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실록4권, 정조 1년 9월 22일 갑신 1번째기사
1777년 청 건륭(乾隆) 42년
김종수·유언호에게 역적 토죄로 인한 과거 설행에 대해 묻다
병조 판서 김종수(金鍾秀)와 개성 유수(開城留守) 유언호(兪彦鎬)를 소견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과거(科擧)가 너무 빈번하고 경사(慶事)로 인해 과거를 보이는 것은 또한 의의가 없게 됨을 민망하게 여겨 왔다. 그래서 이번의 역적을 토죄(討罪)한 것에 관한 과거는 역시 설행하지 않으려고 한 것인데, 혹자는 ‘과거 제도를 변통하게 되기 전에는 설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었다. 경(卿)들의 뜻에는 어떤가?"
하매, 김종수 등이 말하기를,
"진실로 성상께서 분부하신 말씀과 같이 경과(慶科)는 이제부터는 설행하지 않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고, 승지 정민시(鄭民始)가 말하기를,
"경과는 다같이 경하(慶賀)하는 뜻에서 나오게 된 것이고 이미 제도를 변경하지 않았으므로 아마도 폐지해서는 옳지 않겠습니다."
하고, 김종수가 말하기를,
"신은 생각에 면시(面試)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방법으로 여깁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면시는 어찌 박액(迫阨)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매, 정민시가 말하기를,
"송(宋)나라 때에도 예백(曳白)313) 하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전시(殿試)를 설행하여야 하는데 전시는 면시나 다름없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3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69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 [註 313]예백(曳白) : 시험 답안지를 백지로 내놓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