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도승지 등이 정처의 정배를 간청하다
정치달(鄭致達)의 아내를 교동부(喬桐府)로 내쳐서 안치(安置)시켰다. 송덕상(宋德相)의 상소가 있은 뒤에 시임 대신(時任大臣)·원임 대신(原任大臣)과 승지(承旨)·삼사(三司)에서 청대(請對)하였다. 영의정 김상철(金尙喆) 등이 말하기를,
"삼가 살피건대, 정치달의 아내가 아직도 성 밖에 있는데 바야흐로 참작하여 처리할 것을 생각한다는 하교가 있었으니, 신 등의 오랫 동안 억제되어 왔던 정성을 한 번 펴볼 기회가 바로 닥쳤기 때문에 이렇게 인솔하고 와서 청대(請對)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선대왕(先大王)께서 평소 무척 사랑하였던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찌 윤종(允從)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도승지 심이지(沈頤之), 대사간 이규위(李奎緯) 등이 서로 잇따라 극력 청하니, 하교하기를,
"대신(大臣)과 삼사(三司)의 청이 이미 이러하니, 윤종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후의 비지(批旨)와 연교(筵敎)에서 나의 마음을 죄다 하유한 것은 다만 선대왕께서 사랑하던 사람을 차마 손상시킬 수 없는 뜻에서 그런 것이다. 이런 때문에 형률(刑律)에 의거 조처하지 않고 있었으나 유현(儒賢)이 논한 것이 또한 이와 같으니, 그대로 도성 밖에 놓아 둘 수 없다. 정치달의 아내는 감사(減死)하여 파주목(坡州牧)으로 내쳐 안치시키라."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또 말하기를,
"파주는 도성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하니, 이에 다시 교동부로 고치라고 명하였다. 대사헌 유언호(兪彦鎬), 대사간 이규위(李奎緯), 교리 정연순(鄭淵淳)이 아뢰기를,
"정치달의 아내와 김귀주(金龜柱)는 죄악이 천하에 꽉찼는데, 어떻게 하루인들 땅위에서 목숨을 부지하고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 등이 서로 이끌고 와서 구대(求對)한 것은 대개 지금은 전과는 더욱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석(前席)에서 일제히 아뢰었는데도 윤종(允從)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필경 정치달의 아내에 대한 처분도 기도(畿島)에 내쳐 안치시키는 데 그쳤습니다. 성의(聖意)의 소재를 신 등이 어찌 모르겠습니까마는 전하께서 윤허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사은(私恩)에서인 것이고 신 등이 간하면서 고집하는 것은 공법(公法)인 것입니다. 청컨대 속히 정치달의 아내를 참작하여 처리하는 명령을 정지하고 통쾌히 왕법(王法)을 바루어 화란(禍亂)을 막으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다시 헤아려 조처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49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109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黜置鄭致達妻于喬桐府。 宋德相疏後, 時ㆍ原任大臣、承旨、三司請對。 領議政金尙喆等曰: "伏見鄭妻, 尙在城外, 方思酌處之敎, 臣等積年抑菀之忱, 正有一伸之會, 故方此相率求對矣。" 上曰: " 先大王素所鍾愛。 不然則予豈不允從乎?" 都承旨沈頣之、大司諫李奎緯等, 相繼力請。 敎曰: "大臣、三司之請, 旣如此, 非不欲允從。 前後批旨、筵敎, 悉諭予意, 特以不忍傷先大王鍾愛之意也。 是以, 雖不置律, 儒賢所論又如此, 不容仍置城闉之外。 鄭致達妻減死, 坡州牧黜置。" 諸臣等又曰: "坡州無異城闉也。" 乃命改以喬桐府。 大司憲兪彦鎬、大司諫李奎緯、校理鄭淵淳啓言: "鄭妻龜柱貫盈之罪惡, 豈可一日偃息於地上, 而至於今日? 臣等所以相率求對者, 蓋以此時, 與前尤異故也。 今於前席之齊籲, 不惟不賜允從。 畢竟鄭妻之處分, 止於畿島之黜置。 聖意所在, 臣等豈不仰認, 而殿下之靳持, 私恩也。 臣等之爭執, 公法也。 請亟寢鄭妻酌處之命, 快正王法, 以杜禍亂。" 批曰: "更當量處。"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49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109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