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완 옹주에게 벌주라는 신익의 상소
장령 신익(申熤)이 상소하기를,
"아! 저 정처(鄭妻)351) 는 매우 요악(妖惡)한 사람으로 곧 종이 위에 근거없는 말을 지었으나, 지금까지 편히 살아 있게 하였으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지나간 해에 합사(合辭)하여 아뢴 것은 어찌 그리도 오랜 뒤에 하는 것이며, 근일에 복합(伏閤)352) 한 것은 어찌 그리도 늦게 하는 것입니까? 역적을 토죄하는 것은 대의이고, 복합하는 것은 막중한 일이니, 청을 허락받지 않고서는 감히 그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신하의 분의에 있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복합한 지 며칠 만에 한때의 엄한 하교로 인하여 갑자기 인혐(引嫌)하고는 서로 이끌어 패초를 어겼으니, 이를 옛사람이 피를 내뿜고 머리를 으깨었던 의리에 견주어 과연 어떠합니까?
대저 정처를 섬에다 안치(安置)시키라는 명을 내린 후에 이르러서도 다시 옛 습관을 답습하여 등전(謄傳)을 일삼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오늘날 삼사(三司)에서는 또한 이 율로 처분한 것을 가지고 징토(懲討)가 대략 행해지고 왕장(王章)이 대략 시행되었다고 여겨 복합하고 정쟁(廷爭)하는 데 대해 일삼을 것이 없다고 여겨서 그러한 것입니까? 이런 의리에 대해서는 신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데도 나라에 삼사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작년에 역적 이찬(李襸)을 토죄할 적에는 삼사에서 복합하고 대신이 정청(庭請)하자, 속히 천심(天心)을 돌이켜 마침내 왕장을 시행하였으니, 그때는 나라에 대신이 있고 삼사가 있다고 할 만했었습니다. 정처에 이르러서는 삼사의 복합 또한 늦었다고 할 수 있는데, 잠시 거행했다가 곧 중지하여 조정의 체통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개연(慨然)스럽고 한심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신은 삼사에게 위임한 채 세월만 헛되이 보내고 있으니, 마침내 동료를 이끌고 정청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대신은 곧 지난날 찬을 토죄하던 대신이고, 지금의 정처는 곧 지난날 역적 찬의 와굴이요 근원인데, 전후로 목욕(沐浴)하고 토죄하는 의리353) 가 이토록 큰 차이가 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요악한 변괴가 갑작스럽고 급박했던 처음에는 충분(忠憤)과 의용(義勇)이 충발(衝發)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다가, 급했던 근심이 잠시 진정된 뒤에는 비록 역적이 정처와 같고 원수가 정처와 같다 하더라도 용납하여 늦출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의리에 대해서는 신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데도 나라에 대신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오늘날의 대신과 삼사에게 속히 견파(譴罷)시키는 법전을 시행하여 조정의 기강을 면려시키는 것을 결단코 그만둘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처분하였을 때의 하교에서 유시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4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註 351]정처(鄭妻) : 정치달(鄭致達)의 아내인 화완 옹주.
- [註 352]
복합(伏閤) :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조신(朝臣) 또는 유생(儒生)들이 대궐문 밖에 이르러 상소하고 임금의 재가(裁可)가 날 때까지 엎드려 청하던 일.- [註 353]
토죄하는 의리 :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진성자(陳成子)가 제(齊)나라 간공(簡公)을 시해(弑害)하니, 공자(孔子)가 목욕하고 노(魯)나라 애공(哀公)에게 고하기를, "진항(陳恒)이 그 임금을 시해했으니, 토주(討誅)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한 것을 말함. 곧 악(惡)을 고발하여 시비(是非)를 가리는 정신을 말함.○掌令申燿上疏曰:
噫! 彼鄭妻之千妖萬惡, 便作紙上空言。 使之, 至于今, 假息自在者。 天下寧有是耶? 經年合辭之啓何其久也;近日伏閤之擧, 何其晩也? 討逆, 大義也; 伏閤, 重擧也。 不得請, 則不敢止, 乃是臣分之當然。 而伏閤日, 因一時嚴敎, 遽然引嫌, 相率違牌者。 視古人沫血碎首之義, 果何如哉? 及夫鄭妻島置命下之後, 復蹈故常, 謄傳爲事。 未知今日三司, 抑以此律處分, 謂之懲討, 略行王章, 粗伸無所事於守閤廷爭而然耶? 此等義理, 臣所未解。 如是而其可曰國有三司乎? 昨年逆禶之討也, 三司伏閤, 大臣庭請, 亟回天心, 終伸王章。 其時, 則可謂國有大臣、三司矣? 至於鄭妻, 則三司伏閤, 亦云後時。 而乍擧旋止, 不成朝體也。 已不勝其慨然寒心。 而大臣, 則委之三司, 玩愒時日。 率僚庭籲, 迄玆無聞。 今之大臣, 卽向日討禶之大臣也。 今之鄭妻, 卽向日逆禶之窩窟、根柢, 而前後沐浴之義, 若是其逕庭何也? 無乃妖變猝迫之初, 忠憤義勇, 自不覺其衝發, 而急憂乍定之後, 雖逆如鄭妻, 讎如鄭妻, 而容有可緩而然耶? 此等義理, 臣所未解。 如是而其可曰: ‘國有大臣乎?’ 臣謂今日大臣、三司, 亟施譴罷之典。 以勵朝綱, 斷不可已也
批曰: "已諭於處分爾之敎矣。"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5책 41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註 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