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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7권, 정조 3년 1월 23일 무신 1번째기사 1779년 청 건륭(乾隆) 44년

주강에서 《논어》의 검소·공경심·신독 등에 대해 논하다

주강(晝講)에서 《논어(論語)》를 강하였다. 시독관 남학문(南鶴聞)이 말하기를,

"규(圭)를 잡음에 있어 감내하지 못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공경[敬]하는 마음인 것이니, 일에 임하여 조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굴빛을 경건히 하여 두려워하는 빛을 띠었다는 것은 근엄함을 말한 것인데 이는 바로 범할 수 없는 안색인 것이니, 성인(聖人)의 위용(威容)이 법도에 합치된다는 것을 여기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향례(享禮)에 용색(容色)이 있다는 데 이르러서는 온화한 안색을 말하는 것입니다. 빙문(聘問)하는 예(禮)를 행할 때는 경(敬)이 진실로 주가 되는 것이지만 향례를 할 때를 당하여는 온화한 것이 곧 귀한 것입니다. 그렇게 한 후에야 두 나라의 정지(情志)가 서로 미덥게 되는 것인데 제왕(帝王)이 연석(筵席)에 임하여 아랫사람을 접견(接見)하는 것도 이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임금과 신하 사이는 마땅히 엄(嚴)과 경(敬)을 주로 해야 하지만 또한 반드시 안색을 아름답게 하여 너그러이 용납하는 자세로 대접한 후에야 아뢰는 말에다 자기가 품은 뜻을 다할 수 있고 하정(下情)이 위로 통달될 수 있는 것이니, 이런 등등의 부분에 대해 의당 깊이 유념하기를 더하셔야 합니다."

하고, 검토관 심환지(沈煥之)는 말하기를,

"의복은 자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위의(威儀)를 바르게 하고 덕성(德性)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성인(聖人)은 반드시 이에 대해 근신(謹愼)하였습니다. 면류관(冕旒冠)·보상(黼裳)은 모두 상징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상전(常典)을 어기는 일이 없게 하였으니, 이를 유추(類推)하여 나아가 궁실(宮室)·거처(居處)·여마(輿馬)·기물(器物)에 대해 진실로 혹 사치와 검소의 사이에 실수하게 되면 나라의 치란과 흥망이 여기에서 연유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깊이 유념하소서."

하고, 특진관 김익(金熤)은 말하기를,

"부자(夫子)023) 의 위의(威儀)와 용색이 동작할 적에 반드시 법도(法度)에 맞았던 것은 공경[敬]하는 마음가짐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계시던 자리를 지날 적에는 안색을 경건하게 하였고 임금이 계시는 당(堂)에 올라갈 적에는 숨을 죽였다고 한 것은 처음에 공경하는 것이며, 나와서 계단을 내려서서는 화평한 안색을 지녔다는 것은 중간에 공경이 조금 변한 것이며, 자기의 자리로 돌아와서는 조심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에서는 공경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어 중단된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전하께서도 강관(講官)을 대하여 성경(聖經)을 강하실 적에는 공경심이 반드시 하나로 집결되어 흩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만, 강을 파하고 대내(大內)로 돌아가시기에 이르러서도 능히 남은 공경심이 해이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부자(夫子)께서 시종 공경심으로 일관한 그런 자세는 아닌 것 같으니, 삼가 바라건대 성찰(省察)하여 면려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종묘(宗廟)와 조정(朝廷)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엄숙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데 이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보고 있고 백관들이 우러르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비록 평소 경근(敬謹)에 대해 독실한 공부를 하는 뜻이 없어도 힘쓰지 않고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평소 한가히 혼자 있는 때에 이르러서는 이는 곧 남은 모르고 자기만이 홀로 아는 곳이므로 인정(人情)이 소홀히 하기가 쉬워 점점 방과(放過)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계신(戒愼)하고 공구(恐懼)하는 공부를 반드시 남이 보지 않고 듣지 않을 때 하게 한 것은 대개 이 때문이다. 내가 이에 대해 자신을 돌아보고 경성(警省)하여 비록 한가로이 거처하면서 혼자 있을 때에도 반드시 스스로 점검(點檢)하였기 때문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는 매우 게으르고 거만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마음이 매양 중단되는 걱정이 있게 된 것은 실로 거경(居敬)의 공부와 신독(愼獨)하는 일에 요령을 체득하지 못한 데 연유해서 그런 것이다. 경(卿) 등이 진달한 내용이 과연 모두 절실한 것이니, 마땅히 깊이 유념하도록 하겠다."

하고, 또 말하기를,

"이 편(篇)의 내용은 모두 경(敬)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동정(動靜)이 사의(事宜)에 알맞게 될 경우 알맞게 한다는 그것이 의(義)인데 시중(時中)의 뜻도 또한 그 가운데 들어 있다. 규(圭)를 잡았을 적에 종종 걸음하는 것과 향례(享禮)를 할 적에 화평한 안색을 한 것은 각기 그때그때 합당하게 한 것이니, 여기에서 경(敬)과 의(義)를 함께 지니는 공부를 알 수 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8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戊申/晝講。 講《論語》。 侍讀官南鶴聞曰: "執圭不勝, 敬也, 而可見臨事而懼;勃如戰色, 嚴也, 而乃是不可犯之色。 聖人之威容, 合度於此, 可觀。 至於享禮, 有容色, 言其和也。 方其聘也, 敬固爲主, 而及其享也, 和乃爲貴, 然後兩國情志, 得以交孚。 帝王之臨筵接下, 與此無異。 君臣之間, 當主嚴敬。 而亦必假之顔色, 待以優容, 然後奏語, 能盡其蘊下情, 得以上達。 此等處, 宜加體念。" 檢討官沈煥之曰: "衣服者, 身之章也。 所以正威儀, 而表德性也, 故聖人必謹於此。 冕旒、黼裳, 皆有所象, 而毋踰常典。 推類以往, 則宮室、居處、輿馬、器物, 苟或失於奢儉之間, 則國之治亂、興亡, 未嘗不由。 伏願深念焉。" 特進官金熤曰: "夫子之威儀容色, 動必中節, 敬而已。 過位色勃, 升堂不息, 敬之於始也; 降階色怡, 敬之稍變於中也。 復位踧踖, 可見餘敬猶存, 未嘗間斷。 今殿下對講官講聖經, 則敬必主一無適。 而至於罷講還內, 能有餘敬不解乎? 不然則恐非夫子貫始貫終之敬。 伏願, 省察而加勉。" 上曰: "宗廟、朝廷之上, 人皆有肅敬之心。 此無他, 十目之所瞻, 百官之所仰。 雖無平日之篤工敬謹之意, 不勉而自然。 至於燕居幽獨之時, 卽是人所不知, 而己所獨知之處也, 人情易忽, 漸至放過。 是以戒愼恐懼之工, 必在於不睹、不聞之時者, 蓋以此也。 予於此, 反身警省, 雖在閒居獨處之時, 必自點檢, 幸不至箕踞惰慢之甚。 而此心每患間斷, 實緣居敬之工、愼獨之節, 未得其要而然也。 卿等所陳, 果皆切實。 當體念焉。" 又曰: "此篇, 莫非敬也, 無往非敬, 動靜適宜, 則宜者義也。 時中之義, 亦在其中矣。 執圭縮縮、享禮愉愉, 各當其時。 此可見敬義夾持之工。"


  • 【태백산사고본】 7책 7권 5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87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