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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127권, 영조 52년 3월 5일 병자 1번째기사 1776년 청 건륭(乾隆) 41년

묘시에 임금이 경희궁의 집경당에서 승하하다

묘시(卯時)에 임금이 경희궁(慶熙宮)집경당(集慶堂)에서 승하(昇遐)하였다. 임금이 대점(大漸)하여 장차 고복[復]하려 할 때에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이 말하기를,

"복의(復衣)는 곤룡포(袞龍袍)로 해야 하고, 고복한 뒤에는 왕세손이 침문(寢門) 밖에 나가 거애(擧哀)해야 합니다."

하니, 왕세손이 말하기를,

"황급한 때에는 모든 일이 전도되고 틀리게 되기 쉬우니, 《상례보편(喪禮補編)》을 상고해 보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내시(內侍)가 복의를 받들고 동쪽 낙수받이에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 고복하였다. 끝나고서 협시(挾侍)가 왕세손을 부축하여 침문 밖에 나가 거애(擧哀)하였다. 이때 대신(大臣)은 북영(北楹) 밖의 서쪽 가까운 곳에 서고 승지(承旨)·사관(史官)은 동영(東楹) 안팎에 서고 궁관(宮官)은 북영 밖에 서서 마주 보고 집사관(執事官)은 어상(御床) 앞에 서고 예관(禮官)은 동계(東堦) 위에 서서 서쪽을 향하여 고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예방 승지가 복의를 받들어 어상 옆에 놓으니, 비로소 자리[位]를 설치하고 곡(哭)하였다. 액정서(掖庭署)에서 청사에 점차(苫次)104) 를 설치하고 협시가 왕세손을 부축하여 점차로 갔다. 왕세손이 부복(俯伏)하고 곡하여 극진히 애도하고, 대신과 입참(入參)한 여러 신하와 내시 이하가 모두 곡하였다. 조정(朝廷)에서 중궁전(中宮殿)에 정후(庭候)하고 정원(政院)·옥당(玉堂)·약방(藥房)에서 중궁전·혜빈궁(惠嬪宮)·세손궁(世孫宮)·빈궁(嬪宮)에 정후하였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우리 대행 대왕(大行大王)105) 은 53년 동안의 인수(仁壽)106) 한 정치와 희흡(熙洽)107) 한 교화가 넘치고 풍부하며,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善)이 백왕(百王)에 뛰어나고 깊은 인애(仁愛)와 두터운 은택이 사람들의 피부와 뼈에 두루 미쳤다. 이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은 천지(天地)와 같아서 한 사신(史臣)이 그 만분의 일이라도 그려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나, 더욱이 지극히 효성스럽고 지극히 우애로운 행실은 험난을 겪고서 더욱 나타나고 지극히 인자하고 지극히 밝은 덕은 종사(宗社)를 더욱 굳게 하셨다. 구순(九旬)의 정섭(靜攝)하는 가운데에서도 영구한 계책을 깊이 생각하고 큰 계책을 빨리 결정하시어 우리 왕세손 저하에게 명하여, 기무(機務)를 대섭(代攝)하게 하여 인심을 일찍 붙이고 군흉(群凶)이 엿보는 간사한 싹을 미리 꺾어서 나라의 반석(磐石)·태산(泰山) 같은 큰 기업(基業)을 영구히 세우셨으니, 아! 아름답고 성대하다. 만년에 옥후(玉候)가 점점 더 깊어져 오래 끌다가 마침내 대점(大漸)에 이르러, 우리 춘궁 저하(春宮邸下)가 근심을 머금고 아픔을 품게 하시어, 울부짖는 슬픔과 부여잡고 가슴 치는 통곡이 신하들을 감동시켜 차마 우러러볼 수 없었으니, 아! 마음 아프다."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35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의생활(衣生活) / 역사-사학(史學)

  • [註 104]
    점차(苫次) : 부모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의 거처.
  • [註 105]
    대행 대왕(大行大王) : 대행(大行)은 임금이나 왕비가 죽은 뒤 시호(諡號)를 아직 받기 전에 그를 높이어 이르는 말. 여기에서는 승하한 영조를 가리킴.
  • [註 106]
    인수(仁壽) : 인덕(仁德)이 있고 수명이 긺.
  • [註 107]
    희흡(熙洽) : 명덕(明德)이 있고 화평함.

○丙子/卯時, 上昇遐于慶熙宮 集慶堂。 上大漸將復, 領議政金尙喆曰: "復衣當以袞龍袍爲之, 復後王世孫當出寢門外擧哀。" 王世孫曰: "蒼黃之際, 凡事易致顚錯, 《喪禮補編》考見可也。" 內侍奉復衣, 自東霤設梯而升皐復。 畢, 挾侍扶王世孫, 出寢門外擧哀。 時, 大臣立於北楹之外近西, 承史立於東楹之內外, 宮官立於北楹之外相向, 執事官立於御床之前, 禮官立於東階上西面, 俟復畢, 禮房承旨奉復衣, 置御床傍, 始設位而哭。 掖庭設苫次於廳事, 挾侍扶王世孫就苫次。 王世孫俯伏哭盡哀, 大臣及入參諸臣內侍以下皆哭。 朝廷庭候于中宮殿, 政院玉堂藥房, 庭候于中宮殿、惠嬪宮、世孫宮、嬪宮。

【史臣曰: 惟我大行大王五十三年仁壽之治, 熙洽之化, 洋溢動盪, 盛德至善, 卓越百王, 深仁厚澤, 浹人肌骨。 比如天地之至大至廣, 有非一史臣所可模畫其萬一, 而最是至孝至悌之行, 歷艱險而冞著, 至慈至明之德, 俾宗社而益鞏。 九旬靜攝之中, 深惟永圖, 亟決大策, 命我王世孫邸下, 代攝機務, 早係人心, 逆折群凶, 朶頣之奸萌, 永樹宗國磐泰之洪基, 於休盛哉! 晩年玉候轉益沈綿, 竟至大漸, 使我春宮邸下, 含恤茹痛, 號呼之哀, 攀擗之慟, 感動臣隣, 有不忍仰瞻, 嗚呼痛哉!】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35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왕실-종친(宗親) / 의생활(衣生活)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