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정조실록 13권, 정조 6년 1월 14일 신해 3번째기사 1782년 청 건륭(乾隆) 47년

춘조의 정지를 명하다. 영의정 서명선이 제주 어사 박천형의 별단에 대해 아뢰다

차대(次對)하여 제도(諸道)의 춘조(春操)를 정지하라고 명하였다. 영의정 서명선(徐命善)이 아뢰기를,

"제주 어사(濟州御史) 박천형(朴天衡)의 별단(別單)에 대해 아뢰겠습니다.

1. 아병(牙兵)에게 쌀을 걷는 폐단에 대해 논하면서 친병(親兵)을 창설하여 완급(緩急)에 대비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만, 이미 윤번제(輪番制)를 파기하였는데 고쳐서 수미법(收米法)을 만드는 것은 일이 매우 말할 수 없게 되니, 속히 이정(釐正)하여 고치게 하소서.

1. 어물(魚物)을 별무(別貿)하는 것에 절제가 없어 포호(浦戶)에서 진배(進排)함에 있어 지탱하기 어렵다는 데 대해 논하면서 부정한 명색(名色)은 영원히 혁파하되, 어사(御史)의 절목(節目)에 의거 엄히 계칙하게 하소서.

1. 귤유(橘柚)의 사원(私園)을 침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대해 논하면서 맺힌 열매를 세어서 저절로 떨어진 것에 대해서도 값을 징수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뇌물의 토색을 견디지 못하여 곁에서 움돋아나는 가지를 모두 베어낸 것이 얼마인지 모른다고 하니, 이러다가는 귤나무가 없어지기에 이르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횡렴(橫斂)하는 습관을 엄히 금단하소서. 혹 황손(荒損)된 해를 당하여서는 후가(厚價)로 화매(和買)하게 하고 세 고을의 귤나무를 심은 수효를 세말(歲末)에 경사(京司)로 수보(修報)하게 하소서.

1. 산둔(山屯)에 쌓은 담장을 훼철(毁撤)시키는 데 대해 논하면서 백성이 혹 원하지 않기도 한다고 하니, 의당 앞으로 살펴보면서 서서히 의논하여 조처해야 합니다. 침장(針墻) 안에 가로 쌓은 축대는 백성이 또한 훼철하기를 원한다고 하니, 우선 따르소서."

하였다. 임금이 어사(御史)에게 하문하기를,

"마장(馬場)의 둘레가 얼마쯤 되며 마필(馬匹)은 얼마나 되는가?"

하니, 박천형이 말하기를,

"둘레는 40리(里)이고 마필의 원수(元數)는 2천여 필인데, 내장(內場)에 횡축(橫築)한 이후 내축(內築)이 매우 좁아 말이 그 본성을 잃고 또 수초(水草)가 없기 때문에, 매년 고실(故失)되는 것이 8백여 필이나 된다고 합니다."

하고, 서명선은 말하기를,

"내축(內築)이 말을 모는 폐단은 제거하였습니다만, 반대로 말의 손실이 많으니, 내장(內墻)을 훼철하는 것은 조금도 완만히 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장신(將臣)들에게 하문하니, 모두 말하기를,

"전처럼 방목(放牧)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자, 먼저 횡축(橫築)을 철거하라고 명하였다. 서명선이 또 아뢰기를,

"1. 산마(山馬)를 해마다 구점(驅點)하는 것은 큰 민폐(民弊)가 된다고 논하면서 구례(舊例)에 의거 매 식년(式年)마다 봉진(封進)하게 해 달라고 하였는데, 전 목사(牧使) 김영수(金永綬)가 선척(船隻)을 일시에 운행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원수(元數)를 3년에 나누어 공상(貢上)하게 해 줄 것을 장청(狀請)하자 시행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배를 준비하는 폐단은 작아졌지만 백성을 동원하는 폐단은 도리어 커졌으니, 의당 식년(式年)에 숫자에 준하여 봉진(封進)하게 해야 합니다.

1. 우마감(牛馬監)의 권징(勸懲)에 대한 정사를 논하면서 만일 마축(馬畜)을 성대하게 번식시켰다면 조용(調用)하는 것을 아낄 것이 뭐 있겠으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의당 중률(重律)을 시행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의당 어사(御史)의 서계(書啓)에 의거 특별히 해목(該牧)을 계칙시켜 우마감으로 하여금 마음을 다져먹고 직무를 수행하게 하소서.

1. 김만일(金萬鎰)이 대대로 목마(牧馬)하는 것에 대해 논하면서 갑자기 파직시키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가업(家業)을 대대로 전해 가는 것은 일이 그 공(功)에 대해 상(賞)을 주는 것에 합치됩니다. 따라서 그 문장(門長)이 스스로 천망(薦望)하게 하지 말고 본목(本牧)으로 하여금 그의 문중(門中)으로 나아가서 목관(牧官)을 택차(擇差)하게 하소서.

1. 장내(場內)의 경작(耕作)하는 땅이 점점 줄어들어서 목양(牧養)할 장소가 없는 것에 대해 논하였는데, 이에 관해서 특별히 금칙(禁飭)하게 하소서.

1. 장쾌(駔儈)021) 가 해도(海島)로 들어감에 따라 준구(駿駒)가 육지(陸地)로 나가는 데 대해 논하면서 사사로이 매매하는 것을 엄금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는데, 마정(馬政)에 해가 되는 것은 의당 살펴서 계칙하게 해야 합니다."

하니, 아울러 그대로 따랐다. 이어 하교하기를,

"귤유(橘柚)의 진공(進貢)은 위로 천헌(薦獻)의 용도에 관계되고 아래로 반선(頒宣)의 수요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 응당 진공(進貢)해야 하는 명색(名色)이 항식(恒式)에 차지 않고 있다. 공원(公園)의 물건이 모두 없어져 버리는 데로 귀결되고 민간의 과일이 매양 횡침(橫侵)당하고 있으니, 이 또한 기강에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 뒤로 민간의 과일을 따갔다는 사실이 등문(登聞)되면, 시임(時任) 목사(牧使)에서부터 마땅히 무거운 율(律)로 다스리겠으니, 본사(本司)에서 엄히 계칙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94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역(軍役) / 교통-마정(馬政) / 농업-전제(田制) / 농업-과수원예(果樹園藝)

○次對, 停諸道春操。 領議政徐命善啓言: "濟州御史朴天衡別單。 其一, 論牙兵收米之弊, 創置親兵, 欲備緩急, 而旣罷輪番之制, 變作收米之規, 事甚無謂, 亟令釐改。 其一, 論魚物別貿之無節, 浦戶進排之難支, 不正名色, 永爲革罷, 依御史節目嚴飭。 其一, 論橘柚之勿侵私園。 數其結顆, 至徵自落之價, 憫其索賂, 擧芟傍蘖之枝, 幾何而不至於無橘哉? 請嚴禁橫歛之習。 或當荒損之年, 則厚價和買, 三邑種橘之數, 歲末修報京司。 其一, 論山屯築墻之毁撤。 民或不願, 宜觀來頭, 徐議處之。 針墻內橫築, 民亦願毁, 宜先從之。" 上問御史曰: "馬場周回爲幾何? 馬匹爲幾何?" 天衡曰: "周回四十里, 馬匹元數二千餘匹, 而內場橫築以來, 內築甚狹, 馬失其性, 且無水草, 故每年故失, 多至八百餘匹"云。 命善曰: "內築爲除驅馬之弊, 而馬多損失, 則內墻毁撤, 難容少緩。" 上問諸將臣。 僉曰: "如前放牧宜矣。" 命先撤橫築。 命善又啓言: 其一, 論山馬之逐年驅點, 大爲民弊, 依舊例每式年封進。 前牧使金永綬, 以船隻之一時難運, 狀請元數之三年分貢。 許施而覓船之弊反小, 動民之弊爲大, 宜於式年準數封進。 其一, 論牛馬監勸懲之政。 若使馬畜蕃盛, 何惜調用, 如或不然, 當施重律。 宜依御史書啓, 另飭該牧, 俾牛馬監, 着意擧職。 其一, 論金萬鎰之世牧, 不宜遽罷。 業傳箕裘, 事合賞功。 勿使其門長自望, 令本牧就其門中, 擇差牧官。 其一, 論場內耕作地漸縮, 而牧養無所, 另加禁飭。 其一, 論駔儈入海, 駿駒出陸。 私馬買賣, 雖難嚴禁, 爲害馬政者, 宜加察飭。" 竝從之。 仍敎曰: "橘柚之貢, 上關薦獻之用, 下係頒宣之需, 而近來應貢名色, 不充恒式。 公園之物, 盡歸消融, 民間之果, 每在橫侵, 此亦紀綱所在。 從後以民間菓摘取有登聞, 則自時任牧使, 當繩以重律, 自本司嚴飭。"


  • 【태백산사고본】 13책 13권 5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94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역(軍役) / 교통-마정(馬政) / 농업-전제(田制) / 농업-과수원예(果樹園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