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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27권, 영조 52년 3월 5일 병자 12번째기사 1776년 청 건륭(乾隆) 41년

오시에 목욕례를 행하다

오시(午時)에 목욕례(沐浴禮)를 행하였다. 왕세손이 어상(御床) 곁에 들어가 곡하며 극진히 애도하고 대신과 여러 신하가 호외(戶外)에서 모두 곡하였다. 협시(挾侍)가 왕세손을 부축하여 청사(廳事)로 나왔다. 약방(藥房)에서 좁쌀 미음을 바쳤으나, 왕세손이 소리내어 울고 들지 않았다. 금성위(錦城尉) 박명원(朴明源)이 호내(戶內)에 평상(平床)을 설치하매 내시(內侍)가 각각 목욕할 제구를 받들고 집사(執事)가 어상 남쪽 머리를 받들었다. 평상 위에 문석(紋席)을 깔고 문석 위에 단욕(緞褥)을 깔고 단욕 위에 또 문석을 깔고 옥체(玉體) 위에 금(衾)을 덮고 금 위에 복의(復衣)를 얹었다. 왕세손이 머리를 풀고 단의(袒衣)114) 하고서 들어와 어상 북쪽에 임하고 원상(院相) 김상철(金尙喆)·총호사(摠護使) 신회(申晦)·예조 판서(禮曹判書) 조중회(趙重晦)·예방 승지(禮房承旨) 서유경(徐有慶)과 사관(史官) 2원(員)이 어상 앞에 서고 예조 참판(禮曹參判) 김화진(金華鎭)이 홀기(笏記)를 들고 영외(楹外)에 서고 대신(大臣) 이하 여러 신하가 청사 동서에 겹줄로 마주 보고 나뉘어 섰다. 내시가 향탕(香湯)을 올리니 받들어 씻었다. 목욕이 끝나고서 습례(襲禮)를 행하였다. 집사(執事)가 먼저 습상(襲床) 위에 침(枕)을 바치고 그 다음에 화옥대(畵玉帶)를 깔고 그 다음에 곤룡포(袞龍袍) 【다홍 운문 대단(多紅雲紋大緞).】 를 깔고 그 다음에 초록 금문 대단 답호(草綠金紋大緞褡𧞤) 【곧 반팔이니, 대개 소매가 없는 것이다.】 를 깔고 그 다음에 옥색 공단 장의(玉色貢緞長衣)·보라 공단 장의(甫羅貢緞長衣)를 깔고 그 다음에 운문 유청 대단 중치막(雲紋柳靑大緞中赤莫)·남공단 중치막(藍貢緞中赤莫)·자적 향직 중치막(紫的鄕織中赤莫)·초록 공단 중치막을 깔고 그 다음에 유문 백사 단삼(有紋白紗單衫)을 깔았는데, 모두 구칭(九稱)115) 이다. 또 운문 백사 단고(雲紋白紗單袴)·백공단 대고(白貢緞大袴)를 바치고 그 다음에 말(襪) 【백공단이다.】 을 바치고 그 다음에 요대(腰帶) 【남광직(藍廣織)이다.】 를 바치고 그 다음에 각대자(脚帶子) 【남광직이다.】 를 바치고 그 다음에 망건(網巾) 【흑초(黑綃)이다.】 을 바치고 그 다음에 조모(皁帽) 【모단(毛緞)이다.】 를 바치고 이어서 익선관(翼善冠) 【모단이다.】 을 씌우고 그 다음에 화(靴) 【흑모단(黑毛緞)이다.】 를 바치고 그 다음에 토수(吐手) 【남광직이다.】 를 바치고 그 다음에 악수(握手) 【모단이다.】 를 바치고 전조 급 낙치 발낭(剪爪及落齒髮囊)을 어상 위에 받들어 놓았다. 집사가 멱모(幎帽)116) 를 씌우려 하는데, 왕세손이 슬피 울며 말려서 씌우지 못하게 하였다. 대신들이 말하기를,

"예정(睿情)이 절박하기가 이러하시나, 습렴하는 시각이 지체되는 것도 송구하고 민망합니다. 바라건대 효사(孝思)를 조금 억제하소서."

하니, 왕세손이 소리내어 울며 말하기를,

"이 멱모가 한번 씌워지면 이 세상에서는 천안(天顔)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니, 내 마음이 몹시 슬프기가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대신들이 말하기를,

"시각이 점점 늦어집니다. 삼가 바라건대 예제(禮制)를 굽어 따르소서."

하니, 왕세손이 소리내어 울며 물러나 앉았다. 집사하는 자가 멱모를 씌웠다. 하령하기를,

"습렴할 때에 들어간 의대(衣襨)를 주서(注書)가 상세히 적도록 하라."

하였다. 김상철이 말하기를,

"습렴한 뒤로 소렴(小殮)할 때까지는 한밤을 지내야 하니, 우선 견갑(肩胛) 위의 의대를 묶으면 염할 때에 느슨할 염려가 없을 듯합니다."

하니, 하령하기를,

"그렇다."

하였다. 김상철이 아뢰기를,

"반함(飯含)117) 하는 절차를 장차 거행할 것인데, 예(禮)에는 반함 전에 설전(設奠)하고 위위곡(爲位哭)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마는 반함의 사체(事體)가 중대하니, 반함한 뒤에 설전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하령하기를,

"그리하라."

하였다. 습렴이 끝나고서 왕세손이 소리내어 곡하고 자리에 있던 신하들도 모두 곡하였다. 반함례(飯含禮)를 행하자, 왕세손이 부여잡고 소리내어 슬피 우니 좌우에서 차마 우러러보지 못하는데, 또 목메임을 억제하고 동창(東窓)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창에 해가 비출 때가 죽수라(粥水剌)를 드실 때이다. 그 드시는 모습이 눈 안에 있는 듯한데, 이 뒤로는 어찌 우러러볼 수 있겠는가?"

하고는 실성(失聲)하여 통곡하니, 좌우도 다 실성하여 울음을 감추었다. 반함할 때가 되니, 왕세손이 손을 씻고 숟가락을 잡고서 쌀을 떠서 대행왕(大行王)의 입 오른쪽에 넣고 아울러 구슬[珠] 하나를 넣었으며, 왼쪽에 그렇게 하고 가운데에도 그렇게 하였다. 반함이 끝나고서 협시(挾侍)가 왕세손을 부축하여 청사로 돌아왔다. 조정(朝廷)에서 중궁전(中宮殿)에 정후(庭候)하고, 정원(政院)·옥당(玉堂)·약방(藥房)에서 중궁전·혜빈궁(惠嬪宮)·세손궁(世孫宮)·빈궁(嬪宮)에 정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35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註 114]
    단의(袒衣) : 초상 때 웃옷의 왼쪽 소매를 벗는 일.
  • [註 115]
    구칭(九稱) : 아홉 겹으로 갖추어 입는 것. 옷·이불 등의 홑이 아닌 것을 칭(稱)이라 함.
  • [註 116]
    멱모(幎帽) : 염습할 때에 죽은 사람의 얼굴을 덮어 싸는 헝겊. 네 귀에 끈을 달았음.
  • [註 117]
    반함(飯含) : 염습(殮襲)할 때 죽은 사람의 입 속에 구슬이나 쌀·동전 등을 물리는 일.

○午時, 行沐浴禮。 王世孫入御床傍, 哭盡哀, 大臣諸臣在戶外皆哭。 挾侍扶王世孫, 出廳事。 藥房進粟米飮, 王世孫號哭不進。 錦城尉 朴明源, 設平床於戶內, 內侍各奉沐浴諸具, 執事奉御床南首。 床上鋪紋席, 席上鋪緞褥, 褥上又鋪紋席, 玉體上覆以衾, 衾上加以復衣。 王世孫被髮袒衣, 入臨於御床之北, 院相金尙喆、摠護使申晦、禮曹判書趙重晦、禮房承旨徐有慶、史官二員立於御床之前, 禮曹參判金華鎭, 持笏記立於楹外, 大臣以下諸臣, 分立於廳事之東西重行相對。 內侍進香湯, 奉而頮之。 沐浴訖, 行襲禮。 執事先薦枕於襲床上, 次鋪畫玉帶, 次鋪袞龍袍, 【多紅雲紋大緞。】 次鋪草綠金紋大緞褡𧞤 【卽半臂, 蓋無袖者。】 次鋪玉色貢緞長衣, 甫羅貢緞長衣, 次鋪雲紋柳靑大緞中赤莫, 藍貢緞中赤莫、紫的鄕織中赤莫、草綠貢緞中赤莫, 次鋪有紋白紗單衫, 凡九稱。 又進雲紋白紗單袴、白貢緞大袴, 次進襪, 【白貢緞。】 次進腰帶, 【藍廣織。】 次進脚帶子, 【藍廣織。】 次進網巾, 【黑綃。】 次進皂帽, 【毛緞。】 仍加翼善冠, 【毛緞】 次進靴, 【黑毛緞】 次進吐手, 【藍廣織】 次進握手, 【毛緞。】 剪瓜及落齒髮囊, 奉於御床之上。 執事奉幎帽將加之, 王世孫號擗挽止, 使不得進加。 諸大臣曰: " 睿情之崩迫如此, 而襲時之遲滯, 亦爲悚悶。 伏願少抑孝思焉。" 王世孫號哭曰: "此帽一加, 此世將不得更覩天顔矣, 予心之慟隕當如何?" 諸大臣曰: "時刻漸晩。 伏願俯從禮制。" 王世孫號泣退坐。 執事者加幎帽。 令曰: "襲時所入衣襨, 注書詳錄可也。" 尙喆曰: "襲後至小殮, 當經一夜, 姑絞肩胛上衣襨, 則殮時似無弛緩之慮矣。" 令曰: "然矣。" 尙喆奏曰: "飯含節次將擧行, 而禮則飯含前設尊爲位哭, 而飯含體重, 先飯含後設奠何如?" 令曰: "唯。" 襲畢, 王世孫號哭, 在位諸臣皆哭。 行飯含禮, 王世孫攀號哭泣, 左右不忍仰瞻, 而又掩抑嗚咽, 指東窓曰: "此窓日照之時, 進粥水剌之時也。 其所進御之狀, 如在目中, 而從今以後, 何可仰覩乎?" 仍失聲號哭, 左右亦皆失聲掩泣。 飯含時至, 王世孫盥手執匙, 抄米實于大行王口右, 幷實一珠, 於左如之, 於中亦如之。 飯含訖, 挾侍扶王世孫還廳事。 朝廷庭候于中宮殿, 政院玉堂藥房, 庭候于中宮殿、惠嬪宮、世孫宮、嬪宮。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35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