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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9권, 정조 4년 2월 21일 경오 4번째기사 1780년 청 건륭(乾隆) 45년

왕대비가 언서로 대신에게 왕의 후사가 없음을 지적하며, 빈 간택을 청하다

왕대비(王大妃)가 언서(諺書)로 대신(大臣)에게 하교하기를,

"4백 종사(宗社)의 부탁이 오직 주상(主上)께 달려 있는데, 춘추가 지금 한창인데 아직 사속(嗣續)의 경사가 없으니, 미망인이 못견디게 마음 조릴 뿐더러 일국의 신민이 바라는 마음도 같을 것이다. 오르내리시는 조종(祖宗)의 신명께서 기대하시는 것이 더욱이 어떠하겠는가? 미망인이 조정의 일에 간섭하지는 않을지라도 저사(儲嗣)를 넓히는 방도로 말하면 바라는 마음이 밤낮으로 간절하다. 내가 기이한 병을 앓거니와, 만일 머뭇거리고 지내다가 마침내 한을 품는 지경에 이른다면 어찌 미망인의 불행일 뿐이겠는가? 주상의 성심(聖心)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지지난 해 여름의 일이 지난해 5월 이후로는 한낱 꿈이었다. 곤전(坤殿)의 환후(患候)는 약으로 고칠 수 있는 증세가 아니어서 산육(産育)에 희망이 없다는 것은 궁중에서 다 아는 바이다. 미망인이 견식(見識)은 모자랄지라도, 조금이라도 사람의 힘으로 고칠 희망이 있다면 어찌하여 경들에게 이런 말을 다시 하겠는가? 조정에서 내용을 모르는 자는 혹 병환을 어찌 고칠 수 없겠느냐 운운하겠으나, 이것이 오히려 모르는 말이다. 미망인이 변변치 못하기 이를 데 없을지라도 어찌 차마 주상의 곤내(壼內)의 일에 대하여 이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생각을 하겠는가? 선대왕(先大王)께서 재위(在位)하셨을 때에도 오히려 그 사이에 힘을 쓸 수 없어서 일임하셨으니, 증세가 말하지 않는 가운데에 매우 무거웠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신하가 미망인의 말을 거짓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오직 환후가 고쳐질 수 없다는 것만은 알고서 오직 매우 절박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증후가 어떠하다는 것은 대체를 지지난 해 언서로 하교한 가운데에 대략 보였으니 이제 반드시 다시 말할 것 없거니와, 천만 부득이하여 다시 ‘저사를 넓힌다.[廣儲嗣]’는 석 자를 경들에게 붙인다. 주상께서는 오히려 다시 이 일을 하는 데에 대하여 망설이시므로 전후에 간절히 권한 것이 몇 번인지 모르나 정성이 천박한 까닭에 이제까지 서로 버틴다. 이제는 내 병이 위중하니, 만일 다시 머뭇거리기를 일삼는다면 내가 볼 수 없게 될 듯하다. 경들은 종사에 큰 경사가 있을 도리를 생각해야 한다."

하였다. 시임(時任)·원임(原任) 대신들이 예조 당상을 거느리고 청대(請對)하니, 입시(入侍)하라고 명하였다.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좌의정 이은(李溵)·영중추 서명선(徐命善)·판중추 정홍순(鄭弘淳)·예조 판서 홍낙성(洪樂性)이 말하기를,

"왕대비께서 언서로 하교하신 것을 보고 절로 황공하여 땀이 등을 적셨습니다. 옮겨 베껴서 바치고 생각하건대, 종사의 부탁은 전하의 한 몸에 달려 있거니와, 곤전의 환후가 앞으로 조금 나아지신다면 혹 자손이 번창하는 경사가 있겠습니다마는, 바로 지금 저사가 하루가 급하니, 언서로 하교하신 대로 빈(嬪)을 간택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난해 5월 이후에 이제 어찌 다시 이 일을 할 수 있으랴마는, 자전의 하교가 간절하시니, 애써 받들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52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王大妃以諺書, 下敎于大臣曰:

    四百年宗社之托, 惟在主上。 春秋鼎盛, 而尙未有嗣續之慶。 不但未亡人, 不勝焦迫。 一國臣民顒望之心所同然也。 祖宗陟降之靈, 其所企待尤當如何? 未亡人雖不干涉朝廷之事, 而至於廣儲嗣之道, 所望之心, 晝夜懇切。 予病奇疾也。 萬一趑趄以過, 而終至於含恨之境, 豈特未亡人之不幸? 主上聖心, 亦當如何哉? 再昨夏之擧, 昨年五月以後, 則若一夢焉。 坤殿患候, 非可以藥治之症。 而斷望於産育, 卽宮中之所共知。 未亡人雖見識不足, 若有一分以人力療治之望, 則何爲更發此言於卿等乎? 朝廷之間, 未知裏面者, 似或以爲病患, 豈不能療治云云。 此則, 猶是不知之言。 未亡人雖不肖無似, 何忍於主上壼內之事, 爲此歇後之思乎? 先大王在宥之時, 猶不能容力於其間, 而一任之, 則症勢之不言中深重, 可以推知。 今日臣子, 若不以未亡人之言爲虛, 則惟當只知患候之不可療治, 而惟有痛迫之心可也。 症候之如此如此, 大體再昨年諺敎中, 略略眎之。 今不必更言矣。 千萬不得已, 更以廣儲嗣三字, 付諸卿等。 主上則猶有持難於復爲此擧, 故前後懇勸, 不知幾次, 而誠淺之故, 至人相持。 今則予病危重, 萬一復事遲回, 則竊恐予之不得見矣。 卿等須思宗社有大慶之道焉。

    時、原任大臣, 率禮堂請對。 命入侍。 領議政金尙喆、左議政李溵、領中樞徐命善、判中樞鄭弘渟、禮曹判書洪樂性曰: "伏見王大妃殿諺敎下者, 不覺惶汗浹背。 翻謄以進, 而竊伏念宗社之托, 在於殿下之一身。 坤殿患候, 前頭若差勝, 則或有螽斯之慶。 而目今儲嗣, 一日爲急。 請依諺敎擇嬪。" 上曰: "昨年五月以後, 今豈可更爲此擧。 而慈敎懇惻, 不可不勉承。"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14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52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