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정조실록 7권, 정조 3년 4월 10일 갑자 1번째기사 1779년 청 건륭(乾隆) 44년

이진후 등을 친히 국문하다

이진후(李鎭厚) 등을 친히 국문(鞫問)하였다. 좌포도 대장 이주국(李柱國), 우포도 대장 이창운(李昌運)이 상변서(上變書)를 가지고 청대(請對)하여 아뢰었는데, 그 글에 대략 이르기를,

"광주(廣州) 간악곡(奸惡谷)에 이름이 이계통(李季通)이라고 하는 양반이 있는데 곧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 이장흡(李長潝)의 아들입니다. 밤에 그 집의 창 밖을 지나다가 마주 앉아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 내용은 ‘홍술해(洪述海)의 아내 효임(孝任)은 여자이다. 그런 때문에 무지한 상놈과 모사(謀事)하다가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자 도리어 화(禍)를 당한 것이다. 따라서 홍술해는 죄가 없는데도 가문이 멸망하는 화를 당하게 된 것이다, 선인(善人)을 죄다 주멸(誅滅)하고 간신(奸臣)들과 나라를 다스리니 어떻게 장구할 수 있겠는가? 예로부터 간웅(奸雄)이 성하면 쓸만한 사람은 모두 죽였고 나라도 또한 망하였다. 다만 전쟁으로 하여 망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소장(蕭墻)126) 의 변고가 있게 되는 것이다. 네가 성숙(聖叔)과 은밀히 모의하고 있는 일은 혹시라도 잘못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매부(妹夫)가 비록 상인(喪人)이기는 하지만 주밀(周密)하게 하는 데는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와룡(臥龍)127) ·봉추(鳳雛)128) 도 그보다 낫지는 못하다. 모집하여 얻은 군사들도 모두 비호(飛虎)129) ·형가(荊軻)130) 와 같으니, 비록 사로잡히더라도 이들을 누가 당해낼 수 있겠는가? 모신(謀臣)이 괴수(魁首)에게 아첨하여 금위 대장(禁衞大將)이 집을 나갈 때를 기다려 밤을 이용해서 도모하면 궁내(宮內)가 반드시 요란스러워질 것이다. 이럴 즈음에 궐내(闕內)의 잡색(雜色)들 가운데 뒤섞여 거사(擧事)하면 된다. 나의 매부(妹夫) 김철한(金喆漢)·이해백(李海白)과 상의하여 지휘하면 성사(成事)시키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다. 임금께서 거둥이 있을 때 거사하면 더욱 좋다.’고 하였으니, 빨리 자세히 조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한 사람을 알려면 광주(廣州) 몽촌(夢村)구가(具哥)들 가운데 반드시 호응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숙장문(肅章門)에서 친국(親鞫)하였다. 이계통(李季通)은 곧 이장흡(李長潝)의 아들로 자(字)가 원간(元幹)이며 원간의 매부(妹夫)는 곧 정력(鄭櫟)이다. 이장흡·이원간·정력을 차례로 국문하였으나 모두 승복하지 않았다. 지제교(知製敎) 정지검(鄭志儉)에게 명하여 방문(榜文)을 지어서 네거리에 투서(投書)한 사람을 색출하라고 하였다. 조금 있다가 낙림군(樂林君) 이연(李埏)의 아들 이진후(李鎭厚)광주의 향호(鄕戶) 이유길(李惟吉)이 체포되었다. 대개 이진후이장흡 부자(父子)와 산송(山訟)의 일 때문에 숙원(宿怨)이 있게 되었는데, 이유길이진후의 객(客)이다. 항상 원한을 풀려고 별러오다가 이장흡이 본래 홍술해(洪述海)와 친하다는 것을 알고 이에 장명서(藏名書)를 지어 급변(急變)을 고발하게 된 것이다. 이유길이 공초(供招)하기를,

"길에서 이원간을 만났는데 홍술해의 집을 바라보면서 홍술해가 죄없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대단하게 이야기하기에 그 말을 이진후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이진후가 그 말에 의거하여 상변(上變)한 것입니다."

하였다. 이진후·이유길·이원간을 서로 대질(對質)하여 말하게 하였는데, 이원간이 그랬다는 실증(實證)이 없어 이진후의 말이 경우에 어긋났으나 기어코 버티면서 승복하지 않았다. 곧이어 추국(推鞫)하라고 명하였는데 이진후·이유길은 형을 집행하기 전에 곧바로 죽었다. 이원간이진후의 아버지 이연, 아우 이진관(李鎭寬)은 참작하여 정배(定配)시켰으며 정익화(鄭益華)홍지해(洪趾海)가 돌보아 키워주었다는 것으로 이원간에게 원인(援引)되어 국문을 받았고 또한 정배되었다. 이장흡·정력은 참작하여 석방시켰으며 금려(禁旅)인 권익(權翊)은 국초(鞫招)의 내용을 이연에게 은밀히 알린 일이 발각되어 체포하여 형문(刑問)한 다음 형배(刑配)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05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126]
    소장(蕭墻) : 가장 가까운 곳 궁궐 안이란 뜻.
  • [註 127]
    와룡(臥龍) : 제갈양(諸葛亮).
  • [註 128]
    봉추(鳳雛) : 방사원(龐士元).
  • [註 129]
    비호(飛虎) : 후당(後唐)의 이극용(李克用).
  • [註 130]
    형가(荊軻) : 연(燕)나라 자객(刺客).

○甲子/親鞫李鎭厚等。 左捕盜大將李柱國、右捕盜大將李昌運, 持上變書, 求對以啓。 書略曰:

廣州 奸惡谷 有班名李季通, 訓鍊主簿李長潝子也。 夜過窓外, 聞偶語曰: ‘述海妻, 孝任女人也, 故與無知常漢謀事, 事不成而反受禍。 述海無罪, 而至於滅家。 善人盡滅, 與奸臣輩治國, 何以長久? 自古奸雄盛, 則可用之人盡死, 國亦亡。 非但戰亡, 亦有蕭墻之變矣。 汝與聖叔, 有密議事, 未必或誤。 吾之妹夫, 雖是喪人, 周密無雙, 臥龍、鳳雛, 無過於此。 募得之士, 皆如飛虎。 荊軻雖被禽, 此人誰能當之? 俟謀臣阿諂之魁首, 禁將出家之時, 乘夜圖之, 宮內必擾亂, 混錯於闕內雜色中, 而擧事者。 吾之妹夫金喆漢李海白, 相議指揮, 成事如反掌。 擧事於擧動時尤勝’云云。 速得盤査爲好。 欲知告人, 廣州 夢村 具哥中, 必有應者。

乃親鞫于肅章門李季通, 卽李長潝之子, 元幹之字。 元幹之妹夫, 卽鄭櫟也。 長潝元幹, 次第鞫問, 皆不服。 命知製敎鄭志儉製榜文, 揭通衢。 又命捕廳, 紏詗投書者。 已而, 樂林君 鎭厚廣州鄕戶李惟吉就捕。 蓋鎭厚李長潝父子, 因山訟事, 有宿怨, 而惟吉, 鎭厚客也。 常欲一逞憾, 知長潝素親述海, 乃作藏名書, 告急變。 惟吉供, "路逢元幹, 望見述海家舍, 盛言述海之無罪冤死, 傳其言于鎭厚, 則鎭厚憑此上變。" 鎭厚惟吉元幹互相對辨。 元幹無實證。 鎭厚語屈, 而抵賴不輸款。 尋命推鞫, 鎭厚惟吉徑斃。 元幹鎭厚之父、弟寬酌配。 鄭益華以(卯)〔卵〕 育於趾海, 爲元幹所援就鞫, 亦配。 長潝酌放。 禁旅權翊, 以密通鞫招於, 事發逮問刑配。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41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105면
  •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