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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1권, 정조 5년 1월 15일 무자 1번째기사 1781년 청 건륭(乾隆) 46년

공시인의 폐막을 엄히 계칙케 하고 이와 관련하여 군문의 사족들을 신직케 하다

하교하기를,

"일전에 도성(都城) 백성의 휴척(休戚)은 오로지 공시인(貢市人)에게 달려 있다는 것으로 거론하여 하교한 바가 있었다. 대개 이 시민(市民)들의 폐막은 난전(亂廛)이요, 중도회(中都會)요, 도고(都庫)라고 한다. 갖가지 이런 등등의 명색(名色)이 어찌 특별히 지탱하기 어려운 하나의 큰 사단(事端)이겠는가? 설법(說法)하여 통렬히 금하는 것은 본래 국조(國朝)의 전칙(典則)이 있으나 관원(官員)은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서례(胥隷)는 오로지 주구(誅求)만을 일삼아 간알(干謁)이 더욱 심해지고 화회(貨賄)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으니 이른바 법사(法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속폐(俗弊)는 점차로 고질화된 것이어서 갑자기 이혁(釐革)하기 어렵다고 하지말고, 관장(官長)이 된 자는 진실로 사욕(私慾)을 버리고 공의(公議)를 봉행한다면 백성이 편안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고 폐단도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니, 이번에 현발(現發)한 두서너 가지의 일을 살펴보아도 나머지는 충분히 미루어 알 것이다. 법사의 관리들이 계칙하지 못한 죄를 우선 또 관대히 용서하는 것은 이미 지난일로 돌려버리려는 뜻에서이고 앞으로의 일을 경책(警責)하려는 데 있는 것이니, 정원에서 해당 법사(法司)의 낭관을 초치(招致)하여 엄히 밝혀 신칙하고, 오늘 이후로는 영(令)이 내린 뒤이니, 만일 드러나는 것이 있을 경우에는 즉시 엄히 감죄(勘罪)하게 하여 결단코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 전교를 써서 벽에다 걸어놓고 조심하는 마음가짐으로 이를 따라서 거행하도록 하라. 공시인의 폐막에 대해서 지난 가을 사이에 대략 금지하고 면려한바 있었는데, 그 후 과연 폐막이 생긴 단서는 없었는가? 대저 공폐(貢弊)는 쥐구멍을 막는 것과 같아서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려우며, 바로잡는 대로 뒤따라 생겨나니 위에서 어찌 다 밝혀 살필 수 있겠는가? 이는 또한 관장의 수거(修擧)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니, 아울러 자세히 알게 해서 마음을 다져 먹고 태만한 없게 하라."

하고, 또 하교하기를,

"어제 폐막에 대해 순문한 것을 기다릴 것도 없이 난전(亂廛)의 폐막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이래서야 시전(市廛)이 어찌 조잔(淍殘)해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시전이 조잔해지면 물가(物價)가 뛰어오르게 될 것인데, 가난한 선비와 곤궁한 백성이 또 어찌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 폐막의 근원은 오로지 군문의 사졸(士卒)에게 있으니 급료(給料)가 없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 할지라도 오히려 놀랍고 통분스러운데 더구나 급료 있는 무리들이 겸병(兼幷)하는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정원에서 별도로 각 군문(郡門)과 후위청(扈衛廳)에 엄칙을 가하되 이 뒤로 염문(廉問)하여 만일 드러나는 폐막이 있으면 계칙하지 못한 장신(將臣)은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미리 신칙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04면
  • 【분류】
    상업-상인(商人) / 금융-계(契)

○戊子/敎曰: "日前以都民休戚, 專係貢市人, 有所提敎。 蓋此市民弊瘼, 曰亂㕓也, 中都會也, 都庫也。 種種此等名色, 奚特難支之一大端? 設法痛禁, 自有國朝典則, 而官員不修職務, 胥隷惟事誅求, 干謁滋甚, 貨賄公行, 所謂法司等是蔑如。 莫曰俗弊之漸痼, 猝難釐革也。 爲官長者, 苟能祛私奉公, 民可奠業, 弊可祛甚。 觀於今番現發二三事, 而餘足推知。 法司官吏不飭之罪, 姑且寬貰者, 意在屬之旣往, 責之來後也。 自政院, 招致該法司郞官, 嚴明申飭, 今日以後, 係是令後, 如有現發, 隨卽嚴勘, 斷不可已。 以此傳敎, 使之書揭壁上, 惕念遵此擧行。 至若貢市人之弊, 向於秋間, 略有戢勵。 其後果無生弊之端乎? 大抵貢弊如杜竄穴, 難以毛擧。 隨矯隨生, 自上何可盡燭? 此則亦在官長修擧與否。 竝令知悉, 着意無怠。" 又敎曰: "不待昨日詢瘼, 而亂塵之弊, 業已聞知。 若此而市肆安得不凋殘。 市肆凋殘, 則物價騰踊。 貧士窮民, 何以聊其生也? 惟其弊源, 專在軍門士卒。 無料人所爲, 猶可駭痛。 況有料輩兼幷? 自政院, 另加嚴飭於各軍門及扈衛廳, 從後廉問, 如有現發之弊, 不飭將臣, 難免其責。 預令申飭。"


  • 【태백산사고본】 11책 11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04면
  • 【분류】
    상업-상인(商人) / 금융-계(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