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가가 경안교에 이르자 백성들이 임금을 뵙기 위해 나오다
거가(車駕)가 쌍령천(雙嶺川) 가에 이르러 머물러 한참 있다 가 말하기를,
"이곳은 병자년191) 에 양남(兩南)의 군사가 전사한 곳이다."
하였다. 경안교(慶安橋)에 이르러 임금이 말하기를,
"내[川]가 넓어서 다리가 기니 수리하는 일이 반드시 적지 않을 것인데, 민간에게 폐해를 끼치는 것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천 지경에 이르러 임금이 길가 백성이 산에 가득 차고 들에 두루 찬 것을 보고 거가를 멈추어 승지(承旨)에게 이르기를,
"길을 끼고 구경하는 백성이 어제보다 많은데, 이들은 다 가까운 곳에 사는 백성인가? 혹 먼 지방에서 올라온 백성도 있는가?"
하고, 명하여 백성들이 사는 것을 묻게 하였는데, 삼남(三南)과 양서(兩西) 및 북관(北關)의 백성도 많이 올라왔다. 늙고 머리가 흰 자가 혹 길을 막고 부복(俯伏)하여 아뢰기를,
"우리 임금이 보기를 바라서 발을 싸매고 올라왔습니다. 감히 잠시 멈추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사복(嗣服)한 이후로 무슨 일정 일령(一政一令)이라도 은택이 백성의 생계에 미친 것이 있으랴마는, 백성이 이처럼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와서 우모(羽旄)192) 를 바라보는 것은 더욱 절실히 조심하고 두려워할 바이다."
하였다. 이천(利川) 서현(西峴)에 이르렀을 때에 한 늙은 백성이 길가에서 수박 한 소반을 받들어 임금에게 바치려 하다가 위졸(衛卒)에게 막혀서 들어오지 못하였는데, 임금이 시신(侍臣)에게 이르기를,
"예전에 이른바 미나리를 바쳤다는 것193) 이 이것인가? 백성의 뜻은 알 만하나 받아들이도록 허락하면 폐단이 있을 것이다. 받아들이고 나면 어찌 은혜를 베푸는 일이 없겠는가? 예전 당(唐)나라 덕종(德宗)이 파천(播遷)할 때에 과일을 바친 백성이 있어서 받아 먹고 벼슬을 제배(除拜)하게 하였으니, 그때 육지(陸贄)가 어찌 매우 간쟁(諫諍)하지 않았겠는가?194) 가령 이들이 참으로 미나리를 바치는 정성에서 나왔더라도 요행을 바라는 단서를 열게 될 만하다."
하였다. 이어서 이천 행궁(利川行宮)에 나아가니 경기 암행 어사(京畿暗行御史) 김면주(金勉柱)가 복명(復命)하였다. 연로(沿路)에서 듣고 본 것을 물으매, 김면주가 말하기를,
"행행(行幸) 길이 멀고 날짜가 길기는 하나 백성을 돌보고 역을 면제하는 방도로 말하면 조정에서 혜택을 베풀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열읍(列邑)의 수령(守令)이 감히 법을 어기는 짓을 자행하지 못하고 무지한 백성도 다들 그것을 아니, 진배(進排)·사역(事役) 등의 일에 다행히 대단한 폐혜가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열읍 가운데에서 누가 잘 다스리지 못하고 누가 잘 다스리는가?"
하매, 김면주가 말하기를,
"양주 목사(楊州牧使) 엄숙(嚴璹)·여주 목사(驪州牧使) 박사륜(朴師崙)·양근 현감(楊根縣監) 김재화(金載華)·과천 현감 이의화(李義和)는 모든 거행에 민폐를 끼치는 것이 많고, 음죽 현감(陰竹縣監) 이보첨(李普瞻)은 잘 다스리는 것이 한 도(道)에서 으뜸입니다. "
하니, 이보첨에게 말[馬]을 내리고 네 고을의 수령은 파직(罷職)하고 나문(拿問)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113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註 191]병자년 : 1636 인조 14년.
- [註 192]
우모(羽旄) : 새의 깃으로 만들어 기(旗)에 꽂는 물건.- [註 193]
미나리를 바쳤다는 것 : 옛날 어느 농부가 미나리를 먹어보고 하도 맛이 있어 임금에게 마쳤다는 고사(故事).- [註 194]
육지(陸贄)가 어찌 매우 간쟁(諫諍)하지 않았겠는가? : 당(唐)나라 덕종(德宗)이 주자(朱泚)의 난리로 봉천(奉天)으로 파천(播遷)할 때에 길에서 어떤 백성이 과일[瓜果]을 바친 자가 있었는데, 덕종이 이것을 시관(試官)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여 한림 학사(翰林學士) 육지(陸贄)에게 물으니, 육지가 관작이 가볍고 법을 베풂이 드묾을 들어 시관에게 이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상주(上奏)한 고사가 있음.○駕至雙嶺川邊, 駐蹕良久曰: "此丙子年, 兩南軍戰亡處也。" 至慶安橋 上曰: "川廣橋長, 修治之役, 必不些。 能無貽弊於民間乎?" 至利川境, 上見路傍民人, 漫山遍野。 駐蹕謂承旨曰: "挾路觀光之民, 比諸昨日, 尤爲衆多。 此皆近地居民乎? 或有遐方之民上來者乎?" 命問民人等居住。 三南、兩西及北關民人, 亦多上來。 老白首者或遮道俯伏而奏曰: "願見吾君, 而裹足上來, 敢請少駐。" 上曰: "予自嗣服以後, 有何一政一令之澤及民生者, 而民之如是不遠千里, 來瞻羽旄者, 益切兢惕處也。" 至利川 西峴, 有一老氓, 奉西瓜一盤於路邊, 欲獻御, 而爲衛卒所遮, 不得入。 上謂侍臣曰: "古所謂獻芹者此耶? 民情雖可見, 而許捧則有弊。 旣捧之後, 豈無施惠之擧? 昔唐宗播遷之時, 民有獻菓者, 受而食之, 使之拜官, 其時陸贄豈不切諫乎? 籍令此輩, 眞出獻芹之誠, 足啓僥倖之端也。" 乃詣利川行宮, 京畿暗行御史金勉柱復命。 問沿路聞見, 勉柱曰: "行幸程路雖遠、日字雖久, 至於恤民蠲役之道, 朝家無不施惠, 列邑守宰, 不敢恣行, 非法無知小民, 亦皆知之。 進排事役等節, 幸無大叚爲弊之事矣。" 上曰: "列邑中, 誰爲不治, 誰爲善治? 勉柱曰: "楊州牧使嚴璹、驪州牧使朴師崙、楊根縣監金載華、果川縣監李義和, 凡諸擧行, 多貽民弊, 陰竹縣監李普瞻, 治最一道。" 命普瞻錫馬, 四邑守令罷拿。
- 【태백산사고본】 8책 8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113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註 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