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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5권, 정조 2년 5월 2일 신유 3번째기사 1778년 청 건륭(乾隆) 43년

빈어를 간택하라고 명하다

빈어(嬪御)를 간택하라고 명하였다. 백관(百官)이 인정전(仁政殿) 동쪽 뜰로 나아가 장차 자전(慈殿)에게 하의(賀儀)를 거행하려고 하는데, 왕대비(王大妃)가 대신들에게 언서(諺書)를 내리기를,

"이 미망인(未亡人)의 모진 목숨이 오늘날에 이르도록 구차하게 살아있다가 참아 부묘(祔廟)하는 예의(禮儀)가 고성(告成)함을 보고나니 다만 창통(愴慟)하여 허전한 마음이 있게 될 뿐입니다. 다만 국가의 더없이 중요하고 더없이 큰일이라 언사(言辭)가 지루하고 번거롭게 되는 것도 고려할 겨를이 없게 되어 이처럼 경(卿)들에게 언교(諺敎)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아! 4백년이 된 종사(宗社)의 의탁이 오직 주상(主上)의 몸 하나에 달려있는데, 춘추(春秋)가 거의 30에 가까워졌는데도 지금까지 오히려 종사(螽斯)274) 의 경사(慶事)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선대왕(先大王)께서도 매양 낮이나 밤이나 근심하고 염려하시던 것을 곧 평소에 일찍이 앙도(仰覩)해 오던 일로서, 오직 양암(諒闇)275) 뒤에나 거의 기대하고 있는 마음에 맞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중전(中殿)에게 병이 생기어 사속(嗣續)에 있어서 이제는 가망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 미망인이나 혜경궁(惠慶宮)의 뜻이 오로지 저사(儲嗣)를 널리 구하는 일에 있는데, 오늘날 주상의 신자(臣子)된 사람들이 누군들 이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주상도 또한 이를 이해(理解)하기는 합니다마는, 특별히 관심(關心)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대궐 안에 있는 궁인(宮人)을 어찌 많지 않다고 하겠습니까마는, 주상의 본래부터의 성념(聖念)이 미천(微賤)한 처지의 사람에게서는 마음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고 보면 당면한 지금의 도리가 옛날 사람들이 하던 의리대로 본받고 우리 국조(國朝)의 고사대로 준수(遵守)하여, 사족(士族)들 중에서 유한 정정(幽閑貞靜)한 처자(處子)를 간택(揀擇)하여 빈어(嬪御)의 자리에 있게 한다면, 삼종(三宗)의 혈통(血統)을 이어가게 되는 방도가 오직 이에 달려 있게 될 것입니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미망인이 조정에 언교(諺敎)를 내리는 일은 도리어 떠벌리게 되는 것이어서 더없이 미안스럽게 됨을 알고 있지마는, 이 사항이 매우 큰 것인데다가 소망(所望)이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을 넘기지 아니하고 이처럼 누누(縷縷)한 말을 하여, 대전(大殿)께서 환궁(還宮)하여 열람을 거치길 기다렸다가 봉(封)해서 계하(啓下)하여 경(卿)들이 보도록 한 것입니다. 아! 이 미망인이 선왕(先王)의 덕택을 보답할 길도 없고, 주상의 성효(誠孝)에 보답할 길도 없습니다. 이 한 가지 일을 가지고 국가의 억만년 근본이 되게 하고 싶으니, 경들이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4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註 274]
    종사(螽斯) : 《시경》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편명. 후비(后妃)의 덕으로 자손이 많다는 것을 노래한 것임.
  • [註 275]
    양암(諒闇) : 임금의 거상(居喪).

○命揀嬪御百官。 就仁政東庭, 將行慈殿賀儀。 王大妃下諺書于大臣曰:

未亡人冥頑苟存, 以至于今, 忍見祔廟禮成, 只有廓然愴慟之心而已。 第於國家莫重莫大之事, 言辭之支煩, 有不暇顧, 玆下諺敎于卿等。 嗚呼! 四百年宗社之托, 惟在主上一身。 而春秋幾近三十, 螽斯之慶, 尙今晼晩。 先大王每以晝夜憂念, 卽平日所嘗仰覩者, 惟俟諒闇之後, 庶幾副朞望之心, 不幸中殿有疾恙, 至於嗣續, 今無可望矣。 未亡人與惠慶宮之意, 專在於廣求儲嗣。 爲今日主上臣子者, 孰無此心乎? 主上亦已諒此, 特不關念。 而闕內宮人, 豈曰不多, 主上本來之聖念, 至於微賤處, 不欲其有。 然則, 卽今道理, 倣古人之義理, 遵我朝之故事, 揀擇士族中幽閑之處子, 置諸嬪御, 則續三宗血脈之道, 惟在於此。 卿等以爲如何? 未亡人下諺敎於朝廷, 還涉張大, 極知不安, 而其事甚大, 所望甚重。 故不踰今日, 如是縷縷, 待大殿還宮, 經覽而封下, 使卿等見之。 嗚呼! 未亡人無以報先王之德澤, 無以答主上之誠孝。 欲以此一事, 爲國家億萬世根本, 卿等可諒之。


  • 【태백산사고본】 5책 5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45책 24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