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평안 감사 서명응에게 명하여 활자 주조(정유자)를 완성하다
활자(活字) 주조(鑄造)가 완성되었다. 세종(世宗)갑인년251) 에 김돈(金墩) 등에게 명하여 《효순사실(孝順事實)》·《위선음즐(爲善陰騭)》의 글자를 구리로 본을 떠서 글자로 만든 것이 무릇 20여만 자이었는데, 세속에서 위부인자(衛夫人字)252) 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선조조(宣祖朝)에 이르러 이 활자를 중수(重修)했고, 임금이 춘저(春邸)에 있을 적에 동궁(東宮) 신료(臣僚)들에게 명하여 갑인자(甲寅字)를 교정(校正)해서 15만 자를 주조하도록 하여 운각(芸閣)에 간직해 놓고, 《경서정문(經書正文)》과 《계몽집전(啓蒙集箋)》을 인출(印出)했었으니, 이것이 임진자(壬辰字)253) 이다. 이 해에 전 평안 감사 서명응(徐命膺)에게 명하여 기영(箕營)254) 에서 주조(鑄造)를 개시하되 갑인자를 본(本)으로 하여 15만 자를 더 주조해서 올리도록 했었으니, 이것이 정유자(丁酉字)이다. 이에 이르러 하교하기를,
"중신(重臣)이 전후에서 근로(勤勞)한 것이 매우 현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영묘(英廟)255) 의 뜻한 일이 몇 천백 년토록 길이 전해 가게 되었으니 이 어찌 한가한 노역(勞役)에 비하겠으며, 하물며 이전에도 전례가 있은 것이겠는가? 또한 이 중신은 곧 내가 춘궁(春宮)에 있을 때의 구빈(舊賓)인데다가 지금은 또한 휴척(休戚)을 같이 하는 사람이 되어 요직의 자리에 이르렀으니, 내가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땅히 한가한 자리에 있게 해야 한다."
하고, 전 감사 서명응(徐命膺)을 특별히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의 품계에 올리었다가, 이어 다시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을 제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4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684면
- 【분류】인사-관리(管理) / 출판-인쇄(印刷)
- [註 251]갑인년 : 1434 세종 16년.
- [註 252]
위부인자(衛夫人字) : 위부인의 글자체란 뜻으로, 위부인은 진(晉)나라 이충(李充)의 어머니이고 왕희지(王羲之)가 그에게 글씨를 배웠음.- [註 253]
임진자(壬辰字) : 영조 48년(1772)에 만든 구리 활자. 갑인자(甲寅字)를 고쳐 만든 것으로, 정조가 세자로 있을 때에 15만 자를 새겨 교서각(校書閣)에 두었음.- [註 254]
기영(箕營) : 평양 감영.- [註 255]
영묘(英廟) : 세종.○鑄字成。 世宗甲寅, 命金墩等以《孝順事實》、《爲善陰隲》字, 範銅爲字, 凡二十餘萬字, 俗稱衛夫人字是也。 至宣廟朝, 重修其字, 上在春邸, 命宮僚, 校正甲寅字, 鑄十五萬字, 藏于芸閣, 印行經書正文《啓蒙集箋》, 是爲壬辰字。 是年命前平安監司徐命膺, 開鑄箕營, 以甲寅字爲本, 加鑄十五萬字以進, 是爲丁酉字。 至是敎曰: "重臣前後勤勞甚著。 從此可以壽傳, 我英廟之志事於幾千百載, 豈是等閒勞役之比, 況有已例者乎? 且此重臣, 卽予春宮舊賓, 今又爲同休戚之人, 而至於要地, 予不强勉? 其宜置之閒局。" 前監司徐命膺特陞判中樞階, 仍復除奎章閣提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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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註 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