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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6권, 정조 2년 7월 11일 무술 1번째기사 1778년 청 건륭(乾隆) 43년

영종의 초상화를 영희전 제5실에 봉안하다

영종(英宗)의 어진(御眞)을 영희전 제5실에 봉안하였다. 임금이 원유관(遠遊冠)에 강사포(絳紗袍)를 갖추고 여(輿)를 타고 선화문(宣化門)으로 나아가서 선원전(璿源殿)에 들어가 사배례(四拜禮)를 행하였다. 도로 만안문(萬安門) 밖의 소차(小次)에 나아가 면복(冕服)으로 고쳐 입고 선원전의 제2실로 올라 나아가 갑자년349) 의 어진(御眞)인 면복본(冕服本)을 신여(神轝)에 봉안하고, 양지당(養志堂)에 나아가 어진을 받들어 신탑(神榻) 위에 봉안하였다. 임금이 탑전(榻前)에 나아가 손수 받들어 편 다음 작헌례(酌獻禮)를 행하였다. 도로 소차에 나아가 원유관에 강사포를 고쳐 입고 양지당에 나아가 어진궤(御眞櫃)를 신여(神轝)에 봉안하니, 도감(都監)의 당상과 낭청이 신여를 모시고 만안문으로 나아가 신련(神輦)에 옮겨 봉안하고 인정문(仁政門)을 거쳐 나갔다. 임금이 걸어서 인정전 월대(月臺) 아래에 나아가 여(輿)를 타고, 인정문을 나가서 여에서 내려 연(輦)을 탔다. 돈화문(敦化門)을 거쳐 영희전에 나아가 홍살문 밖에서 연에서 내려 여를 탔다. 재전(齋殿)에 들어가서 면복(冕服)으로 고쳐 입고 신문(神門) 밖에 나아가 사배례를 행하였다. 전(殿) 안으로 나아가니, 김상철(金尙喆) 등이 어진을 제5실에 봉안하였다. 작헌례를 행하고 환궁(還宮)하였다. 도감의 당상과 낭청에게 차등 있게 시상(施賞)하였으며, 대축(大祝) 윤숙(尹塾)·이진형(李鎭衡)에게는 가자(加資)하였다. 이조에서 윤숙은 준직(準職)을 거치지 않았다고 아뢰었으나, 특별히 가자하도록 명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4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

○戊戌/奉英宗御眞于永禧殿第五室。 上具遠遊冠、絳紗袍, 乘輿出宣化門, 詣璿源殿, 行四拜禮。 還諸萬安門外小次, 改具冕服, 陞詣(濬源殿)〔璿源殿〕 第二室, 奉甲子年御眞冕服本, 奉安于神轝。 詣養志堂, 奉御眞安于神榻上。 上進詣榻前, 手自奉展訖, 行酌獻禮, 訖。 還詣小次, 改具遠遊冠、絳紗袍, 詣養志堂, 奉御眞櫃于神轝。 都監堂、郞, 陪神轝出萬安門, 移奉于神輦, 由仁政門出。 上步詣仁政殿 月臺下, 乘輿, 出仁政門降輿, 乘輦由敦化門, 詣永禧殿紅箭門外, 降輦, 乘輿入齋殿, 改具冕服, 詣門外, 行四拜禮, 詣殿內。 尙喆等奉安御眞于第五室, 行酌獻禮還宮。 賞都監堂ㆍ郞有差。 大祝尹塾李鎭衡加資。 吏曹以尹塾未經準職啓, 特命加資。


  • 【태백산사고본】 6책 6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41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사(宗社)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