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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3권, 정조 6년 2월 15일 임오 1번째기사 1782년 청 건륭(乾隆) 47년

예조로 하여금 각릉을 범할 경우 엄벌한다는 명령을 알려 계도하게 하다

하교하기를,

"연전(年前)에 태나(汰拿)·유찬(流竄)이 계속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법전을 참고하여 일정(一定)된 법제를 만들었었다. 그런데 오늘날 근교(近郊)에서 집착(執捉)된 숫자가 이러하니, 길이 멀고 나무가 많은 능침(陵寢)이 있는 곳은 미루어 알 수 있다. 종당에는 각릉(各陵)에 두루 관원을 보내어 적간(摘奸)할 것이니, 세 번 영(令)을 내리고 다섯 번 신명(申明)시키는 뜻에서 우선 예조로 하여금 알리게 하라. 만일 영이 내린 뒤에도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단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각별히 엄히 신칙시키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98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사(宗社)

○壬午/敎曰: "年前悶其汰拿、流竄之相續, 參考法典, 著成一定之制, 而今日近郊執捉之數如許, 遠途陵寢木根之夥然, 推可知也。 從當遍送各陵摘奸, 以三令五申之意, 爲先令禮曹知委。 如有令後之犯者, 斷不饒貸, 各別嚴飭。"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98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