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직 김효대가 동천묘에 비문을 세울 것을 청하니 윤허하다
부사직 김효대(金孝大)가 상소하기를,
"예전에 송(宋)나라 인종(仁宗)이 오왕(吳王)·월왕(越王)의 정성을 아름답게 여겨 수신(守臣)에게 명하여 그 무덤을 수리하게 하고 또 사신(詞臣)에게 명하여 표충관(表忠觀)040) 의 비문을 짓게 하였으니, 숭보(崇報)041) 하고 표창한 것이 지극 하였습니다. 생각하건대, 우리 나라에서는 더욱이 의리를 중히 여겨 승국(勝國)042) 을 위하여 숭의전(崇義殿)043) 을 두고 신라를 위하여 숭덕전(崇德殿)044) 을 두고 관원을 두어 수호하고 비를 세워 업적을 기록하였습니다. 이 숭덕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천묘(東川廟)가 있는데 곧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사당입니다. 국가에서 숭의전·숭덕전과 마찬가지로 관원을 두어 수호하고 예(禮)로 제사하니, 신 등은 경순왕의 후손으로서 흠앙(欽仰)하고 감축(感祝)하는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대저 경순왕은 임금 자리에 있다가 갑자기 물러나서 신기(神器)를 가지고 덕 있는 이에게 귀순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고려 태조가 빈례(賓禮)로 대우하고 사관(史官)이 항(降) 자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조 대왕(仁祖大王) 때에 이르러 본 도의 도신(道臣) 김시양(金時讓)이 장청(狀請)함에 따라 왕묘(王廟)로 바꾸어 새롭게 하고 이어서 성손(姓孫)을 참봉(參奉)으로 차정(差定)하게 하셨고, 현종 대왕(顯宗大王)께서는 또 연신(筵臣)의 진달로 인하여 특별히 사액(祠額)을 내리고 유생(儒生) 90인이 거재(居齋)하게 하였으며, 수호(守護) 60명을 두었습니다. 선조(先朝) 무진년045) 에는 장단(長湍)에서 왕의 현수(玄隧)046) 를 찾았으므로 특별히 수졸(守卒) 5인을 주고 희생과 제물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게 하셨으니, 국가에서 대우하는 것이 이처럼 융숭하였는데 동천묘 앞에는 오히려 계생석(繫牲石)이 없습니다. 청컨대 사신(詞臣)으로 하여금 비문을 지어 바치게 하고 그 후손이 돌을 다듬어 새겨 세우도록 윤허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이 곳에 오히려 비석이 없는 것은 흠절이라 하겠다. 더구나 선조의 고사(故事)가 있으니, 청한 대로 시행하라."
하였다. 뒤에 대신(大臣) 김상철(金尙喆)이 연석(筵席)에서 사신이 글을 짓는 것은 일이 상격(常格)과는 다르다고 아룀에 따라 드디어 그만두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14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역사-전사(前史) / 풍속-예속(禮俗)
- [註 040]표충관(表忠觀) : 중국 송(宋)나라 신종(神宗) 연간에 조변(趙抃)이 오(吳)·월(越)의 여러 왕과 왕비를 제사하기 위해 세운 신당. 절강성(浙江省)에 있으며 현재는 전왕사(錢王祠)라 일컬음. 그 비문은 소식(蘇軾)이 지었음.
- [註 041]
숭보(崇報) : 은덕(恩德)을 갚음.- [註 042]
승국(勝國) : 고려를 가리킴.- [註 043]
숭의전(崇義殿) : 조선 시대에 고려 태조와 7왕을 제사지내던 사당. 태조 6년(1397)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묘(廟)를 세우고, 그후 태조와 7왕(혜종·정종·광종·경종·성종·목종·현종)을 제사지냈다. 숭의전이라 한 것은 문종 2년(1452)부터이며 고려 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 곳을 관리하게 하였음.- [註 044]
○副司直金孝大上疏曰:
昔宋 仁宗, 喜吳、越王之誠, 命守臣, 修其墳墓。 又命詞臣, 撰表忠觀碑。 所以崇報、表章之者至矣。 洪惟我朝, 尤重斯義, 勝國有崇義殿, 新羅有崇德殿, 設官以守護, 樹碑而紀績。 惟此崇德殿不遠之地, 有東川廟, 卽新羅 敬順王廟也。 自朝家設官守護, 享祀以禮, 一如崇義、崇德。 臣等以敬順王之遺裔, 欽仰感祝, 曷有其極? 夫敬順王, 屣視千乘, 去如傳舍, 挈神器而歸有德。 是以麗祖待以賓禮, 史氏不書降字。 逮我仁祖大王, 因本道道臣金時讓狀請, 易王廟而新之, 仍令姓孫, 差定參奉。 顯宗大王, 又因筵臣陳達, 特宣祠額, 使儒生九十人, 居齋, 置守護六十名。 粤在先朝戊辰, 得王之玄隧於長湍, 特給守卒五人, 以牲幣遣使致祭。 朝家所以待之者, 若是隆摯, 而東川廟前, 尙無繫牲之石。 請令詞臣, 撰進碑文, 許其後裔, 治石鐫竪。
批曰: "此地之尙闕立石, 可謂欠事。 況有先朝故事, 所請依施。" 後因大臣金尙喆筵白, 謂詢臣撰文, 事異常格, 遂寢之。
- 【태백산사고본】 9책 9권 9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149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역사-전사(前史) / 풍속-예속(禮俗)
- [註 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