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겸 사은사 서장관 홍명호가 바친 문견 사건의 내용
동지 겸 사은사 서장관(冬至兼謝恩使書狀官) 홍명호(洪明浩)가 바친 문견 사건(聞見事件)에,
"1. 압록강(鴨綠江)을 건넌 이후부터 석문령(石門嶺)에 이르는 3백여 리 사이는 토지가 기름지고 산천이 명려(明麗)하여 변방다운 맛이 아주 없고 겹친 봉우리와 높은 고개가 거듭거듭 에워싸고 있습니다. 석문령이 서쪽은 요양(遼陽)인데, 산세가 점점 평탄해지며 동쪽에서 남쪽으로 싸고 있습니다. 큰 들은 하늘에 맞닿아서 끝없이 보이고 들을 4백여 리 가서야 곧바로 북쪽 하늘 가에 먼 산이 병풍처럼 구불구불 끊이지 않은 것이 보일 뿐입니다. 대개 산은 태행(太行)195) 에서 일어나 벽립(壁立)하여 동쪽으로 내리뻗어 곧바로 우리 나라 북쪽에 닿는데 산이 성을 쌓은 것처럼 사막(沙漠)을 가로질러 끊어서 하늘이 이 때문에 남북으로 갈리고 화이(華夷)를 나눕니다.
1. 심양(瀋陽)부터 비로소 성곽(城廓)이 있는데 평지의 방성(方城)입니다. 한 면(面)이 5리이므로 둘레가 20리이며 벽돌로 쌓고 사이에는 흰 회(灰)를 썼으며 높이는 수십 장(丈)에 가깝고 너비는 수기(數騎)를 벌일 만하여 문에는 반드시 옹첩(甕堞)을 설치하고 성을 둘러서 해자(垓子)를 깊이 파서 그 견고하기가 쇠와 같아 갑자기 공파(攻破)하기 어려우니, 우리 나라의 성에 견주면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황성(皇城)으로 말하면 높고 넓기가 갑절이나 더한데 통주(通州)의 강을 끌어들이고 백하(白河)의 물을 이어대어 둘러서 호수를 만들고 옥천(玉泉)의 물줄기를 파서 돌려대어 호수를 만든 것이 셋이고 또 끌어대어 성안으로 들여 대궐 안을 관통하고 갑문(閘門)으로 물을 담아 두어 큰 배를 운행하여 그대로 바다에 통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자성(子城)에 아홉 문을 설치하였는데, 두 문 사이는 성에 붙여서 벽돌을 쌓아 길을 만들고 성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고 가에 여장(女墻)196) 을 설치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고서 끝머리에 문을 만들고 자물쇠를 설치하고 성을 지키는 군사가 양식을 가지고 가거나 물을 길어가려고 오르는 것을 점검하여 들여보내고 밖에서 그 문을 잠가 오르내리지 못하게 하는데 열흘마다 돌려가며 번을 선다고 합니다.
1. 궁성(宮城)도 벽돌로 높이 쌓았는데 위에는 노란 기와를 덮고 겉에는 붉은 회를 발랐고 성 밑의 빈 땅에는 가난하여 집이 없는 병정이 살게 하되 한 병정마다 관에서 다섯 칸짜리 기와집을 지어 주었는데 거의 성의 일면(一面)을 두르게 되었습니다.
1. 산해관(山海關) 밖에 있는 명나라 때에 쌓은 주현(州縣)·위소(衛所)·둔보(屯堡)의 성은 혁명(革命)할 때에 공파하여 무너지고 하나도 완전한 곳이 없는데 지난해 황제의 명이 있고부터 연해(沿海)와 직로(直路)의 전에 있던 성, 이를테면 해주(海州)·개주(蓋州)·봉성(鳳城)·요양(遼陽)·광녕(廣寧)·영원(寧遠)·거류하(巨流河)·중전(中前)·중후(中後) 같은 열여덟 곳은 모두 수축(修築)하므로 지금 한창 돌을 캐고 회를 쌓아 두고서 크게 경영하는 중입니다. 3년으로 기한하였다 하는데 쓰는 재력(財力)은 작은 성이면 2만 은(銀)이고 큰 성이면 갑절입니다.
1. 봉성으로부터 산해관에 이르는 관외(關外)는 백성의 풍속이 어리석고 완강하며 오로지 궁마(弓馬)를 숭상하며 부모가 죽으면 화장하는 자가 많고 혹 주검을 들판에 버려도 예사로 여겨 별달리 사람의 도리로 책망할 수 없습니다. 관내(關內)는 사람이 많고 조금 도타운 기풍이 있으나 한인(漢人)은 다 가혹하고 각박하며 청인(淸人)은 흔히 순박한데, 혼례(婚禮)·상례(喪禮)는 문공(文公)197) 의 가례(家禮)를 따르지 않고 왕공(王公)부터 서인(庶人)에까지 모두 시제(時制)를 씁니다. 대개 불도(佛道)를 가장 존중하고 그 다음으로 관왕(關王)을 공경합니다.
1. 관외는 다 밭이고 논이 없으며 5무(畝)를 넷으로 나눈 하나를 1상(晌)이라 하고 상마다 2승(升)의 쌀을 매겨서 받아들이고, 주현에서 또 1백 문(文)의 돈을 거두어 관마(官馬)를 먹여 기르는 비용으로 하는데 역승(驛丞)을 시켜 관장하게 합니다. 관내는 전(田)의 너비 5척(尺)에 길이 2백 50보(步)인 것을 1무로 하고 비척(肥瘠)을 헤아려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매겨서 은 또는 쌀을 거두는데, 대개 통계(通計)하면 20분의 1을 받는 것이 됩니다.
1. 상세(商稅)는 값이 은 1냥인 물건에서 은 3푼을 거두어 각처의 관구세국(關口稅局)에서 경사(京師)로 날라다 바치는데 1년 동안의 책정된 숫자를 계산하면 1천 1백만이 나옵니다.
1. 병민(兵民)의 정사(政事)는 만주인(滿洲人)은 16세부터 팔기(八旗)198) 에 편입시켜 해마다 은 24냥을 지급하는데 급수에 따라 올려주며, 아내를 얻으면 빈부(貧富)를 물론하고 반드시 은 20냥을 주어서 보조합니다. 한인(漢人)은 그 자원(自願)을 받는데 이름을 한군(漢軍)이라 하며 그 자손도 함께 항오(行伍)에 충정(充定)합니다. 대개 군사는 노소(老少)를 물론하고 다 기사(騎射)를 잘하며 한 번 혹 출정하였다가 전사하면 봉작(封爵)을 세습(世襲)하여 그 후손을 영예롭게 합니다.
1. 각로(閣老)199) 이시요(李侍堯)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지손(支孫)이며 본디 양홍기(鑲紅旗)의 한군에 속하였는데, 권우(眷愚)가 특별하여 입각(入閣)하기 전에 황제가 특별히 정황기(正黃旗)에 옮겼습니다. 대개 가하(駕下)에서 근시(近侍)하게 하려는 뜻이었는데 아홉째 공주(公主)를 그 둘째 아들과 짝지우고 또 장친왕(莊親王)200) 의 딸을 그 셋째 아들에게 시집보내고는 이어서 각로를 제배(除拜)하였습니다. 입각한 지 4년에 총독(總督)으로서 호광(湖廣)에 출진(出鎭)하였는데 올해 남순(南巡) 때에 광동(廣東)의 과도(科道)201) 가 탐학(貪虐)으로 탄핵하니, 황제가 진노하여 부마(駙馬) 복융안(福隆安)을 시켜 밤낮으로 달려서 경사로 돌아가 먼저 그 집과 저축한 값이 90만 은(銀)쯤 되는 보화(寶貨)를 적몰(籍沒)하고, 이어서 경사에 있던 그 두 아들을 형부(刑部)에 가두게 하였고, 그 맏아들은 근시(近侍)로서 수가(隨駕)하였는데, 또한 경옥(京獄)으로 압송하여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1. 서장(西藏)은 옛 서번(西蕃)으로 산부처[活佛]라 일컫는 자가 있는데 올해 20여 세로 전생(轉生)한 42세(世)임을 자칭한다 합니다. 황제가 황자(皇子)로 하여금 그를 맞이하게 하여 5월에 열하(熱河)에 행행(幸行)할 때 인견(引見)할 것 입니다.
1. 황제가 남순할 때 수가한 관원과 거느린 병정에게 관에서 하루에 2전(錢) 7푼(分)의 은을 주어 여비로 쓰게 하고, 타는 것은 죄다 관마를 쓰되 관품(官品)의 높낮이를 살펴서 차등을 두어 대관(大官)은 8필(疋)로 하고 소관(小官)은 3필로 하였으며, 각각 그 아문(衙門)에서 은냥(銀兩)을 거두어 내어 행장(行裝)을 도왔고 따라가는 군사는 각로 이하가 모두 친병(親兵)을 데려갔는데 통계(統計)하면 5천이 채 못됩니다. 지나는 주현에서 성안에 주필(駐蹕)하면 그 곳의 병정을 징발하여 성을 둘러서 호위하고, 막차(幕次)를 설치하여 노숙(露宿)하면 또 한 그 곳 병정으로 둔수(屯守)하였습니다.
1. 황자(皇子)·황손(皇孫)은 7세부터 학문을 배우고 궁마(弓馬)를 익히며 황장자(皇長子) 면왕(緬王)은 이미 죽었고, 두 아들이 있는데 둘째 아들은 올해 20세로 시문(詩文)을 가장 잘하고 무예(武藝)가 뛰어났으므로 황제가 매우 사랑하여 좌우에서 떼어놓지 않고 은권(恩眷)이 여러 황자들보다 더하다 합니다.
1. 악이사(鄂爾斯)202) 는 〈그곳 사람들의〉 성질이 본래 굳세고 거칠어 자주 조약을 어기는데 연년에 경계(境界)에서 교역할 때에 마음대로 변방 백성을 죽였으므로 황제가 진노하여 그 나라의 변방을 지키는 관리를 주륙(誅戮)하고 드디어 교역을 끊은 지 이제 3년이 됩니다. 악이사의 임금이 죄를 빌고 화친을 청하였으므로 장차 무역을 다시 허가할 것인데 그 곳에서 나는 것은 초미(貂尾)·서피(鼠皮)·명유리(明琉璃)·성성전(猩猩氈) 따위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162면
- 【분류】외교-야(野)
- [註 195]태행(太行) : 중국 산서성(山西省)에 있는 산.
- [註 196]
여장(女墻) : 성첩(城堞).- [註 197]
문공(文公) : 주자(朱子).- [註 198]
팔기(八旗) : 청(淸)나라의 병제(兵制)의 일대 조직(一大組織). 태조(太祖)가 제정한 것으로 총군(總軍)을 기(旗)의 빛깔에 따라 편제(編制)한 여덟 부대(部隊). 곧 정황(正黃)·정백(正白)·정홍(正紅)·정람(正籃)·양황(鑲黃)·양백(鑲白)·양홍(鑲紅)·양람(鑲籃).- [註 199]
각로(閣老) : 명(明)나라의 직제로, 재상(宰相)을 말함.- [註 200]
장친왕(莊親王) : 청(淸)나라 현조(顯祖)의 셋째 아들.- [註 201]
과도(科道) : 청나라의 직제로, 어사(御史)를 말함.- [註 202]
악이사(鄂爾斯) : 청나라 때의 내몽고(內蒙古)로, 자치주(自治州)임.○庚午/冬至兼謝恩使書狀官洪明浩, 進聞見事件:
一, 自渡鴨江以後, 至石門嶺三百餘里之間, 土地膏腴, 山川明麗, 絶無邊塞之氣, 疊巚峻嶺, 重重環抱。 嶺之西, 卽遼陽也。 山勢漸平, 繞東而南。 大野接天, 極目無際, 野三四百餘里, 只見直北天際, 遙山如屛, 逶迤不斷。 蓋山自太行起, 壁立東走, 直抵我北, 而山如築城, 橫絶沙漢, 天所以限南北界華夷也, 一自瀋陽, 始有城郭, 平地方城。 一面五里, 周爲二十里。 築之以甎, 間用白灰, 高近數十丈, 廣可列數騎, 門必設甕堞, 環城深塹。 其堅如鐵, 猝難攻破, 比諸我國之城, 不可同日而語也。 至於皇城, 則高且廣倍之, 而引通州之江, 灣白河之水, 環爲海子, 鑿玉泉之流匯爲湖水者三。 又引之入城, 貫通闕中, 用閘儲水, 能行大船, 仍通于海。 子城設九門, 兩門之間, 附城築甎爲路, 作上城之階, 邊設女墻, 使不得超越, 而當頭爲門設鑰, 點入守城之兵, 持糧汲水以上, 外鎖其門, 不得上下, 而十日輪番云。一, 宮城亦以甎高築, 上蓋黃瓦, 面塗紅灰, 城底空隙城, 使兵丁之貧窮無家者居之, 而每一丁, 自官造給五間瓦屋, 幾至環城一面。 一, 山海關之外, 明朝所築州縣、衛所、屯堡之城, 革命之際, 攻破崩毁, 一無全處。 自去年皇帝有詔, 沿海及直路, 在前所有之城, 若海州、蓋州、鳳城、遼陽、廣寧、寧遠、巨流河、中前、中後等十八處, 擧皆修築, 故方伐石儲灰, 大爲經營。 限以三年云, 而所費財力, 小城則二萬銀, 大城則倍之。 一, 自鳳城, 至山海關外, 民俗蠢强, 專尙弓馬, 父母之喪, 火葬者多。 或暴骸原野, 視若尋常, 殊未可以人理責之。 關內, 則人物豐碩, 稍有敦厖之風。 然漢人皆苛刻, 淸人多純朴, 而婚喪之禮, 不遵文公家禮, 自王公及庶人, 悉用時制。 蓋最尊佛道, 次敬關王。 一, 關外, 皆旱田, 無水田。 以五畝四分畝之一, 爲一晌。 每晌賦二升米納之, 州縣又徵百文錢, 爲喂養官馬之費, 使驛丞管之。 關內, 則田廣五尺、長二百五十步, 爲一畝。 量腴瘠分五等, 賦徵或銀或米。 大槪通計, 則爲二十分而取一, 商稅, 直一兩銀之物, 收三分銀, 自各處關口稅局, 輸納京師。 歲定之數, 計出千百萬。 一, 兵民之政, 則滿洲人, 自十六歲編之於八旗之下, 歲給二十四兩銀, 隨級加之。 娶妻則不論貧富, 必給二十兩銀以助之。 漢人, 則聽其自願, 名曰漢軍, 竝與其子孫充之行伍。 蓋兵無老少, 皆善騎射, 一或出征戰死, 則世襲封爵, 榮其後裔。 一, 閣老李侍堯, 卽明將李如松之支孫。 本屬於鑲紅旗漢軍, 眷遇殊常, 未入閣之前, 皇帝特移之於正黃旗。 蓋欲近侍駕下之意, 而以第九公主, 尙其第二子。 又以莊親王之女, 妻其第三子, 繼拜閣老。 入閣四年, 以摠督, 出鎭湖廣。 今年南巡時, 廣東科道, 以貪虐劾之。 皇帝震怒, 使駙馬福隆安, 晝夜馳還京師, 先籍其家, 所畜寶貨直九十萬銀, 仍囚其在京二子於刑部, 其長子以近侍隨駕, 亦將押到京獄云。一, 西蕆, 卽古之西蕃也。 有稱活佛者。 今年二十餘歲, 自稱轉生四十二世。 皇帝, 使皇子迎之, 要於五月, 引見于熱河幸行時。 一, 皇帝南巡時, 隨駕官員及所帶兵丁, 自官一日給二錢七分銀, 爲盤費之用。 所騎, 盡用官馬, 按官品高下爲差, 大官八疋, 小官三疋, 而自各其衙門, 歛出銀兩, 以助行裝。 隨往軍兵, 則自閣老以下, 無非親兵, 而統而計之, 不滿五千。 所過州縣駐蹕, 城內則發本地兵, 環城護衛, 設幕露宿, 則亦以本地兵屯守。 一, 皇子、皇孫, 自七歲始受文學、習弓馬, 而皇長子緬王已死, 有子二人, 第二子, 今年二十歲, 最善詩文, 武藝絶倫, 故皇帝鍾愛, 不離左右, 恩眷出諸皇子上云。 一, 鄂爾斯, 性本强悍, 數違條約。 年前界上交市之際, 擅殺邊民, 皇帝震怒, 誅戮其國守邊之吏, 遂絶交易, 于今三年。 鄂爾斯之君長, 謝罪請款, 故將更許留遷, 而其所産, 貂尾、鼠皮、明琉璃、猩猩氈之屬。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162면
- 【분류】외교-야(野)
- [註 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