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간 유당이 대신들을 논핵하고 여러 의견을 진달하다
대사간 유당(柳戇)이 아뢰기를,
"민항렬(閔恒烈)과 이선해(李善海)의 형제와 자질(子姪)들이 버젓이 집에서 평상인(平常人)과 다름없이 살고 있고, 정일겸(鄭日謙)은 정후겸(鄭厚謙)의 형으로서 버젓이 가까운 교외(郊外)에 살고 있는데다가 관작(官爵)도 회수되지 않고 있어, 역적들을 다스림이 준엄하지도 못하고 방한(防限)이 너무도 허술해지고 있습니다. 청컨대, 민항렬·이선해의 지속(支屬)들은 분산하여 정배(定配)하고 정일겸 형제는 모두 절도(絶島)에 던져 두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뢴 말이 비록 옳기는 하지마는 귀양보내는 사람이 많게 되는 것도 또한 민망스러운 일이다."
하였다. 또 계청하기를,
"박중근(朴重根)·이이영(李彛永)·이동이(李同伊)의 사형을 감하도록 명하신 것을 도로 중지하시고 율(律)대로 처단하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또 아뢰기를,
"한만유(韓晩裕)는 박재원(朴在源)과 다같이 잘못이 있었으니, 청컨대 한만유에게 서용(敍用)하지 않는 법을 시행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요사이 인혐(引嫌)하는 길이 크게 넓어져, 정연순(鄭淵淳)과 정우순(鄭宇淳)은 재종 형제(再從兄弟)임을 들어 동료(同僚)가 됨을 인피(引避)하였고, 유의(柳誼)는 신(臣)과 팔촌 조손(八寸祖孫)임을 들어 억지로 전례를 인용(引用)하는 짓을 했으니, 정연순 형제와 유의를 추고(推考)하소서. 우리 나라의 제도가 상피(相避) 이외에는 감히 인혐(引嫌)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 영구히 정식(定式)으로 삼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빈대(賓對)는 큰 조회(朝會)입니다마는 대신이나 여러 신하들이 더러는 곁에서 초설(勦說)394) 하는 짓의 폐단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여러 신하들이 일을 아뢰게 될 적에 모두 자리를 옮기어 탑전(榻前)으로 나아가 아뢰게 하여 조정의 체통이 엄격해지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우리 성사께서 총명하신 예지(睿知)가 높이 백왕(百王)들 보다 뛰어나시기에 군신(羣臣)들이 성상의 마음에 합당하게 될 사람이 적기는 합니다마는, 이로 말미암아 자체가 높아지며 신하들을 낮게 여겨버림을 면하지 못하게 되어, 경연(經筵)에서의 진강(進講)이 전연 없게 되거나 겨우 있게 되고, 있다 해도 또한 형식에 따라 수만 갖추게 되어, 경서(經書)를 인용하거나 사기(史記)에 의거하거나 하여 감발(感發)시키거나 징창(懲創)시키는 공부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생각하건대, 우리 영종 대왕(英宗大王)께서는 갑진년395) 의 인산(因山) 이전에 있어서도 아침과 낮의 소대(召對)를 폐하지 않으셨고, 권근(倦勤)396) 의 나이에도 한 달에 세 차례씩의 강연(講筵)을 더욱 힘쓰시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춘추(春秋)가 정성(鼎盛)하신 때이고 또한 심묵(深墨)397) 의 날과 다른 참이겠습니까? 하물며 겨울밤이 바야흐로 길어진 때가 되어 전일한 기운이 매우 정신이 나는 참이니, 청컨대 날마다 근밀(近密)하게 논사(論思)하는 신하들을 접하시어 치란(治亂)에 관해 토론하고 시정(時政)에 관해 자문(咨問)하시되, 그 안색을 온화하게 하고 예수(禮數)를 간편하게 하여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바를 다 말하게 되도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뢴 말이 매우 절실(切實)하고 합당한 것이므로, 마땅히 깊이 유념(留念)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승상 제초(陞庠製抄)를 근년 이래로는 모두 격식에 맞게 하지 아니하여 봄과 가을에는 한번도 시사(試士)를 하지 않고 깊은 겨울에는 날마다 시험장을 차리고 있어 너무도 입법(立法)한 본뜻이 아니게 되고 있습니다. 청컨대, 이제부터는 정월부터 달마다 한 차례씩의 초를 설행하여 연말까지 12차례의 초에 이르는데, 획수(畵數) 계산도 그 달에 설행하지 않았으면 초(抄)를 삭제하고, 상제(庠製)도 4등(等)으로 배분(配分)하여 10인씩을 뽑고, 등 이외의 것에 있어서는 상제(庠製)에서 삭제해 버리기를 승초법(陞抄法)처럼 하고, 문체(文體)에 있어서도 활달한 것을 취하고 험벽(險僻)한 것은 금단하고 글씨도 대필(代筆)은 금해야 합니다. 국자(國子)의 장관과 사학(四學)의 교수(敎授)를 극도로 가리어 공도(公道)를 넓히어 가고 선비들의 추향(趨向)을 바로잡아 가도록 하되, 국가 초기(初期)에 매달 세 차례씩 강(講)하던 옛 제도에 의하여 국자의 장관이 한 순(旬)마다 명륜당(明倫堂)에 강연(講筵)을 열고 경사(經史)에 우월한 사람을 연말에는 조정에 신고하게 하여, 다사(多士)들이 격려(激勵)되게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뢴 말이 또한 매우 절실한 것이므로, 이를 따로 본관(本館)에 신칙하겠다."
하였다. 또 계청하기를,
"동래(東萊)의 별기위(別騎衛) 출신(出身)들을 서북(西北)의 사례대로 말천(末薦)에 넣도록 허급해 주어 무사(武士)들이 위로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계청하기를,
"동래(東萊)와 기장(機張) 두 고을에 정배(定配)한 죄인들을 다른 먼 고을에 이속(移屬)하고 다시는 발배(發配)하지 말도록 하여, 변방 사정을 누설하는 폐단을 막게 하소서."
하니, 대신들에게 물으매, 대신들이 말하기를,
"동래부(東萊府)의 9아문(衙門)이 조적(糶糴)을 과다하게 하므로 민생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데, 통영(統營)에서 세우는 본전(本錢)이 해마다 수천 꿰미에 밑돌지 않고 싼 값에 강제로 사들여, 수로(水路)로 수백 리 밖에서 운반해다 바치게 되므로, 본진(本鎭)의 민생들이 이산(離散)하게 되어 이로 인한 폐단이 더욱 심하니, 청컨대 이제부터는 이를 방지하여 남쪽 사람들이 지탱하여 보존해 가도록 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아뢴 말이 옳으니 이대로 준엄하게 신칙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5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704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재정-국용(國用)
- [註 394]초설(勦說) : 남의 학설(學說)이나 시문(詩文)을 표절하여 자기의 것으로 함.
- [註 395]
○大司諫柳戇啓言: "恒烈、善海之兄弟子姪, 晏然在家, 無異平人, 日謙以厚謙之兄, 偃處近郊, 官爵不收, 治逆不嚴, 防限太踈。 請恒、善支屬散配, 日謙兄弟, 竝投絶島。" 批曰: "所啓雖是, 竄配之多, 亦可悶矣。" 又啓請: "還寢朴重根、李彛永、李同伊減死之命, 依律處斷。" 不允。 又啓言: "韓晩裕與朴在源同有是失, 請晩裕施以不敍之典。" 從之。 又啓言: "近來嫌路大廣, 鄭淵淳、宇淳以再從兄弟, 引避於作僚, 柳誼與臣八寸祖孫, 而强引前例, 請淵淳兄弟及誼推考。 國制相避外無敢引嫌, 永爲定式。" 從之。 又啓言: "賓對大朝會也, 大臣諸臣, 或有從傍勦說之弊。 從今諸臣有奏事, 皆令移席進前而奏, 以嚴朝體。" 從之。 又啓言: "我聖上聰明睿智, 高出百王, 群臣少能當聖心者, 由是而不能免自亢而低視, 經筵之講絶無而僅有, 有亦應文備數, 無引經據史感發懲創之功。 惟我英宗大王, 當甲辰因山之前, 不廢朝晝之召對, 倦勤之年, 尤勉月三之講筵。 今殿下春秋鼎盛, 又異深墨之日? 況當冬夜方永, 一氣孔神, 請日接近密論思之臣, 討論治亂, 詢咨時政, 和其顔色, 簡其禮數, 使人人得盡所懷。" 批曰: "所啓甚切當, 當體念矣。" 又啓曰: "陞庠製抄, 挽近以來, 竝不中式, 春秋則一不試士, 深冬則逐日設場, 甚非立法之本意。 請從今自正月每設一抄, 至歲終十二抄, 而計劃當月不設者削其抄, 庠製分四等取十人, 踰等削製如陞抄法, 文體取其紆餘, 禁其險僻, 書禁倩筆。 極選國子長四敎授, 恢公道而正士趨, 依國初月三講故制, 國子長每旬開講於明倫堂, 經史優異者歲終告于朝, 以勵多士。" 批曰: "所啓亦甚切實, 以此另飭本館。" 又啓請: "東萊別騎衛出身, 依西北例, 許副末薦, 以慰武士。" 從之。 又啓請: "東萊、機張兩邑定配罪人, 移屬遠邑, 更勿發配, 以防漏洩邊情之弊。" 問于大臣, 大臣曰: "臺臣言是也。" 從之。 又啓言: "萊府九衙門糶糴過多, 民不堪苦, 而統營立本錢, 歲不下屢千緡, 賤價勒買, 運納於水路數百里外, 鎭民離散, 此弊尤甚。 請從今防塞, 俾南人支保。" 批曰: "所奏是矣, 以此嚴飭。"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5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704면
- 【분류】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관리(管理)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 사법-행형(行刑) /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재정-국용(國用)
- [註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