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의 토죄를 반교하다
반교(頒敎)하기를,
"임금은 말한다. 오직 부덕(不德)한 내가 외람하게도 큰 기업(基業)을 이어받았는데, 지난번 새롭게 사복(嗣服)한 이래로 덕화(德化)는 하나도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한갓 주벌(誅罰)만 거듭 행해짐을 보았다. 아! 이는 어찌 내가 마음에 하고 싶어 한 바이었겠는가? 더없이 준엄한 것은 천토(天討)이고 더없이 중요한 것은 종사(宗社)인 것이다. 나 한 사람이 어찌 감히 내 뜻을 가지고 참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아! 국가가 불행히도 매우 간난(艱難)한 때를 만나 변란의 근본이 척리(戚里)에서 일어나고 역적의 도당(徒黨)이 거의 세신(世臣)에까지 펼치게 되었다. 이번의 역변(逆變)에 이르러서는 극히 지난날의 역사에 있지 않던 흉악한 일이었는데, 다행히도 황천(皇天)과 조종(祖宗)들의 말없이 도우심을 힘입어, 한밤 궁성(宮城)에 들어온 그들의 수족(手足)이 이미 실패하게 되었고, 10일 동안에 장전(帳殿)에서는 그들의 골속이 자연히 드러나게 되어 죄인을 이에 얻어 왕법(王法)대로 거행했다. 이런 유신(維新)의 기회에 당하여 어찌 징비(懲毖)314) 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고(大誥)를 크게 선포하게 된 것이니 분명하게 들어 보고 떠들지 말기 바란다. 아! 척리(戚里)들의 화심(禍心)은 생각하노라면 마음이 써늘해진다. 간사한 논을 주장하고 의리(義理)를 농간하여, 모름지기 충년(沖年)의 나를 위협해 온 것도 이 무리들이고, 유언 비어를 조작하여 듣는 이를 현혹시키면서 나의 잠덕(潛德)을 어둡게 만든 것도 이 무리들이고, 동정(動靜)을 엿보고 기회(機會)를 노리는 짓을 하여 나의 저위(儲位)를 흔들어 버리려고 한 것도 이 무리들이고, 성명(成命)이 여러 차례 내리었는데도 이에 감히 흉계(凶計)를 부리어 대리 청정(代理聽政)을 막으려고 한 것도 또한 이 무리들이고, 국가의 대책(大策)이 이미 정해졌는데도 기필코 우익(羽翼)을 제거하는 짓을 하여 번복(飜覆)하는 계제(階梯)를 만들려고 했었던 것도 또한 이 무리들이었다. 대개 간사한 논을 써먹지 못하게 되면서는 유언 비어가 생기기 시작했고, 따라서 대저 청정한 전후에는 안팎에서 반역하는 짓을 해 왔었다. 아! 정후겸(鄭厚謙)은 그의 어미를 끼고서 요망한 짓을 선동(煽動)하고, 홍인한(洪麟漢)은 그의 형을 의지하여 흉계를 부리기에 당하여 국가가 멸망하게 되지 않은 것만 해도 요행이었다. 만일에 선대왕(先大王)의 인자(仁慈)에 입각(立脚)한 덕이 천지처럼 부재(覆載)해 주고 일월처럼 비추어 주지 않았다면, 한 사람인 내가 오늘날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내가 사복(嗣服)하여 대강이나마 징토(懲討)를 거행하게 되면서는, 내가 천심(天心)은 호생(好生)하는 것임을 생각하여 차마 남김없이 진멸(殄滅)해 버릴 수 없기에, 그 도당(徒黨)에 있어서는 협종(脅從)한 것으로 돌리고 그 근맥(根脈)에 있어서는 유사(類似)하게 된 것으로 처치하여, 유찬(流竄) 등 가벼운 법을 시행하며 되도록 반측(反測)한 자들이 스스로 안정되게 하였고, 또한 사람은 각각 사람다운 마음을 지닌 것이기에 거의 감격(感激)하게 하는 방도가 있는 것으로 여기어, 윤음(綸音)을 내리어 효유하기도 하고 유서(諭書)를 만들어 밝히기도 하였음은, 모두가 그 무리들을 위해 살길을 열어 주려는 것이었는데, 유독 어찌하여 올빼미같은 소리를 고치지도 않고 이리같은 마음을 더욱 다급하게 먹고서, 거듭 깨우쳐 주는 것은 나에게 들은 채도 않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은 나의 은덕으로 여기지도 않아, 스스로 궁구(窮寇)로 치며 죽기를 한하고 각승(角勝)하는 짓을 해 왔었다. 그제는 7월 28일의 변란(變亂)을 일으키어 비수(匕首)를 낀 전흥문(田興文)과 철편(鐵鞭)을 지닌 강용휘(姜龍輝)가 깊은 밤에 대내(大內)로 들어와 궁전(宮殿)의 용마루에서 멋대로 놀게 되고, 또한 대궐 밑에는 장사(壯士) 50명을 잠복(潛伏)해 놓고서 성패(成敗)를 관망(觀望)하게 한 짓은 모두가 홍상범(洪相範)이 사람을 모집하여 한 짓이다. 더러는 기와를 뒤집으며 기회를 엿보다 더러는 돈을 부리어 종적(蹤跡)을 현혹하다 하며 도깨비를 가장하다가 가만히 우거진 풀 속에 숨는 짓을 했으니, 그 흉계를 부림이 또한 교활했거니와, 겨우 1순(旬)이 넘어서는 감히 재차 거사(擧事)하기를 도모하여 바야흐로 궁궐 담장를 넘으려는 참에 그만 좌경(坐更)하는 병졸(兵卒)에게 잡히게 되었으니, 참으로 하늘을 속일 수 없게 되고 귀신(鬼神)들이 다 나서서 베이게 된 일이다. 몰래 길목을 인도한 일은 강월혜(姜月惠)가 강계창(姜繼昌)에게 호응한 일이었고, 가만히 주액(肘腋)315) 을 엿보기 위해서는 최세복(崔世福)과 김수대(金壽大)를 배치해 놓았었다. 이외에도 액속(掖屬)과 궁녀(宮女)들이 관계를 두어 내통한 것과 문객(門客)·시예(厮隷)들이 간련(干連)되어 있는 것은 비록 그 유가 많기는 하지만 어찌 하나하나 들 것 있겠는가? 효임(孝任)은 홍상범(洪相範)의 어미이고 홍술해(洪述海)의 아내로서 그의 첩 개련(介連)과 함께 요망한 비녀(婢女)를 지휘하고 역적의 무당과 결탁하여, 화상을 그리어 화살을 매달고 부적(符籍)을 써서 저주(詛呪)하는 짓을 하여 감히 암암리(暗暗裡)에 석천(射天)하는 계획을 하되, 드디어 안위(安危)를 같이 해 온 하나의 신하에게까지 미쳤었다. 아! 임금을 원수진 것으로 여기어 신하에게까지 미치게 된 것이니, 나의 신하 노릇 하기도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홍계능(洪啓能)은 또한 홍신해(洪信海)·홍이해(洪履海)·홍상길(洪相吉)·홍상격(洪相格)·민홍섭(閔弘燮)·이택수(李澤遂) 등과 함께 멋대로 태갑 동궁(太甲桐宮)과 계해 반정(癸亥反正)의 관한 말을 하며 추대(推戴)하려는 데가 있었는데, 의구(疑懼)를 제거하여 또한 안정되게 했다. 민홍섭과 이택수는 본래 민항열(閔恒烈)과 홍인한(洪麟漢)의 지친(至親)으로서 그전부터 홍계능(洪啓能)의 문도(門徒)가 되어 장두(腸肚)가 연결되어 온 것을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도성(都城) 안에 버젓이 살고 있는 것만도 그에 있어서는 또한 다행한 일이건만, 제 스스로 세상에 용납되지 못할 것을 알고서 그만 도리어 반역하기를 달갑게 여긴 것이다. 아! 신자(臣子)가 된 사람으로서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살면서 오히려 이런 짓을 마음속에 싹트게 하고 입으로 발론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삼악도(三惡塗)를 합하여 하나의 반역을 함께 한 것은 천고(千古)의 일을 모아 보아도 이처럼 악독을 남길 수는 없었으니, 아! 또한 흉악한 일이었다. 아! 내가 이에 있어서 또한 차마 말할 수 없는 바가 있다. 주공(周公)의 치효(鴟鴞)란 시는 새끼를 빼앗기고 집을 부수어 버리는 비유로 천재(千載) 이후에도 읽어 보노라면 오히려 비애가 남아돌고 있다. 어찌 내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 이찬(李禶)의 어둡고 어리석은 몸이 무엇을 알고 있었겠느냐마는, 국가에는 지극히 준엄하게 된 삼척(三尺)316) 이 있고, 대궐을 지키는 많은 사람의 입을 막을 수가 없어, 고로 여생(孤露餘生)인 나의 친애(親愛)하는 사은(私恩)을 펴게 되지 못했다. 아! 여러 역적들의 핑계하는 말만 없었다면 무릇 어찌 내가 이에 이르게 되었겠는가? 대저 이번 옥사(獄事)의 수범(首犯)·종범(從犯)들은 역적들의 가문(家門)에서 감싸서 키워 놓은 것이어서 홍상범(洪相範)·홍상길(洪相吉)·홍상격(洪相格)·홍지해(洪趾海)·홍술해(洪述海)·홍찬해(洪纘海) 등 제적(諸賊)들은 바로 한 가문의 효경(梟獍)들로서 그런 씨에서 그런 종자가 나오게 되어진 것이다. 홍상간(洪相簡)이 이미 복주(伏誅)한 뒤부터 위곡(委曲)하게 용서해 준 은전(恩典)은 생각하지 않고서 도리어 원수로 여기는 마음을 품고 음밀한 도모는 멀리 관해(關海)에까지 서로 통하고 반역하는 음모가 심지어 부녀에게까지 미쳤었으니, 아! 옛적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가? 저 홍계능(洪啓能)이란 자는 명색이 독서(讀書)한 사람으로 일찍이 터무니없는 명예를 차지했는데, 그 근본은 하나의 천지 사이에 못된 기운이 모여진 사람이다. 그는 탐음(貪淫)하고 방종하여 행동이 마치 도척(盜跖)317) 과 장교(莊蹻)의 실체와 같으므로 세상의 공론이 있게 되었기에 내가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거니와, 앞서 역(逆)과 순(順)이 대립하게 되던 날에 흉악한 무리가 설계하여 일을 도모해 가려는 자가 기필코 유명(儒名)을 훔치려 하고 도당(徒黨)을 모은 자들이, 간사한 말을 고취(鼓吹)하여 주창하며 의리(義理)로 가장하여 온 세상을 속이고 현혹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搖動)시킨 다음에야 비로소 하고 싶은 바를 할 수 있게 될 적에, 홍계능이 그제서야 산림(山林)이란 표방(標榜) 아래 몸을 돌리어 엉금엉금 기어가 뭇 흉도(凶徒)들과 연횡(連衡)하였고, 날마다 그의 성명(姓名)이 궁금(宮禁)의 좌우에 들려오게 되었다. 내가 다행히도 일찍 변별(辨別)했었기에 그의 술책 속에 빠지지 않게 되었거니와, 대북(大北)을 추숭(追崇)하려 한 논과 번복(飜覆)을 저지하려한 흉계도 그가 손바닥을 치다 눈썹을 쳐들다 하는 나머지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의 흉계와 음모가 크게 어그러지고 도당(徒黨)들이 일체로 실패하여 와굴(窩窟)로 믿어 오던 바가 차례로 흔들리고 노출(露出)됨에 당하여는 의구(疑懼)가 속에 쌓이고 돌아갈 데가 없이 궁지에 몰리게 되므로, 평소에 음해(陰害)하기 좋아하던 성질에다 뜻을 잃고서 원망하던 마음을 끼고서 드디어 폐치(廢置)된 요얼(妖孼)들의 남은 무리와 함께 추대(推戴)하고 찬탈(簒奪)하는 음모를 주창했던 것이다. 이는 단지 홍상길(洪相吉)·이택수(李澤遂) 등 제적(諸賊)들의 공초(供招)에만 여출일구(如出一口)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의 공초한 내용에도 ‘빨리 내다 베이라.’고 한 말은 곧 은연(隱然)히 ‘살신 순절(殺身殉節)’하는 사람의 어법(語法)을 쓴 것이고, ‘비록 남다르게 반역 모의를 하기는 했지만 적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갑자기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이냐?’는 말은 곧 면전(面前)에서 승여(乘輿)를 우롱하는 업신여기는 말을 한 것이니, 함부로 하는 말이 역적의 마음 속에서 흘러 나오게 된 것 아님이 없음을 이에 있어서 볼 수 있다. 《서전(書傳)》을 펼쳐 놓고 태갑편(太甲篇)의 글 뜻을 강론했다.’고 한 공술은 바로 하나의 결안(結案)이 되는 것인데, 미처 정법(正法)하게 되기 전에 앞질러 먼저 물고(物故)하였으니, 통탄스러움을 견딜 수 있는 일이겠는가? 아! 앞서의 역적을 막 평정(平定)하고 나자 다음의 역적이 뒷따라 나오게 되고, 와굴(窩窟)이 이미 소탕되었으리라 여기고 나면 또 새 소굴이 터지게 되어, 장차 국운이 평탄하다 기울어지다 하게 되었으니, 내가 마침 불행한 때를 만난 것이겠는가? 아니면 반란의 근본은 뽑지 않고 지엽(枝葉)만 잘라 멈추게 하여서인가? 지금 주왕(周王)318) 처럼 택휼(宅恤)하는 날을 당하였고 매양 노후(魯侯)319) 처럼 임융(臨戎)하는 체례(體例)를 쓰게 되었기에 내가 진실로 이에 마음이 아프게 여겼을 뿐이다. 역적 전흥문(田興文)·강용휘(姜龍輝)·홍상범(洪相範)·홍상길(洪相吉)·홍상격(洪相格)·최세복(崔世福)·감정(甘丁)·정이(貞伊)·김흥조(金興祚)·효임(孝任)·개련(介連)·홍술해(洪述海)·홍지해(洪趾海)·홍찬해(洪纘海)·김수대(金壽大)·이택수(李澤遂)·홍신덕(洪信德) 등은 율(律)대로 정법(正法)하고, 홍계능(洪啓能)은 이미 승복(承服)하고서 앞질러 죽어 버려 미처 정법하게 되지 못하였고, 이찬(李禶)은 자진(自盡)하도록 하였으며, 박해근(朴海根)·지종수(池宗洙)·안국래(安國來)·조성(趙峸)·이수채(李受采)·홍신해(洪信海)·홍이해(洪履海)·윤태연(尹泰淵) 등은 형장(刑杖) 아래 죽었고, 민홍섭(閔弘燮)은 또한 관작을 추탈(追奪)하는 율(律)을 시행했다. 난역(亂逆)들을 제거하여 이미 신명(神明)과 사람들의 분개를 풀어 주게 되었고 허물을 탕척(蕩滌)해 냈으니, 어찌 새로운 혜택이 흘러 내림을 아끼겠는가? 매상(昧爽) 이전의 잡범(雜犯)인 사죄(死罪) 이하의 것은 모두 용서하여 면제해 주라…. 아! 오늘 이후부터는 역(逆)과 순(順)이 더욱 분명해지고 국시(國是)가 크게 정해졌으니, 모든 신서(臣庶)들은 오히려 향배(向背)에 있어 미혹(迷惑)되지 말고 우리 국가와 함께 영구히 태평을 누리기를 기할지어다. 그래서 이렇게 교시(敎示)하노니 마땅히 잘 알았으리라 여긴다."
하였다. 【예문관 제학 김종수(金鍾秀)가 지어 올린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695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14]징비(懲毖) : 전에 잘못을 뉘우쳐 삼감.
- [註 315]
주액(肘腋) : 아주 가까움의 비유.- [註 316]
삼척(三尺) : 예전에 석자 되는 죽간(竹簡)에 법률을 기록한 것으로, 법을 뜻함.- [註 317]
○丙戌/頒敎:
王若曰, 惟予不德, 叨承丕基, 粤自新服以來, 無一德化及民, 徒見誅罰荐行。 嗚呼! 是豈予心之所欲哉? 莫嚴者天討, 所重者宗社。 予一人曷敢以己意參焉哉? 嗚呼! 國家不幸, 遭時孔艱, 亂本起自戚里, 賊黨殆遍世臣以至。 今玆逆變極, 往牒所無之凶, 幸賴皇天祖宗之默佑, 半夜宮城手脚旣敗, 十日帳殿, 頭腦自綻, 罪人斯得, 王章已擧。 玆當維新之會, 詎忽懲毖之圖? 肆大誥之誕宣, 尙明聽而無譁。 嗚呼! 戚里之禍, 念之心寒。 倡邪論幻義理, 要脅予沖年者此輩也; 做蜚語眩聽聞, 䵝昧予潛德者此輩也; 伺動靜投機會, 搖撼予儲位者此輩也; 成命屢降, 而乃敢肆胸臆, 以遏代聽者亦此輩也, 大策旣定, 而必欲剪羽翼, 以階翻覆者亦此輩也。 蓋自邪論不得售, 而蜚語作, 仍之以表裏作逆於代聽之前後。 噫嘻! 當厚謙挾其母而煽妖, 麟漢席乃兄而逞凶也, 國之不亡者幸耳。 倘非先大王止慈之德, 天地以覆載之, 日月以照燭之, 予一人其得有今日乎? 逮予嗣服, 懲討略行, 而予惟天心好生, 不忍殄減無遺, 徒黨歸之脅從, 根柢置之疑似, 薄施流竄等輕典, 務令反側子自安, 且謂人各有人心, 庶幾感激有道, 布綸以曉之, 系書以明之者, 皆所以爲此輩開生路, 而獨奈何鴞音未悛, 狼心益急, 申喩之莫我聞, 寬宥之不我德, 自分窮寇, 扺死角勝? 於是乎七月二十八日之變作矣, 興文之匕劍, 龍輝之鐵鞭, 深夜大內, 縱橫殿甍, 又伏五十壯士於闕下, 以觀望成敗者, 皆相範之所募也。 或翻瓦而覘機, 或散錢而眩蹤, 假作魍魎, 潛竄草莽, 其爲計亦狡矣, 而甫逾一旬, 敢圖再擧, 方其越宮墻之際, 乃爲坐更卒所獲, 儘乎天不可誣, 鬼所共誅也。 暗導路逕, 則有月惠、繼昌之和應; 潛伺肘腋, 則有世福、壽大之排布。 此外掖屬宮女之關通, 門客厮隷之干連, 厥醜雖夥, 何足歷數? 孝任則相範之母, 述海之妻, 與其妾介連, 指揮妖婢, 締結賊巫, 圖像結矢, 寫符埋蠱, 敢爲暗地射天之圖, 而遂及於安危與共之一介臣。 噫! 謂君可仇, 以及於臣, 爲予臣者不亦難乎? 啓能則又與信、履、吉、格、弘燮、澤遂輩、肆爲太甲桐宮, 癸亥反正之說, 而推戴有屬, 除疑且定。 弘燮、澤遂, 本以恒、麟之至親, 久作啓能之門徒, 連腸結肚, 予非不知。 偃息城闉, 於渠亦幸, 而自知不容於世, 乃反甘心於逆。 嗚呼! 爲人臣子, 戴天履地, 是尙可以萌於心發諸口乎? 合三塗而共一逆, 集千古而無遺惡, 吁亦凶矣。 嗚呼! 予於此又有所不忍言者。 周公 《鴟鴞》之詩, 取子毁室之喩, 千載之下讀之, 尙有餘悲。 豈意予身當其事? 噫! 禶之蒙騃, 何所知識, 而有國之三尺至嚴, 守闕之萬口難遏, 以予孤露之生, 莫伸親愛之私。 嗚呼! 使無諸賊之藉口, 夫豈使予而至此? 大抵斯獄首從, 罔非賊門之所卵育, 而範、吉、格、趾、述、纉諸賊, 直是一門梟獍, 種下生種。 自相簡旣誅之後, 罔念曲貸之恩, 反懷讎視之心, 陰圖遠通於關海, 叛謀至及於婦女, 噫嘻! 古有是否? 彼啓能者, 名爲讀書, 早竊虛譽, 其本一天地間戾氣所鍾也。 其貪淫縱恣, 行若跖、蹻之實, 世有公議, 予不欲詳, 而向在逆順角立之日, 凶徒之設計圖事者, 必欲得盜儒名, 而聚徒黨者, 鼓倡奸言, 文飾義理, 以誑惑一世, 搖動人心然後, 始爲其所欲爲, 則啓能乃以山林標號, 匍匐歸身, 連衡群凶, 日以其姓名, 聞於宮禁左右。 予幸辨之於早, 得不墮其術中, 而追崇大北之論, 沮格翻覆之計, 罔不出於抵掌揚眉之緖餘。 及其計謀大謬, 徒黨一敗, 所恃以爲窩窟者, 次第掀露, 則積懷疑懼, 窮無所歸, 以平日陰賊之性, 挾失志怨懟之心, 遂與廢孽餘醜, 倡爲推戴簒奪之謀。 此不但吉、澤諸賊之招, 如出一口。 渠供中‘速出斬’之云者, 是隱然用殺身殉節者之語法也。 ‘雖優爲謀逆, 不少之人, 何可遽服’云者, 卽面弄乘輿之嫚辭也, 信口所發, 無非逆肚中流出者, 卽此可見。 至若展開《書傳》, 講論太甲文義之供, 直一結案, 而未及正法, 徑先物故, 可勝痛哉? 噫! 前逆纔平, 後逆踵出, 謂窩窟之已盪, 又窩窟之新綻, 將運有平陂, 予適丁其不幸歟? 抑亂本未拔, 所剪止於枝葉歟? 今當周王宅恤之日, 每用魯候臨戎之例, 予實痛心於斯已。 將逆賊興文、龍輝、相範、相吉、相格、世福、甘丁、貞伊、興祚、孝任、介連、述海、趾海、纉海、壽大、澤遂、信德等, 依律正法, 啓能已承款而徑斃, 未及正法, 禶使之自盡, 海根、宗洙、國來、峸、受采、信海、履海、泰淵等杖斃, 弘燮亦施追奪之律。 鋤除亂逆, 旣洩神人之憤, 滌蕩瑕垢, 寧靳霈澤之流? 自昧爽以前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云云。 於乎! 從今以往, 逆順益明, 國是大定, 凡厥臣庶, 尙不迷於向背, 同我家國期永享於太平。 故玆敎示, 想宜知悉。 【藝文提學金鍾秀製進】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8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695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어문학-문학(文學)
- [註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