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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2권, 정조 5년 12월 7일 을해 1번째기사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각신 심염조와 병조 참판 정창성이 《일성록》을 교정하다

교정(校正)한 제신(諸臣)들을 소견하였다. 각신(閣臣) 심염조(沈念祖), 병조 참판 정창성(鄭昌聖)이 명을 받들어 《일성록(日省錄)》을 교정하였다. 정창성에게는 권(卷)에 따라 독주(讀奏)하게 하고 심염조에게는 범례(凡例)를 상세히 살피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어릴 때부터 선대왕(先大王)께서 날마다 권과(勸課)하여 매양 한 책의 강(講)을 끝내고 계속 다른 책을 읽게 되면 이미 강한 책을 복습하여 그 뜻을 연구해서 찾게 하였으므로 과강(課講)과 겸독(兼讀)에 모두 일정한 번수(番數)가 있어 절로 정식(程式)이 되었다. 그래서 아무리 일이 많은 때일지라도 혹여 폐기한 적이 없었다."

하였다. 임금이 근일 전황(錢荒)의 폐단에 대해 하문하니, 정창성이 말하기를,

"조가(朝家)에서 용도를 절약하고 있는데도 유사(有司)가 부족하다고 고하고 있으니, 신은 실로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임어한 이래로 양전(兩殿)의 탄일(誕日)에도 응당 납입해야 하는 것 이외에는 일푼의 물종(物種)도 탁지(度支)의 경비(經費)에서 납입하게 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각궁(各宮)의 면세전(免稅田)을 탁지에 출급(出給)한 것이 또 수만결(數萬結)이 되는데도 경비가 부족한 것이 다시 이와 같은 것에 대해 내가 괴이하게 여겨왔었다. 근래 듣건대, 탁지의 은로(銀路)가 점점 어려워져 종전에 은으로 지용(支用)하던 것을 모두 돈으로 대신하기 때문에 그 숫자가 배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이것도 또한 그럴 것 같다. 내수사(內需司)로 말하더라도 이것이 비록 경비는 아니지만 또한 경 등의 봉록(俸菉)과 무엇이 다른가? 나의 의견이 이러하기 때문에 헛된 비용과 이름없는 비용에 대해 끝내 마음속으로 불안하게 여겨 애당초 푼전(分錢)과 척포(尺布)도 함부로 쓴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근래에는 저축된 것이 전에 견주어 가득 차서 넘치는 편이다. 홍수·가뭄과 도적은 나라에 있어 반드시 없기를 기필할 수 없는 것이니, 좀더 저축된 것이 많아지기를 기다려 탁지에 출급(出給)하여 부족한 경비를 돕게 하려 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71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85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 출판-서책(書冊) / 금융-화폐(貨幣) / 재정-국용(國用)

○乙亥/召見校正諸臣。 閣臣沈念祖、兵曹參判鄭昌聖, 承命校正《日省錄》。 命昌聖逐卷讀奏, 念祖看詳凡例。 上曰: "自予沖年, 先大王逐日勸課, 每講一書畢, 繼讀他書, 則使之溫繹已講之書, 課講與兼讀, 皆有一定番數, 自爲程式。 雖於多事之時, 未或廢却矣。" 上問近日錢荒之弊。 昌聖曰: "朝家節用, 而有司告乏, 臣實不知其故也。" 上曰: "自予臨御以來, 兩殿誕辰, 應例內入之外, 無一分內入物種, 於度支經費, 各宮免稅之出給度支者, 又爲累萬結, 經費之不足, 猶復如此, 則予嘗怪之。 近聞度支銀路漸艱, 從前之以銀支用者, 皆以錢代給, 故其數倍入云。 是亦似然矣。 以內需司言之, 此雖非經費, 亦何異於卿等俸祿耶? 予意如此, 故空費無名之用, 終是不安於心, 初無分錢、尺布之濫用者。 近則留儲, 比前充溢。 水旱、盜賊, 有國之所未可必無者, 稍待所儲之增多, 欲以出給度支, 以助經費之不足矣。"


  •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71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85면
  • 【분류】
    역사-편사(編史) / 출판-서책(書冊) / 금융-화폐(貨幣) / 재정-국용(國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