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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8권, 정조 3년 9월 25일 병오 1번째기사 1779년 청 건륭(乾隆) 44년

불운정에 나아가 연사례를 행하고 무신에게 차등을 두어 상주다

봉모당(奉謨堂)에 전배(展拜)하고 불운정(拂雲亭)에 나아가 연사례(燕射禮)를 행하였다. 【시사관(侍射官)은 좌의정 서명선(徐命善),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 서명응(徐命膺), 병조 판서 홍낙성(洪樂性), 판돈녕부사 구윤옥(具允鈺), 평안도 관찰사 이휘지(李徽之), 우참찬 정광한(鄭光漢), 행 도승지 홍국영(洪國榮), 이조 참판 유언호(兪彦鎬), 행 부사직 이형규(李亨逵), 이의익(李義翊), 병조 참의 홍낙빈(洪樂彬), 규장각 직각(奎章閣直閣) 김면주(金勉柱), 대교(待敎) 서용보(徐龍輔)이다.】 사사(司射)가 정자 남쪽에 아홉 솔[帿]272) 을 펴고, 솔 좌우에 핍(乏)273) 을 정자 아래 좌우에 북[鼓] 하나와 징[金] 하나와 복(福)274) 다섯을 설치하고, 또 솔 좌우에 북과 징 둘과 아홉 후기(帿旗)를 설치하였다. 때가 되어 사사가 꿇어앉아 유사(有司)가 활쏘기의 준비를 갖추었음을 아뢰니, 임금이 두면(頭冕)을 갖추고 정자 위에 나갔다. 종(鍾)을 울려 여섯 번 소리나니, 시사관(侍射官)이 짝을 지어 나아가 사배(四拜)하고, 사사가 획자(獲者)275) 를 시켜 정(旌)을 잡고 솔을 지게 하고, 사궁(司弓)이 어궁(御弓)을 받들고, 사시(司矢)가 승시(乘矢)276) 를 받들고, 시사관들이 결습(決拾)277) 을 끼고 활을 잡고 살을 꽂고서 짝을 지어 사위(射位)에 나아갔다. 사사가 어좌(御座)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 획자에게 명하여 솔이 있는 데로 가게 할 것을 아뢰고, 고시 무신(告矢武臣)이 큰 소리로 ‘획자는 솔로 가라.’ 하니, 획자와 기(旗)·북을 든 자가 일제히 소리내어 응낙하고 고자(鼓者)가 북을 세 차례 치고 획자도 북을 쳐서 응답하였다. 고시 무신이 또 큰 소리로 ‘곰[熊]은 3획(劃)을 얻고 범[虎]·사슴[鹿]·꿩[雉]·토끼[兎]는 2획을 얻고 기러기[鱇]·물고기[魚]·수리[雕]·원숭이[猿]는 1획을 얻는다. 맞히면 북을 치고 맞히지 못하면 징을 치며, 한 물건을 잡으면 힌 기를 들고 곰과 승시는 아홉 기를 든다.’ 하니, 획자 이하가 응낙하였다. 임금이 사위에 오르니, 사궁·사시가 활과 살을 바쳤다. 어시(御矢)를 쏠 때마다 풍악을 울렸다. 잡으면 먼저 도전(翿旜)을 세우고 곰이면 아홉 기를 함께 들고 북을 쳐서 세 번 소리내고, 범·사슴·꿩·토끼이면 각각 그 기를 들고 북을 쳐서 두 번 소리내고, 기러기·물고기·수리·원숭이이면 또한 각각 그 기를 들고 북을 쳐서 한 번 소리내고, 고시 무신이 그 기와 북을 살펴서 어는 살이 어디에 맞았음을 고하였다. 혹 맞지 않으면 어사(御射) 때에는 징을 울리지 않고 도전을 살이 간 쪽으로 뉘고 고시 무신이 또한 큰소리로 고하되, 아래로 떨어져 미치지 못하면 유(留)라 하고 위로 넘어가면 양(揚)이라 하고 왼쪽으로 지나가면 좌방(左方)이라 하고 오른쪽으로 지나가면 우방(右方)이라 하였다. 어사가 끝나고서 사궁·사시가 꿇어앉아 활과 살을 받고 물러가 자리로 돌아가고, 뭇사람이 짝을 지어 올라가서 차례로 살을 쏘았는데, 각각 잡은 것에 따라 기를 올리고 북을 울리는 것은 위의 의식과 같이 하였다. 활쏘기가 끝나면 내려가 자리로 돌아갔다.

뭇사람이 짝을 지어 나아간 것이 3순(巡)에 이르니, 임금이 시사관들에게 명하여 계상(階上)에 올라 차례대로 자리에 가게 하고 이어서 명하여 선반(宣飯)278) 하였다. 끝나고서 또 위의 의식대로 사례(射禮)를 행하여 5순에 이르러 활쏘기가 끝났다. 사사가 맞힌 자의 성명과 획수(劃數)를 쓰고 또 맞히지 못한 자의 성명을 써서 승지가 꿇어앉아 맞힌 자를 상주고 맞히지 못한 자를 벌줄 것을 아뢰었다. 시사관이 들어가 배위(拜位)에 나아가되, 맞힌 자는 동쪽에 자리하고, 못한 자는 서쪽에 자리하였다. 맞힌 자는 활과 살로 상주고 맞히지 못한 자는 술마시는 것으로 벌주었다. 끝나고서 사배하였다. 사사가 꿇어앉아 솔로 갈 것을 계청(啓請)하고 고사 무신(告射武臣)이 큰 소리로 ‘솔로 가라.’ 하니, 획자와 기·북을 든 자가 일제히 소리내어 응낙하고 고자가 북을 세 차례 치고 획자도 북을 쳐서 응답하였다. 시사관이 나가고 각신(閣臣)이 전문(箋文)을 바치고 사례(謝禮)를 아뢰었다. 고시 무신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상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22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인사-관리(管理) / 군사-병법(兵法)

  • [註 272]
    솔[帿] : 보사(步射)할 때 화살로 맞추는 목표의 과녁. 사포(射布)에 짐승의 머리를 그린 것인데, 어사(御射)에 쏘는 웅후(熊帿), 종친(宗親)과 문무관(文武官)이 쏘는 미후(麋帿), 무과 교습(武科敎習)에 쏘는 시후(豕帿) 등이 있었음.
  • [註 273]
    핍(乏) : 살가림. 곧 화살이 옆으로 달려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임.
  • [註 274]
    복(福) : 살그릇. 곧 맞힌 화살을 꼽아두는 것임.
  • [註 275]
    획자(獲者) : 화살을 줍는 사람.
  • [註 276]
    승시(乘矢) : 네 개를 한벌로 한 살.
  • [註 277]
    결습(決拾) : 깍지와 팔지.
  • [註 278]
    선반(宣飯) : 관아(官衙)에서 관원들에게 끼니 때에 제공하는 식사.

○丙午/展拜奉謨堂。 御拂雲亭, 行燕射禮。 【侍射官, 左議政徐命善、奎章閣提學徐命膺、兵曹判書洪樂性、判敎寧府事具允鈺、平安道觀察使李徽之、右參贊鄭光漢、行都承旨洪國榮、吏曹參判兪彦鎬、行副司直李亨逵、李義翊、兵曹參議洪樂彬、奎章閣直閣金勉柱、待敎徐龍輔。】 司射張九帿於亭之南, 設笠於帿左右, 鼓一、金一、楅五於亭下左右, 又設皷二、金二及九帿旗於帿之左右。 時至, 司射跪啓有司旣具射。 上具頭冕, 出亭上。 鳴鍾六聲。 侍射官, 耦以進四拜。 司射令獲者執旌負帙。 司弓奉御弓。 司矢奉乘矢。 諸侍射官, 決拾、執弓、搢矢, 以耦進射位。 司射進御座前, 跪啓命獲者去帿。 告矢武臣高聲曰: "獲者去帿。" 獲者與執旗皷者, 齊聲應諾。 皷者擂皷三通。 獲者亦擂皷以應之。 告矢武臣又高聲曰: "熊得三; 虎、鹿、雉、兎得二;雁、魚、雕、猿得一。 中則皷, 不中則金, 獲一物, 則擧一旗, 獲熊及乘矢, 擧九旗。" 獲者以下應諾。 上陞射位。 司弓、司矢奉進弓矢。 御矢, 每發樂作。 獲則先建翿旜, 熊則九旗幷擧, 皷三聲, 虎、鹿、雉、兎則各擧其旗皷二聲; 雁、魚、雕、猿, 則亦各擧其旗皷一聲。 告矢武臣觀其旗皷, 而告某中。 或不中, 則御射不鳴金, 以翿旜偃于矢向之方, 而告矢武臣亦高聲告之。 (上)〔下〕 曰留, (下)〔上〕 曰楊, 左曰左方, 右曰右方。 御射訖, 司弓矢, 跪受弓矢, 退復位。 侍射者以耦陞, 以次發矢。 各以所獲矢, 擧旗嗚皷如上儀。 射畢降復位。 衆耦以次進, 至三巡, 上命侍射官等陞階, 以次就位。 仍命宣飯訖。 又行射禮如上儀, 至五巡, 射畢。 司射書中者姓名及畫數, 又書不中者姓名。 承旨跪啓, 賞中者, 罰不中者。 侍射官入就拜位。 中者在東, 不中者在西。 中者賞以弓矢;不中者罰以飮, 訖四拜。 司射跪啓請去帿。 告射武臣高聲曰: "去帿。" 獲者與執旗、皷者, 齊聲應諾。 皷者擂皷三通。 獲者亦擂皷應之。 侍射官出。 閣臣進箋稱謝。 告矢武臣以下, 施賞有差。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22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인사-관리(管理) / 군사-병법(兵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