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 때 잘못된 복색을 시정하지 못한 책임으로 초차의 헌관은 삭직하고 예판은 체차시키다
예조 판서 홍낙성(洪樂性)을 소견하였다. 홍낙성이 아뢰기를,
"지난번 삼각산(三角山)·목멱산(木覔山)·한강(漢江)에 기우제를 지낼 적에 헌관(獻官) 유언호(兪彦鎬)는 《오례의(五禮儀)》의 각기 그 복색(服色)으로 입는다고 한 글을 보고 흑단령(黑團領) 차림으로 행사(行事)하였으며, 신과 이중호(李重祜)는 풍운 뇌우단과 우사단의 헌관으로서 또한 흑단령 차림으로 행사하였습니다. 다시 《오례의》를 상고하여 보니 각기 그 복색을 입는다는 말이 끝내 분명하지가 않았습니다. 따라서 신 등이 관복(官服) 차림으로 행례(行禮)한 것이 착오로 귀결될 것 같으니, 한 번 품정(稟定)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각기 그 복색을 입는다는 뜻에 대해 경 등이 잘못 본 것을 면할 수 없다. 향사(享祀)에는 제복(祭服)을 입고 능행(陵幸)에는 융복(戎服)을 입으며 조하(朝賀)에는 조복(朝服)을 입는 것이 모두 각기 그 복색을 입는다는 것이니, 시복(時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제향의 복색을 마음대로 개역(改易)하는 것은 매우 잘 살피지 않은 것에 관계가 된다."
하고, 이어서 하교하기를,
"지난번 처음 기우제를 지낼 적에 한 헌관(獻官)의 소견이 착오된 것을 인하여 제복 차림으로 행제(行祭)하지 않고 관복을 입었다고 한다. 당초 헌관이 의심을 품은 것은 《오례의》 복색조(服色條) 소주(小註)의 유무(有無)에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배제(陪祭)하는 백관과 제관의 복색을 구별하여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니, 이것 때문에 의심을 품은 것은 너무 부당한 데에 관계된다. 그런데도 즉시 계품(啓稟)하여 재정(裁定)하지 않은 것은 또 잘 살피지 않은 것이다. 사전(祀典)은 이것이 얼마나 삼가야 하는 것이고 기우(祈雨)는 또 얼마나 정성을 극진히 해야 되는 일인가? 그런데도 이런 흠경(欠敬)스런 거조가 있었으니 이미 지나갔다고 해서 경책(警責)이 없을 수 없다. 초차(初次)의 기우제 때 헌관은 아울러 파직시키고, 재차(再次)·삼차(三次)의 헌관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잘못을 답습한 실수를 면하기 어려우니, 아울러 종중 추고(從重推考)하라. 종백(宗伯)151) 에 이르러서는 직책이 예(禮)를 관장하고 있는데 또 행제할 때를 당하여 처음에는 잘 규검(糾檢)하지 못하였고 나중에는 고식적인 것을 면치 못했으니, 이것이나 저것이나 잘못된 점이 작지 않다. 예조 판서 홍낙성을 체차(遞差)시키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67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의생활(衣生活)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151]종백(宗伯) : 예조 판서(禮曹判書).
○庚子/召見禮曹判書洪樂性。 樂性奏曰: "向日三角、木覔、漢江祈雨祭獻官兪彦鎬, 見《五禮儀》各服其服之文, 以黑團領行事, 臣與李重祜以風雲雷雨雩祀壇獻官, 亦以黑團領行事。 更考《五禮儀》則各服其服云者, 終不明的。 臣等之着官服行禮, 似歸錯誤, 不可不一番稟定也。" 上曰: "各服其服之義, 卿等未免錯看。 享祀之祭服, 陵幸之戎服, 朝賀之朝服, 皆各服其服, 非時服之謂也。 且祭享服色之任自改易, 極涉不審也。" 仍敎曰: "向於初次祈雨祭也, 因一獻官所見之參差, 不以祭服將事, 而服官服云。 當初獻官之起疑, 雖在《五禮儀》服色條小註之有無云, 而此不過陪祭百官及祭官服色之區別者, 則以此起疑, 已涉不當。 不卽啓稟裁定, 又是不審。 祀典何等致愼之處, 祈雨又何等盡誠之事? 而有此欠敬之擧, 不可以旣往而無警。 初次祈雨祭獻官竝罷職, 再次三次獻官曚然襲謬之失, 在所難免, 竝從重推考。 至於宗伯, 職在掌禮, 又當將事初, 莫能紏檢, 終不免姑息, 以此以彼, 所失不細。 禮曹判書洪樂性遞差。"
- 【태백산사고본】 3책 3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673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의생활(衣生活)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