)가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그 여파의 걱정이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진안(鎭安)시키기만을 힘쓰시어 일이 발생하면 그때마다 관전(寬典)을 적용하여 왔는데, 이는 진실로 성덕(聖德)의 하해(河海) 같으신 아량인 것입니다. 신이 비록 어리석고 미련합니다만, 어찌 우러러 성의(聖意)를 헤아리지 못하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이들은 모두 스스로 천주(天誅)를 간범한 것으로 무릇 거괴(巨魁)와 대특(大慝)에 관계된 것이어서 결단코 오늘날 북면(北面)한 신하로서 하늘을 함께 이고 있을 수 없는 자들인 것으로, 신인(神人)이 함께 통분스럽게 여기는 것이 어찌 천고(千古)의 상홍양(桑弘羊)091) 에 견줄 정도뿐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까지 베지 않은 채 천지 사이에 편안히 살아 숨쉬게 하였으니, 오직 저 부정한 것에 화(禍)를 내리는 하늘이 어떻게 좍좍 쏟아지는 우택(雨澤)을 아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어찌 전하께서 척연(惕然)히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확연(廓然)히 건단(乾斷)을 발휘해야 할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아! 전하께서 임어하신 지 6년이 되었고 점차 불혹(不惑)092) 의 나이에 가까워가고 있는데도 지금까지 저위(儲位)가 비어 있으므로, 조야(朝野)가 모두 옹망(顒望)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난 봄 이후 구기(拘忌)와 신중히 하는 방도에 대해 지극하게 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대저 장형(藏刑)은 전례(典禮)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형추(刑推)를 행하지 않는 것도 오히려 어려운 일인데, 더구나 태·곤(笞棍)까지 아울러 행하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두어 달 동안 행하지 않는 것도 오히려 어려운데, 더구나 두 해에 이르기까지 오래 되었는데이겠습니까? 상한(常漢)과 천졸(賤卒)이 사부(士夫)를 능욕하고 여대(輿儓)와 이례(吏隷)가 관장(官長)을 매도하고 있는데, 근일 경향(京鄕)에서 변괴가 교대로 발생하고 지난번 광주(廣州) 백성들이 궐문(闕門)에서 난동을 부린 것이 나라에 형장(刑章)이 없는 소치에 연유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이는 국가의 명분(名分)과 기강(紀綱)에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아! 기강이 실추되어 무너져 내리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되고 명분이 능이(凌夷)되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이런 습관이 점점 자라게 되면 말류(末流)의 폐단을 장차 어떻게 금지시킬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진실로 하나를 가리켜 하령(下令)하여 악을 징계하는 길을 점차 열어야 합니다.
아! 궁위(宮闈)는 매우 깊고도 엄한 곳이어서 진실로 외신(外臣)으로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만, 신이 봄에 대직(臺職)에 있을 적에 빈연(賓筵)에 참여하였었는데 그때 직접 대신(大臣)의 문후(問候)는, 먼저 대전(大殿)에 문후하고 그 다음으로 양전(兩殿)에 이르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은 부복(俯伏)하고 있으면서 놀랍고 의아스럽게 여겼는데, 지금까지도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 중곤(中壼)의 존엄함은 이것이 신민(臣民)의 국모(國母)인 것인데, 평일 어공(御供)에 관한 범절(凡節)은 한결같이 상제(常制)를 따르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유독 문후하는 상제만 갑자기 폐각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는 군부(君父)는 있으나 국모(國母)는 없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하고서도 신자로서의 예절(禮節)을 극진히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실로 의아스럽게 여겨 한밤중에 벽을 안고 돌면서 눈물을 흘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신처럼 소루하고 미천한 사람이 이에 감히 여기에 대해 언급하였으니, 스스로 참람하고도 망령된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만, 성자(聖慈)께서는 그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속마음을 살펴 주시겠습니까?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한 것은 실로 전하께서 전대(前代)의 아름다운 법규를 모방하신 것으로, 열성(列聖)의 어제(御製)와 보묵(寶墨)을 삼가 경건히 봉안(奉安)한 것이 휘황하게 빛납니다. 지금 살펴보건대, 각신(閣臣)이 많이 있어 의절(儀節)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초계 문신(抄啓文臣)이 꽉 차 있어 권과(勸課)가 날마다 부지런하며 불시(不時)에 불러서 접견하여 문신(文臣)을 대우하는 도리를 극진히 하고 있으니, 제회(際會)의 소융(昭融)과 사체(事體)의 존엄(尊嚴)이 옥서(玉署)의 경연(經筵)보다 더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신 가운데 취조를 받아야 할 사람을 영어(囹圄)에 가두어 두지 않으며 초계 문신으로서 외방에 나가는 자에게는 역말을 타고 전주(傳廚)를 사용하게 하고 있으니, 성의(聖意)께서 이 각(閣)을 중히 여기고 이 신하를 대우하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삼가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각신의 등대(登對)는 당초 후원(喉院)을 거치지 않고 있고 또 조지(朝紙)에도 반포하지 않는 그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낮에 자주 접견한 내용을 계속 반하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방해되는 것이 있어 본래부터 세월만 보내는 법규로 굳어진 것입니다. 만일 이런 것이 법규로 굳어져 뒤로 전하여 가게 되면, 이 규장각은 곧 전하의 사각(私閣)이 되는 것이요 나라 안의 공공(共公)의 각(閣)이 아닌 것이며, 이 신하는 곧 전하의 사신(私臣)인 것이요 조정에 있는 인신(隣臣)이 아닌 것입니다. 설령 각신이 바야흐로 후설(喉舌)의 직임을 띠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지 겸사(兼史)만 입시(入侍)하게 하는 것은 결국 전교(傳敎)와는 같지 않은 것입니다. 정원에서는 연체(筵體)를 갖추 극진히 하여,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아무가 입대(入對)하였다는 것을 환히 알게 하여 소보(小報)의 등재(登載)가 정정 당당하게 해야 합니다. 또 삼가 생각건대, 그 곳은 청엄(淸嚴)하고도 근밀(近密)한 자리요 당초 재화(財貨)에 대해 경영(經營)하는 곳이 아닌 것입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각신과 함께 선온주(宣醞酒)와 풍부한 음식을 나누려 하신다면, 도성(都城)에 가득한 부고(府庫)에 차 있는 것이 모두 전하께서 쓰실 수 있는 재화이니, 날마다 들여오라고 명하여도 불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루(賤陋)한 물건을 가지고 이렇게 청숙(淸肅)한 자리를 더럽힐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만일 참으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각체(閣體)에 큰 흠결이 되는 것은 물론, 이 뒤로가 우려스럽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설시(設施)하는 처음에 삼가고 두려워하여 장구하고 원대하게 하는 방도를 보존케 하소서.
한림(翰林)은 곧 국가의 양사(良史)인 것으로, 임금의 일언 일동(一言一動)을 좌사(左史)와 우사(右史)가 기록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드디어는 이것이 뒷날 금궤(金樻)와 석실(石室)에 보관하게 되는데, 사체(事體)의 중함이 더욱 마땅히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도 한결같이 향곡(鄕曲)의 잔열한 솜씨에 맡겨두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예원(藝苑)을 높이고 사체(事體)를 중히 여기는 방도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대신(大臣)에게 하순(下詢)하시어, 신천(新薦)된 사람을 잘 거용하여 사법(史法)을 보존시키게 하소서.
묻고 대답하면서 가부를 논하는 것은 또한 성세(盛世)의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옳다고 해도 신하들은 그르다고 하고 전하께서 가하다고 해도 신하들은 가하지 않다고 하면서 전폐(殿陛) 위에서 이렇게 다투어 논란한 연후에야 군신(君臣)이 각각 정당한 도리를 알게 되고 따라서 서무(庶務)도 바야흐로 빛나는 업적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삼가 살펴보건대, 전하께서 하교가 있었어도 연석(筵席)에서 귀에 거슬리는 의논이 있었다는 말을 전혀 듣지 못하였으며, 전하께서 금법을 설정하였어도 또 언로(言路)를 열기를 청하는 계문(啓聞)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신은 아마도 이렇게 하기를 마지않는다면 어떻게 신하들의 말이 나의 뜻을 어김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에 가깝게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혹시라도 스스로 훌륭하게 여기지 마시고 더욱 훌륭해지는 방도를 힘쓰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진달한 여러 조항은 혹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는 하지만 유지(有旨)에 응하여 올린 상소이니, 의당 유념토록 하겠다. 그대는 사퇴하지 말고 직무를 수행토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30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工曹參議李澤徵上疏曰:
災不虛生, 必有所召。 凡人臣之通天罪惡, 孰有過於亂逆? 自殿下御極之初, 妖腰亂領, 次第就戮, 而先朝喬木之承, 太半入於艾刈斬伐, 世道罔有紀極, 餘憂至今未已。 殿下一以鎭安爲務, 事到而較用寬典者, 固是聖德河海之量。 臣雖愚迷, 豈不仰揣盛意乎? 雖然, 此皆自干天誅, 凡係巨魁大慝, 決非今日北面之臣所可共戴一天者, 其神人同憤之心, 奚趐若千古桑弘羊之比? 而迄今不誅, 偃息覆載, 惟彼禍淫之天, 安得不慳悶霈澤? 而此豈非殿下惕然警懼, 廓揮乾斷之處乎? 嗚呼! 殿下臨御六載, 漸近不惑之年, 而迄玆儲位空虛, 朝野顒望。 昨春以後, 其所拘忌愼重之方, 何所不至, 而大凡藏刑, 非典禮所載刑推之藏猶難, 況竝與笞棍而藏之乎? 數朔之藏猶難, 況延至兩年之久乎? 常漢、賤卒而凌辱士夫, 輿儓、吏隷而詬罵官長, 近日變怪之京鄕迭發, 向來廣民之闕門作挐, 莫不職由於國無刑章之致。 此有關於國家之名分紀綱。 嗚呼! 紀綱隳壞, 則國不得爲國, 名分凌夷, 則人不得爲人。 此習漸長, 則末流之弊, 將何所禁戢乎? 殿下固宜指一下令, 稍開懲惡之路也。 嗚呼! 宮闈深嚴, 固非外臣所可語到, 而臣於春間臺職時, 參登賓筵, 親聽大臣問候, 則先候大殿, 次及兩殿雨止矣。 俯伏驚疑, 至今未得其說也。 噫! 中壼之尊, 是臣民之國母, 平日御供凡節, 一遵常制, 而何獨於問候常制, 忽地廢却? 然則是有君父, 而無國母也。 若是而其可曰盡臣子之禮節乎? 臣實訝菀, 中夜繞壁, 至於流涕。 如臣踈賊, 乃敢語及於此, 自知僭妄, 蒙聖慈恕其愚, 而警其衷也耶? 奎章閣之設, 實是殿下摸倣前代之美規, 敬奉列聖御製, 寶墨輝煌, 而見今閣臣濟濟, 儀節俱備, 抄啓林林, 勸課日勤, 不時召接, 極盡友臣之道, 際會之昭融, 事體之尊嚴, 有浮於玉署經筵, 而至於閣臣之就理者, 不處囹圄, 抄啓之出外者, 乘馹傳廚, 聖意之重是閣待其臣, 容有其極? 而竊怪閣臣登對, 初不關由喉院, 又不頒布朝紙。 伏未知晝日頻接, 有妨於續續頒令, 因成自來玩愒之規耶。 若以此成規, 而傳之來後, 則是閣, 卽殿下之私閣, 而非國中共公之閣也。 是臣, 卽殿下之私臣, 而非朝廷隣哉之臣也。 設令閣臣, 方帶喉舌之任, 只令兼史入侍, 終不如傳敎。 政院備盡筵體, 使諸臣, 曉然知誰某入對, 而登諸小報之爲正正當當也。 且伏念淸嚴近密之地, 初非財貨經營之所。 殿下苟欲與閣臣, 宣醞豐飼, 則滿城之府庫充積, 無非殿下可用之財, 雖日日命入, 無所不可。 何必以賤陋之物, 累汙此淸肅之地乎? 若眞有是事, 則大欠閣體, 慮在來後。 伏願殿下, 謹畏於設施之初, 以存長遠之道焉。 翰林, 卽有國之良史。 凡人主之一言一動, 左右史無不記之, 遂成他日金樻石室之藏, 事體之重, 尤當如何? 而一向畀之於鄕曲湔劣之手者, 此豈尊藝苑、重事體之道哉? 伏乞下詢大臣, 克擧新薦, 俾存史法。 都兪吁咈, 亦盛世美事。 殿下曰是, 而群臣曰非, 殿下曰可, 而群臣曰否, 如是爭難於殿陛之上, 然後君臣各得其當, 庶務方可熙績, 而竊視殿下有敎, 而絶未聞筵席逆耳之論, 殿下設禁, 而又未聞請開言路之啓, 臣恐若此不已, 則幾何不至於惟其言, 而莫予違乎? 更乞殿下, 毋或自聖, 而益勉爲聖之道焉。
批曰: "所陳諸條, 或有不然者, 而應旨疏, 當留意。 爾其勿辭察職。"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30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307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비빈(妃嬪) / 사법-행형(行刑)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