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덕훈이 향약의 엄격한 시행, 훈도의 재설치, 고강 대조하는 법의의 시행을 건의하다
장령 권덕훈(權德訓)이 상소하기를,
"하·은·주(夏殷周) 삼대(三代)에서 교화하였던 도구가 서적에 기재되어 있으니 진실로 감히 경솔히 의논할 수 없습니다만, 선정신(先正臣) 이이(李珥)의 향약(鄕約)과 같은 책들은 다 간략하고 요긴하여 시행하기 쉽습니다. 신은 바라건대, 별도로 방백(方伯)의 신하에게 신칙하여 각도와 각읍으로 하여금 향약을 강하여 시행하게 하고, 그 고을 가운데서 덕망이 있는 자를 골라 도헌(都憲)과 부헌(副憲)의 책임을 정한 다음, 매년 봄·가을에 그 조약(條約)을 강하고 나서 성적을 고시하여 상벌을 내리되, 그중 이를 준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도헌이 장관(長官)에게 보고하여 다스리고, 그 가운데 가장 교화하기 어려운 자는 장관이 순영(巡營)에 보고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한다면 선량한 백성은 수치스러움을 알아 착해질 것이고, 사납고 완고한 자는 위엄을 두려워하여 조심할 것이니, 풍속이 어찌 돈후한 데로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학교는 어진 선비가 관계로 진출하는 관문이자 배양의 근본입니다. 삼물(三物)302) 로 빈흥(賓興)303) 하는 법이 점차로 폐지되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다시 말할 수가 없게 되었거니와, 오직 과거의 학문을 입신(立身)하는 바탕으로 삼고 있으므로 몸소 행하여 실천하는 공부와 천덕(天德)·왕도(王道)의 요점에 있어서는 하찮은 것으로 보아 학자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선비들의 습관이 바르지 못한 것은 오로지 과거의 폐단에 연유한 것이고, 과거의 폐단이 만연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배양이 제 방도를 상실한 데 연유한 것입니다. 건국 초기에는 열읍(列邑)에 각각 훈도(訓導)의 관직을 설치하여 전적으로 교양의 책임을 맡겼습니다. 그러다가 막판에 가서는 훈도에 맞는 자를 선택하지 않아 학교의 생도들을 수탈하여 폐단이 점점 많아지자 드디어 중간에 폐지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만일 구전(舊典)을 거듭 밝혀 훈도를 다시 설치하고 특별히 뽑아 보내되, 급료를 풍족하게 주어 교육에 전념하도록 한다면 인재가 성대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과거의 폐단에 있어서는 또한 그 설이 있습니다. 고강(考講)을 대조하는 법의(法意)가 몹시 엄중한데 중년 이후로 폐지되어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신은 바라건대, 과장을 설치할 초기마다 그 고을 수령부터 먼저 대조의 규정을 시행하여 《효경(孝經)》과 《논어(論語)》 등의 책을 통달해야만 비로소 단자(單子)를 받아들여 시험에 나가도록 허락한다면 글을 모르는 무리가 마구 과장에 나가는 폐단이 저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묘당으로 하여금 품처(稟處)하게 하겠다."
하였다.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강의 성적을 대조하는 것을 더욱 신칙하여 실효가 있게 하소서. 훈도의 설치는 폐지된 지 이미 오래 되어 갑자기 변통하기 어렵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7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선발(選拔)
- [註 302]삼물(三物) : 백성을 교육하는 삼사(三事)를 말함. 《주례(周禮)》 지관(地官) 대사도(大司徒)에, "향(鄕)에 삼물(三物)로써 만민을 교육하여 빈례(賓禮)로 천거하는데, 첫째는 육덕(六德)이니 지(知)·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요, 둘째는 육행(六行)이니 효(孝)·우(友)·목(睦)·인(婣)·임(任)·휼(恤)이요, 셋째는 육예(六藝)이니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이다."라고 하였음.
- [註 303]
빈흥(賓興) : 주대(周代)에 선비를 채용하는 법. 향음주(鄕飮洒)의 예(禮)로써 현능(賢能)을 천거하여 빈객(賓客)으로 대우하여 국학(國學)으로 올려 보내는 것임. - [註 303]
○掌令權德訓上疏曰:
三代敎化之具, 載在方冊, 固不敢輕議, 而如先正臣李珥鄕約等書, 皆簡要而易行。 臣願, 另飭方伯之臣, 使各道、各邑, 講行鄕約, 擇其邑中有德望者, 定爲都憲、副憲之任, 每年春、秋, 講其條約, 課其勤慢, 隨以賞罰, 而其有不遵者, 都憲報于長官而治之。 其有最難化者, 長官報于巡營而處之。 如此則民之良善者, 知恥而有格, 悍頑者畏威而懲戢, 風俗安得不歸於敦厚乎? 學校, 賢士之所關, 而培養之根柢也。 三物賓興, 其法寢壞, 至于今日, 無復可言。 惟以科擧之學, 爲立身之根基, 而若其躬行實踐之工, 天德、王道之要, 視若弁髦, 絶無僅有。 士習之不正, 專由於科弊。 科弊之冒濫, 專由於培養之失其道。 國初列邑, 各設訓道之職, 專責敎養之任。 及其末流, 訓導不擇其人, 侵漁校生, 爲弊滋多, 遂以中廢。 今若申明舊典, 復設訓導, 另加擇差, 豊其廩料, 俾之專意敎(冑)〔育〕 , 則人才菀興矣。 至於科弊, 亦有其說。 照訖考講, 法意截嚴, 而中年以後, 廢閣不行。 臣願每當設場之初, 自其邑守令, 先行照訖之規, 能通《孝經》、《論語》等書, 然後始捧單子, 許令赴試, 則不文之類, 自無冒赴之弊。
批曰: "令廟堂稟處。" 備邊司啓言: "照訖講則益加申飭, 俾有實效。 訓導之設, 停廢已久, 變通猝難。" 從之。
- 【태백산사고본】 10책 10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73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