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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4월 10일 계축 2번째기사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무관 양성에 힘쓰도록 하유하다

하교하기를,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무과(武科)의 간악한 폐단은 권무과(權武科)보다 더 심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매번 그것이 사실과 크게 다르다고 여겨왔다. 간사한 짓을 저지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어찌 유독 이 과(科)만이 그러하겠는가? 권무청(權武廳)을 설치한 지가 올해로 1백 20년이나 되었는데, 법을 만든 뜻이 지극히 깊고도 원대하였으니, 그것은 대개 유능한 무인(武人)들을 양성하여 뒷날의 수용(需用)에 들어가는 밑천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똑같은 무기(武技)인데도 무사들이 이 권무과에 응시하기를 즐겨하는 것은 거기에 선발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일찍이 연로한 사람의 말을 듣건대, 숙묘(肅廟)경오년242) 에 권무청이 중간에 폐기된 일로 인하여 하교하기를, ‘인신(人臣)으로서 충성을 바치는 데 있어서는 문무(文武)가 다를 것이 없는데도 근래 무과의 방목에는 전혀 사족(士族)이 없으니, 사족들이 무업(武業)을 닦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고, 이어 정밀히 선발하여 마음을 다져 먹고 권무(權武)하게 하라고 명하였다고 하였다. 뒤이어 고사(故事)를 살펴보니, 과연 이런 하교가 기재되어 있었다. 일전의 빈연(賓筵)에서 권무하는 일로 인하여 대략 제시하여 하교했었는데, 그 뒤 각영(各營)에서는 과연 선발에 유의하여 권과(勸課)하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고질적인 폐단은, 곧 ‘인재가 없다[無人才].’는 이 세 글자인데, 무반(無班)의 참하관(參下官)이 더욱 극심하다. 근래 선전관의 망단자(望單子)를 살펴보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반 참하관에 인원이 갖추어져 있지 않을 경우, 과거를 설행하여 사람을 뽑은 것은 그러한 전례가 많다. 더구나 이 군무과의 시취(試取)는 장대하게 하는 데 관계되지 않고 또 매우 간편한 것이어서 이를 배양하는 방도에 있어 신축성 있는 정사(政事)가 없을 수 없다. 마땅히 가까운 시일 안에 여러 무기(武技)를 시험보여 그 가운데 뛰어난 사람을 뽑아 특별히 권과(勸課)하여 응시(應試)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63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33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군사-군정(軍政)

○敎曰: "人言: ‘武科奸弊, 莫甚於勸武科。’ 云, 而予則每以爲大不然。 任其售奸, 奚獨此科爲然? 勸武廳設始, 今爲百二十年矣。 立法之意, 至爲深遠。 蓋欲儲養名武, 備後日需用之資。 均是武技, 而武士之樂赴是選者, 以其榮其選也。 嘗聞故老之言, 肅廟庚午, 因勸武廳中廢事, 敎以‘人臣效忠, 文武無異, 而近來武榜, 絶無士族。 士族之不事武業, 可知。’ 仍命精加選擇, 着意勸武。 續見故事, 果載是敎。 日前賓筵, 因勸武事, 略有提敎, 伊後各營, 果能留意於遴選。 而勸課乎? 且今痼弊, 卽無人才三字。 武參下, 尤有甚焉。 觀於近來宣傳官望, 蓋知其信然。 以武參下不備, 設科取人, 尙多其例。 況此勸武試取, 則不涉張大, 又極簡便, 其在培養之道, 不可無闊狹之政。 當從近試諸技, 取其尤者, 另加勸課, 以爲應試之地。"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63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233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군사-군정(軍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