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부사직 서명선이 상소하다
행 부사직 서명선(徐命善)이 상소하기를,
"오직 우리 성상께서 임어하신 지 이미 50년이 되었습니다. 부지런하시고 노고하심을 하루같이 하시어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느라 거의 소간(宵旰)265) 을 돌보지 않으시고, 번잡한 기무(機務)로 인하여 혹 보양(保養)에 방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선조(先朝)의 고사(故事)를 이어서 오늘날의 하교가 계셨으니, 이 대리(代理)하는 일은 오로지 나라를 위하는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성(至誠)·측달(惻怛)하신 하교는 신명(神明)을 감동시키고, 돈어(豚魚)266) 에게까지 믿음을 사기에 족하였습니다. 지금 대신이 된 자는 마땅히 그 말을 자세하고 신실하게 하고, 그 일을 신중히 처리하여 국체(國體)를 더욱 중하게 함으로써 예심(睿心)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신이 삼가 듣건대, 지난달 20일 대신이 입시하였을 때 좌의정 홍인한(洪麟漢)이 감히 ‘동궁(東宮)이 알게 할 필요 없다.’라는 말을 함부로 전석(前席)에서 진달하였다고 합니다. 저군(儲君)이 알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이 알아야 하겠습니까? 아성(亞聖)이 임금을 공경하는 의(義)267) 를 비록 이런 사람에게 책임지우기는 어렵겠으나, 그 무엄하고 방자함은 아주 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참(常參) 때에 전 영상(領相) 한익모(韓翼謨)의 ‘좌우는 걱정할 것이 없다.’라는 말은 또 무슨 망발입니까? 수상(首相)의 자리에 있는 몸으로 엄수(閹竪)268) 들이나 할 맹세의 말을 한 것이니, 옛날의 대신 가운데 또한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날 아뢴 내용 가운데, ‘대내에서 한 일이니, 신은 쟁집(爭執)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더욱 천만 놀라운 일입니다. 이번의 성교(聖敎)는 나라에 있어서 얼마나 큰 일이 되는데도 궁위(宮闈)의 안에서는 비밀로 하고 깊고 엄한 가운데 행하여 만백성이 알 수 없고 팔방에서 들을 수 없다면, 어찌 나라에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 전하의 오늘날 거조는 명정(明正)하고 뇌락(磊落)269) 하여 천고에 탁월하시니, 성심(誠心)과 간측(懇惻)한 뜻이 사교(辭敎) 사이에 애연(藹然)하였습니다. 그런데 아! 저처럼 모든 사람이 다 우러러보는 자리에 있는 자가 이를 허문(虛文)·가식(假飾)으로 보고 오로지 미봉(彌縫)하기를 일삼아 전하께서 고심하는 지덕(至德)으로 하여금 어둡게 하여 드러나지 못하게 하였으니, 어찌 통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제갈양(諸葛亮)이 말하기를, ‘궁중(宮中)과 부중(府中)은 모두 일체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일도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하거늘, 하물며 막중하고 막대한 일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그 말이 비록 무식한 데서 나온 것이었다고 하나, 그 사실은 불충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나라 일이 이러하고 대신이 또한 이와 같은데도 옆에서 들은 지 여러 날이 되도록 삼사(三司)의 자리에 있으면서 감히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은 통곡하고 크게 탄식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손수 상소문을 봉하고 직접 궐하(闕下)에 나와 경건한 정성으로 바쳐 우러러 성청(聖聽)을 번거롭히오니, 삼가 비옵건대, 성상의 밝으신 지혜를 혁연(赫然)히 떨쳐 펴시어 크게 밝은 명(命)을 내리시고 빨리 대신의 죄를 바로잡아 국가의 대사가 존중되는 지경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2책 12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0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 [註 265]소간(宵旰) : 날이 새기 전에 옷을 입고 해가 진 후에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정사에 부지런함을 비유함. 소의간식(宵衣旰食).
- [註 266]
돈어(豚魚) : 돼지와 물고기.- [註 267]
아성(亞聖)이 임금을 공경하는 의(義) : 아성(亞聖)은 맹자(孟子)를 지칭하는데, 《맹자》 공손추 장구(公孫丑章句) 하에 보면, 경축씨(景丑氏)가 맹자에게 "저는 왕[齊宣王]이 선생을 공경하는 것은 보았으나 선생이 왕을 공경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맹자가 "제인(齊人)은 인의(仁義)로써 왕에게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 나는 요·순(堯舜)의 도(道)가 아니면 감히 왕 앞에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들은, 내가 임금을 공경하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하며, 인의로 충언(忠言)함이 진정으로 왕을 공경하는 의리라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 있음.- [註 268]
엄수(閹竪) : 내시(內侍).- [註 269]
뇌락(磊落) : 뜻이 커서 구애받지 않음.○丙午/行副司直徐命善上疏曰:
惟我聖上臨御已五十載。 勤勞如一日, 民國之憂, 殆不恤於宵旰, 機務之煩, 或有妨於頤養。 繼先朝之故事, 有今日之下敎, 惟此代理之擧, 亶出爲國之意。 至誠惻怛之敎, 有足以感神明而孚豚魚。 爲今之大臣者, 固宜詳愼其言, 愼重其事, 使國體增重, 睿心少安, 而臣伏聞前月二十日入侍時, 左議政洪麟漢敢以東宮不必知之說, 肆然陳達於前席云。 謂儲君不能, 則當作何如人也? 亞聖敬君之義, 雖難責之於此人, 其無嚴放肆則極矣。 常參時前領相韓翼謩左右無足憂之說, 又何爲而妄發也? 身居首相之位, 質言閹竪之事, 古之大臣, 亦有是否? 至於伊日所奏, 自內爲之, 臣不爭執之說, 尤萬萬驚駭。 今此聖敎, 在國家爲何許大事, 而秘之於宮闈之內, 行之於深嚴之中, 萬姓不得知, 八方不得聞, 則其可曰國有人乎? 嗚呼! 殿下今日之擧, 明正磊落, 卓越千古, 誠心懇惻之旨, 藹然於辭敎之間。 而噫彼職忝具瞻者, 看作虛文假飾, 專以彌縫爲事, 使殿下之苦心至德, 䵝而不章, 豈不痛哉? 諸葛亮之言曰: "宮中府中, 俱爲一體。" 小事猶然, 況此莫重莫大之事乎? 其言雖出於無識, 其事實歸於不忠。 國事如此, 大臣又如此, 而側聽屢日, 三司之地, 無敢言之人, 臣不勝痛哭太息之至。 手自封章, 躬詣闕下, 齋心虔誠, 仰瀆崇聽, 伏乞聖明, 赫然振發, 誕降明命, 亟正大臣之罪, 使國家大事, 務歸尊重之地。
- 【태백산사고본】 82책 12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0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 [註 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