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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27권, 영조 52년 1월 10일 임오 2번째기사 1776년 청 건륭(乾隆) 41년

장령 유항주가 과거 시행의 개선책을 상서하다

장령(掌令) 유항주(兪恒柱)가 상서(上書)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행과(倖科)는 함부로 부거(赴擧)할 마음를 열고 외장(外場)은 서례(胥隷)의 손을 방자하게 하며 감별(鑑別)이 명백하지 않고 취사(取捨)가 공정하지 않으며, 과거(科擧)를 설행(設行)하는 것이 너무 잦고 정권(呈卷)021) 이 너무 급하고 과방(科榜)을 내는 것이 너무 빠릅니다. 참으로 3년마다 시행하는 대비(大比)022) 와 으레 설행할 증광시(增廣試)·별시(別試)·정시(庭試)·알성시(謁聖試) 밖에는 명색 없는 과거를 설행하지 말고, 시사(試士)할 때에는 그 시간을 늦추어 탁방(坼榜)할 즈음에 송(宋)나라 구양수(歐陽脩)가 한 달 동안 시장(試場)을 봉쇄하고 우리 조정의 김안국(金安國)·이수광(李晬光)이 15일 동안 시권을 고교(考校)한 것처럼 하면, 주사(主司)도 안목(眼目)이 미치는 바를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년의 일경강(一經講)은 참으로 좋은 규례인데, 한스러운 것은 시행한 것이 오래지 않은 것입니다. 번번이 증광시·별시의 초시(初試) 뒤에 기묘년023) 의 별시에서 한 것과 같이 한 경서(經書)를 배강(背講)하면, 법은 몹시 잗달다는 한탄이 없고 선비는 경서에 통달하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장수를 뽑는 방도는 더욱이 허술합니다. 등과(登科)한 뒤에는 기사(騎射)를 쓸데없는 것처럼 여기고 오직 청탁하는 것을 능사로 여기며 권귀(權貴)를 잘 섬겨서 갑자기 재상(宰相) 줄에 오릅니다. 이제부터는 다시 신진(新進)인 무변(武弁)024) 에게 신칙(申飭)하여 군대에 관한 일을 명백히 익히는 여가에 고금(古今)의 성패(成敗)와 역대(歷代)의 병제(兵制)와 산천(山川)의 험이(險夷)와 관방(關防)의 편의(便宜)에 관한 제도를 닦게 하여 재주와 식견이 뛰어난 자가 있으면 각별히 발탁하여 써서 특이한 자를 우대한 법을 나타내어 보이소서."

하였는데, 왕세손이 답하기를,

"상서 가운데에 조목조목 아뢴 말이 매우 옳으니, 유념하겠다. 과장(科場)의 일은 경장(更張)에 관계되는 일이니, 대신(大臣)에게 의논하여 품처(稟處)토록 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2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

  • [註 021]
    정권(呈卷) : 과거의 답안을 시관에게 냄.
  • [註 022]
    대비(大比) : 선조조(宣祖朝) 이후 3년에 한 번씩 실시한 과거. 일종의 식년시(式年試)로, 전시(殿試)와 같은 것이었음. 대비과(大比科).
  • [註 023]
    기묘년 : 1759 영조 35년.
  • [註 024]
    무변(武弁) : 무인(武人).

○掌令兪恒柱上書, 略曰:

倖科啓濫赴之心, 外場恣胥隷之手, 鑑別不明, 取捨不公, 設科太數, 呈券太急, 出榜太速。 誠使三年大比及應行增別庭謁之外, 勿設無名之科, 試士之時, 緩其晷刻, 坼榜之際, 如 (歐陽脩)〔歐陽修〕 之鎖圍一月, 我朝金安國李晬光之考券十五日, 則主司亦得盡眼目之所及矣。 頃年一經之講, 實爲良規, 所恨行之未久。 每於增別初試之後, 背講一經, 一如己卯別試之爲, 則法無苛細之歎, 士有通經之美矣。 我國選將之道, 尤爲踈謬。 一登科第之後, 視騎射如弁髦, 惟以干謁爲能事, 善事權貴, 驟登宰列。 從今以往, 更飭新進武弁, 明習組練之餘, 詰以古今成敗, 歷代兵制, 山川險夷, 關防便宜之制, 如有才識卓異者, 各別擢用, 顯示優異之典。

王世孫答曰: "書中條陳, 言甚是矣, 當留念。 科場事, 事係更張, 議大臣稟處。"


  • 【태백산사고본】 83책 127권 7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2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선발(選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