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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27권, 영조 52년 2월 9일 신해 3번째기사 1776년 청 건륭(乾隆) 41년

친히 왕세손에게 어사 은인과 어제 유서를 주다

임금이 집경당(集慶堂)에 나아가 친히 왕세손에게 어사 은인(御賜銀印)과 어제 유서(御製諭書)를 주었다. 왕세손이 고취(鼓吹)하며 배진(陪進)하여 배례(拜禮)하고 받으니, 매우 성대한 일이었다. 하교하기를,

"이 인(印)은 세손을 따라야 하는 것이니, 이 뒤로는 거동할 때에 이 인으로 전도(前導)하라."

하였다. 왕세손이 광달문(廣達門)에 앉아 은인(銀印)으로 안보(安寶)할 때에 배위(陪衛)하는 신하들이 모두 기뻐서 발을 구르며 춤추는데, 부총관(副摠管) 정후겸(鄭厚謙)만이 언짢은 빛이 뚜렷이 있었으니,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는 길가는 사람도 아는 바이다. 아! 정후겸은 본디 왕망(王莽)·조조(曹操)·사마의(司馬懿)·환온(桓溫)063) 같은 흉악한 자로서 늘 저궁(儲宮)을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홍인한(洪麟漢)과 체결하여 감히 위태롭게 하고 핍박할 생각을 일으키고, 심상운(沈翔雲)과 환출(幻出)하여 번복할 계책을 부렸다. 중신(重臣) 서명선(徐命善)의 상소는 종사(宗社)의 대계(大計)를 위한 것인데, 조태구(趙泰耉)·유봉휘(柳鳳輝)가 다시 나왔다는 말을 방자하게 입에 내고, 요사한 심상운을 잡아다 국문하던 날에는 수인(囚人) 남간(南間)의 말을 팔을 걷어 올리고 큰소리로 이야기하였다. 그 밖의 음모(陰謀)·역절(逆節)도 모두 지극히 흉악하여 부도(不道)한 역적인데, 아직도 배위하는 반열(班列)에 있어 태연히 금달(禁闥)에 출입하니, 생각하면 섬뜩하여 절로 마음이 싸늘하고 뼛골이 오싹해진다.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3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註 063]
    왕망(王莽)·조조(曹操)·사마의(司馬懿)·환온(桓溫) : 왕망은 한(漢)나라 효원 황후(孝元皇后)의 조카로서 평제(平帝)를 죽이고 한조(漢朝)를 빼앗아 신(新)나라를 세운 자, 조조는 후한(後漢) 때의 권신(權臣)으로 아들 조비(曹丕)가 헌제(獻帝)를 폐위한 뒤 무제(武帝)라 추존하였음. 사마의는 삼국 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의 장수로 문제(文帝) 때 승상의 자리에 올라 손자 사마염(司馬炎)이 제위(帝位)를 찬탈할 기초를 닦은 자, 환온은 동진(東晉)의 정치가로서 벼슬이 대사마(大司馬)에 이르렀으며 황제(皇帝) 혁(奕)을 폐위하고 간문제(簡文帝)를 옹립한 후 찬탈의 음모를 꾸미다가 이루지 못하고 병사(病死)하였음. 네 사람 모두 왕위를 찬탈하거나 관계한 자임.

○上御集慶堂, 親授王世孫御賜銀印、御製諭書於王世孫。 王世孫皷吹陪進, 拜禮受之, 甚盛擧也。 敎曰: "此印宜隨世孫者, 此後擧動時, 以此印前導。" 王世孫坐廣達門, 銀印安寶時, 陪衛諸臣, 莫不歡忻蹈舞, 獨副摠管厚謙顯有不悅之色, 其心所在, 路人所知。 噫! 厚謙本以之凶, 常懷怨懟儲宮之心, 締結麟漢, 敢生危逼之計, 幻出翔雲潛售翻覆之圖。 重臣徐命善一疏, 爲宗主大計, 而以復出之說, 肆然發口, 妖拿鞫之日, 以囚人南間之言, 攘臂大談。 其他陰謀逆節, 罔非窮凶不道之賊, 而尙在於陪衛之列, 偃然出入於禁闥, 思之懍然, 不覺心寒而骨顫也。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30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