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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1권, 정조 즉위년 3월 10일 신사 3번째기사 1776년 청 건륭(乾隆) 41년

중외에 교문을 반포하여 사면의 은전을 내리다

중외(中外)에 교문을 반포하기를,

"왕은 말하노라. 황천(皇天)이 한없는 재앙을 더없이 내리어 갑자기 거창한 일을 만나게 되었다. 소자(小子)가 보위(寶位)를 이어받게 되었는데, 억지로 백성들의 심정에 따르고 공경히 떳떳한 법을 지키려는 것이었으니, 어찌 임금의 자리를 편히 여겨서이겠느냐? 지난날에 열성(列聖)들께서 남기신 전통은 거의 삼대(三代)005) 시절의 융성한 것과 견주는 것으로서, 조종(祖宗)의 공덕(功德)은 상제(上帝)의 대명(大命)을 받든 것이었고, 문무(文武)의 모열(謀烈)은 후손들에게 편안함을 끼친 것이었다. 공손히 생각건대, 대행 대왕(大行大王)006) 께서는 진실로 잘 계술(繼述)하시어 순(舜)과 같은 총명을 사방에 펼치므로 아! 만백성이 이에 화합하게 되고, 문사(文思)는 삼재(三才)007) 의 도리를 겸하였으니 참으로 팔도(八道)가 좇아서 감화되었다. 고은 모전(毛氈)에 앉는 것을 엷은 얼음을 디디는 것처럼 생각하여 매양 공경하여 두려워하는 정성이 간절하였고, 가난한 집의 곤궁을 풀어 주기에 진념하여 더욱 자식처럼 돌보는 정사에 힘을 썼다. 근검이 왕가(王家)와 나라 가운데 나타나게 되었으니 진실로 순일한 덕이 밝아졌기 때문이고, 효제(孝悌)가 신명(神明)에게도 통하게 되었으니 이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경(麟經)008) 의 존왕(尊王)의 의리를 게양하여 황단(皇壇)에 향사(享祀)하는 의식(儀式)을 갖추어 놓았고, 홍범 구주(洪範九疇)의 회극(會極)에 관한 공부에 힘을 써 만물들이 화육(化育)의 테두리 안에 안기게 하였다. 아! 아름다웠도다. 50년 동안 빛이 나게 임어하시어 이에 천재 일우(千載一遇)의 국운이 비로소 돌아올 날을 보게 되었다. 춘추는 당(唐)나라 요(堯)임금이 문치(問治)하던 때를 넘게 되어 만백성들이 모두 받들게 되고, 덕은 이미 위(衛)나라 무공(武公)억계(抑戒)009) 에 부합되어 임금의 지위를 편안하게 누리시었다. 그동안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마음으로 오직 장수하시기를 빌었는데, 어찌 마음이 끊어지는 듯한 애통에 갑자기 하루아침에 잠기게 될 줄 알았겠는가? 금등(金縢)010) 에 납책(納冊)하며 이 몸으로 대신하기 빌었지만 효과를 보게 되지 못하였고, 옥궤(玉几)에서 명이 내리며 영원히 수염을 움켜쥐는011) 슬픔을 안게 되었다. 황연(怳然)히 상약(嘗藥)할 때가 있게 될 것으로 여기다가 그만 시선(視膳)할 날이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외롭고도 외롭게 애통속에 있으며 바로 침괴(枕塊)하고 처점(處苫)012) 해야 할 때를 당했기에, 경황없이 무엇을 찾는 것 같은 참인데 어찌 즉위하여 어보(御寶)를 받는 예식이 편안하겠느냐? 지극한 애통을 스스로 견딜 수 없는데 차마 더욱 굳어지는 당초의 뜻을 늦출 수 있겠느냐마는, 대위(大位)를 비워서는 안되는 것이니 어찌 막을 수 없는 대중의 심정을 헛되게 하겠느냐? 위로는 자전(慈殿)의 분부를 받들고 아래로는 옛 의식을 따라 이에 금년 3월 초10일 신사일(辛巳日)에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고, 예순 성철 왕비(睿順聖哲王妃) 김씨(金氏)를 존숭하여 왕대비로 올리고, 빈(嬪) 김씨를 왕비로 올렸다. 철의(綴衣)013) 를 돌아보니 측은하게 마음이 더욱 슬퍼지고, 화순(畫純)에 임해서는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울게 된다. 앞서는 ‘대신 노력하라.’는 성스러운 명을 받들고서 모든 기무를 섭행하기 힘쓰다가, 이제는 계서(繼序)해야 하는 상례를 준수하느라 삼양(三讓)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크고 힘든 왕업을 생각하건대 순조롭게 감당할 수 있을까 싶고, 즉위하는 예식을 거행할 참을 돌아보건대 부탁받은 것을 저버리게 될까 두렵다. 오직 혹시라도 당구(堂構)014) 를 이어가지 못할까 경계하며, 한없이 갱장(羹墻)에서도 사모되어짐을 견딜 수 없다. 이에 10행의 윤음(綸音)을 반포하여 널리 사면하는 은전을 내리는 것이니, 어둑새벽 이전의 잡범 가운에 사죄 이하는 모두 용서하여 면제해주라. 아! 오늘날은 처음으로 즉위한 참이기에 마땅히 널리 탕척하는 인(仁)을 생각하였고 나의 일을 끝맺기를 도모하니, 거듭 밝은 아름다움을 보게 되기 바란다."

하였다. 【대제학 이휘지(李徽之)가 지어 올렸다.】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6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05]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 [註 006]
    대행 대왕(大行大王) : 임금이 죽은 뒤 아직 시호를 올리기 전의 칭호.
  • [註 007]
    삼재(三才) : 하늘·땅·사람.
  • [註 008]
    인경(麟經) : 《춘추(春秋)》의 별칭.
  • [註 009]
    억계(抑戒) : 억(抑)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篇名). 모시서(毛詩序)에 의하면 ‘억은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주(周)나라 여왕(厲王)을 풍자하고 또한 스스로를 경계한 시이다.’라고 하였음.
  • [註 010]
    금등(金縢) : 《서경(書經)》의 편명(篇名). 금(金)은 쇠의 뜻, 등(縢)은 끈 또는 봉한다는 뜻임. 무왕(武王)이 병이 들어 위독하자, 아우 주공(周公)이 무왕대신 자기를 죽게 해 달라고 신하에 비는 글을 지어 궤짝에 넣어 쇠줄로 봉하였는데, 이튿날 무왕의 병이 나았으므로, 곧 금등이란 병이 나은 것을 말함.
  • [註 011]
    수염을 움켜쥐는 : 임금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비유하는 말. 황제(黃帝)가 용(龍)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자, 신하들이 용의 수염을 붙잡았으나 수염만 뽑아졌다는 고사에서 온 말.
  • [註 012]
    침괴(枕塊)하고 처점(處苫) :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치르는 예(禮). 침괴는 흙덩어리를 베개로 삼는 것이고, 처점은 짚을 엮어 자리로 하는 것을 말함.
  • [註 013]
    철의(綴衣) : 장막.
  • [註 014]
    당구(堂構) : 부모의 사업을 이어받음.

○頒敎中外:

王若曰。 皇天崇降鞠凶, 奄罹巨創。 小子丕承寶位, 勉循輿情, 祗率彝章, 詎安黼座? 粤若列聖之垂統, 庶幾三代之比隆, 宗德祖功, 膺駿命於上帝, 文謨武烈, 貽燕翼於後昆。 恭惟大行大王, 允矣善繼善述, 聰達四, 猗歟萬民之時雍, 思兼三, 展也八域之風動。 念細氈之履薄, 每切寅畏之誠, 軫窮蔀之解懸, 益懋子惠之政。 勤儉著於家國, 實由一德之昭; 孝悌通於神明, 是謂百行之本。 揭《麟經》尊王之義, 備享儀於皇壇; 勉龜疇會極之工, 囿品物於化域。 於休五十載光御, 爰覩千一運肇回。 年則邁唐堯之問治, 億兆咸戴, 德旣符衛武之戒抑, 九五曰康。 邇來喜懼之心, 惟祈萬壽, 何知遏密之慟, 遽纏一朝? 納冊金縢, 未效代躬之祝, 宣命玉几, 永抱攀髯之悲。 怳然嘗藥之有辰, 已矣視膳之無日。 煢煢在疚, 正當枕塊處苫之時, 皇皇如求, 何安陟阼受寶之禮? 至痛自難堪, 忍縱初意之冞堅, 大位不宜曠, 虛奈群心之莫遏? 仰體慈旨, 俯循舊儀, 乃於本年三月初十日辛巳, 卽位于崇政門, 尊睿順聖哲王妃 金氏陞王大妃, 以嬪金氏陞王妃。 眷綴衣而怛焉疚懷, 臨畫純而泫然飮泣。 曩承代勞之聖命, 勉攝萬機, 今遵繼序之常經, 莫遂三讓。 念投大遺艱之業, 若爲承當, 顧踐位行禮之辰, 恐孤付托。 惟戒或墜於堂構, 曷勝永慕於墻羹。 斯宣十行之音, 庸示肆赦之典, 自昧爽以前雜犯死罪以下, 咸宥除之云云。 於戲! 在今初服, 宜思曠蕩之仁, 圖我終功, 佇見累熙之美。" 【大提學李徽之製進】


  •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6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