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참을 행하고, 긴요하지 않은 공사는 동궁에게 들여보내도록 하교하다
임금이 집경당에 나아가 상참(常參)을 행하였다. 임금이 입자(笠子)를 쓰고 동궁(東宮)에 기대어 앉았있다가 노창(臚唱)233) 이 끝나기 전에 돌아가 침상(枕上)에 누웠다. 임금이 이르기를,
"조사(朝事)이니 국사(國事)이니 하는 것이 오히려 하찮은 말이 되었다. 경 등이 보기에 나의 기운이 이 한 가지 일이나 알 수 있겠는가?"
하고, 소리를 높여 말하기를,
"지금 이후에도 대신(大臣)들은 오히려 다투겠는가? 나의 기력이 이와 같으니, 수응(酬應)하기가 더욱 어렵다. 예로부터 전례(前例)가 있던 일을 나는 지금 생각하는 것이다."
하니, 한익모가 말하기를,
"성교(聖敎)가 비록 이와 같으나 어찌 감히 갑자기 받들 수 있겠습니까?"
하고, 홍인한(洪麟漢)은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신하된 자가 받들 수 있는 일입니까?"
하고, 김상철(金尙喆)은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렇게 예사롭지 않은 하교를 내리십니까?"
하고, 이은은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러한 하교를 내리십니까?"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긴요하지 않은 공사(公事)는 동궁(東宮)이 달하(達下)234) 하는 데 들여보내되, 상소에 대한 비답과 공사 중에 긴급한 것은 내가 왕세손과 상의하여 결정하겠다. 수일 동안 기다려 그 일처리하는 솜씨가 익숙하게 되는 것을 보아가며 마땅히 여기에 추가하는 하교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임금은 영의정과 좌의정이 아뢰는 말을 듣고, 진노(震怒)하여 그만 몸소 문을 닫아 버리고 여러 신하들은 빨리 물러 나가라고 하교하였다. 또 말하기를,
"오늘날 조정의 일을 어찌 경 등과 더불어 처리하겠는가? 길가에 있는 장승(長丞)에게 묻는 수 밖에는 다시 믿을 곳이 없구나."
하였다. 대신들이 내려가 대전 섬돌에 이르자, 임금이 중관(中官)을 시켜 대신들에게 전하기를,
"대신을 믿을 수 있겠느냐?"
하였다. 여러 신하들의 아뢰는 일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임금의 담후(痰候)가 몹시 심해져서, 대신(大臣) 이하는 물러가기를 청하였다. 잠시 후 담후가 조금 나아지자 대신들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나의 기력이 이와 같다. 나의 병을 스스로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전례(前例)가 있던 일을 오늘에 내가 결단하여 행하고자 한다. 내가 전후로 내린 하교가 어떠한 것인데 경 등은 듣고서도 못들은 체하여 마치 바람이 귓가를 지나가듯이 흘려 버리고 있다. 경 등은 80세 된 임금을 보는데 어찌 그리 박절함이 심한가? 내가 생각한 바의 일이 있으므로 먼저 경 등에게 알리는 것인데, 경 등은 오늘에 와서 다시 무엇 때문에 머뭇거리며 미루고 있는가?"
하니, 여러 대신들이 미처 우러러 대답하기도 전에 홍인한이 대신들의 뒤로부터 앞으로 나와 엎드려 아뢰기를,
"이 무슨 하교이십니까? 어찌 신자들이 받들 수 있는 일입니까? 차라리 부월(鈇鉞)에 복주(伏誅)되더라도 결코 감히 받들어 행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여러 대신들이 차례로 우러러 아뢰기를 마치자, 홍인한이 또 말하기를,
"오늘 이와 같은 전하의 하교를 받고 합문(閤門) 밖으로 나간다면 신하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몸소 만기(萬機)를 돌보셨지만 조금도 보류되거나 지체됨이 없어서 신 등이 늘 더불어 상대하며 칭찬하고 축하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와 같이 중도(中道)에 지나친 하교를 내리십니까? 신은 차마 우러러 들을 수 없습니다."
하고, 또 여러 대신들과 함께 물러가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경 등이 하는 일은 기괴(奇怪)하도다."
하였다. 임금이 또 이르기를,
"지금 막 전교(傳敎)를 쓰도록 명하고자 하니, 경 등은 물러가지 않는 것이 옳겠다."
하고, 임금이 승지 이명빈(李命彬)을 앞으로 나오라고 명하여 전교를 쓰게 하며 이르기를,
"긴요하지 않은 공사(公事)는 동궁이 달하(達下)하는 데 들여보내고 상소에 대한 비답이나 시급한 공사는 내가 세손과 더불어 상의하여 처리하겠다. 며칠을 좀 기다려 그 일처리하는 솜씨가 익숙하여지는 것을 보아가며 마땅히 여기에 추가하는 하교가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때 홍인한이 승지의 앞을 가로막고 앉아서 다만 승지가 글을 쓰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또한 임금의 하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들을 수 없게 하였다. 또 임금의 하교에 불러 쓰게 한 전교(傳敎)를 가지고 대신들에게 구전(口傳)으로 하교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승지가 붓을 뽑아 들고 전교를 쓰도록 명하기를 기다렸으나 홍인한이 또 이와 같이 하교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소리를 높여 우러러 아뢰니, 임금이 승지에게 하교하기를,
"써놓은 전교를 읽어 보아라."
하였다. 임금의 생각은 조금전에 불러 쓰게한 전교를 이미 썼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홍인한이 또 소리를 높여 아뢰기를,
"감히 들을 수 없는 전교를 신자된 자로 누가 감히 읽겠습니까?"
하였다. 이때 동궁이 시좌(侍坐)하고 있다가 이 전교를 곁에서 듣고서는 걱정스럽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홍인한에게 이르기를,
"이일은 참섭(參涉)할 만한 것이 아니지만 사세(事勢)가 급박하게 되었으니 진실로 마땅히 상소하여 사피(辭避)해야 합니다. 비록 두서너 글자라도 문적(文跡)이 있은 뒤에야 진소(陳疏)할 수가 있으니, 두서너 글자라도 꼭 탑교(榻敎)235) 를 받아 내가 진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오."
하니, 홍인한이 묵묵히 앉아 응답하지 않고 승선(承宣)236) 을 돌아보며 손을 저어 중지하도록 하였다. 이명빈은 여러 대신(大臣)들의 뒤에 있었고 여러 대신들은 홍인한의 뒤에 있었으므로 모두가 홍인한의 좌전(坐前)에서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또 임금의 하교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듣지도 못하였다. 이명빈이 마침내 전교를 써내지 못하였고 대신들이 또 우러러 대답할 말의 내용을 알지 못하였다. 한참 있다가 홍인한이 여러 대신들과 함께 임금의 하교를 도로 정지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경 등이 이와 같으니 우선 부표(付標) 등의 일에 대한 말부터 하겠다. 요즈음 부표가 여러 중관(中官)의 손에 맡겨져 있다. 시험삼아 순감군(巡監軍)을 말한다면, 수문장(守門將)의 무리들이 모두가 시골 사람들이고 중관들과 또한 서로 친한 자가 없지 않을 것이니, 저희끼리 부탁하여 순감군을 모면(謀免)하는 폐단이 없을지 누가 알겠느냐? 만일 혹시라도 이러한 폐단이 있게 된다면 나라 일이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하니, 한익모(韓翼謨)가 말하기를,
"성명(聖明)께서 위에 계신데 그들이 어찌 감히 그렇게 하겠습니까? 더구나 성상의 총명이 전일보다 줄지 않아서 조금도 빠뜨리는 일이 없으니, 근심할 것이 못됩니다."
하였다. 임금이 영의정이 아뢰는 말을 듣고 문을 닫고, 큰소리로 대신에게 하교하기를,
"경 등은 빨리 물러가도록 하라. 오늘날 조정의 일을 경 등과 함께 의논하겠는가? 경 등은 왜 이와 같이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 말하여 보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의 기력도 더욱 피로할 뿐이다."
하니, 여러 신하들이 마침내 물러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82책 125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04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군사-군역(軍役)
- [註 233]노창(臚唱) : 의식의 절차를 소리 높여 창도(唱導)하는 일. 통례원의 종6품관인 인의(引儀)가 의식의 절차를 고저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일.
- [註 234]
○癸卯/上御集慶堂, 行常參。 上御笠子, 倚東宮而坐, 臚唱未畢, 還臥枕上。 曰朝事國事, 猶是歇後語。 卿等觀之, 予氣可以知於此一事?" 厲聲曰: "從今以後, 大臣尙可爭之乎? 予氣如此, 酬應益難。 自古有例之事, 予方有思矣。" 翼謩曰: " 聖敎雖如此, 何敢遽然承奉乎?" 麟漢曰: "此豈臣子奉承之事乎?" 尙喆曰: "何爲此非常之敎也?" 溵曰: "何以有此下敎乎?" 上曰: "不緊公事, 則入于東宮達下, 而如疏批及公事之緊急者, 則予與世予相議爲之。 稍待數日, 觀其手熟, 而當有加於此之下敎矣。" 上聞領左相所奏, 震怒, 乃親自閉戶, 敎諸臣速退出。 又曰: "今日朝廷事, 其可與卿等爲之乎? 問於路傍長丞之外, 更無可恃矣。" 大臣降至殿陛, 上使中官傳于大臣曰: "大臣其可恃乎?" 諸臣奏事未及畢, 上痰候添劇, 大臣以下請退。 少選痰候差降, 顧謂大臣曰: "予氣如此。 予病亦自知, 自古有例之事, 今日予欲斷而行之。 予之前後之敎若何, 而卿等聞若不聞, 如風過耳。 卿等之視八十人君, 何其迫切之甚也? 予有所思之事, 故先諭于卿等, 卿等今日更何持難乎?" 諸大臣未及仰對, 麟漢從諸大臣後, 進前伏曰: "此何敎也? 是豈臣子奉承之事乎? 寧伏鐵鉞之誅, 決不敢奉行也。" 諸大臣以次仰奏訖, 麟漢又曰: "今日奉此上敎, 出閤外則其可曰有臣分乎? 殿下躬親萬機, 少無留滯, 臣等每與相對贊賀。 何爲而有此過中之敎耶? 臣不忍仰聞矣。" 又請與諸大臣退出, 上曰: "卿等之事奇怪矣。" 上又曰: "方欲命書傳敎, 卿等勿退可也。" 上命承旨李命彬進前, 書傳敎曰: "不緊公事, 入于東宮達下, 而如疏批及時急公事, 予與世孫相議爲之。 稍待數日, 觀其手熟, 當有加於此之下敎矣。" 時麟漢遮坐承旨之前, 不但使承旨不得書, 亦使不得聞上敎之如何。 又以上敎之呼書傳敎, 謂以口傳下敎諸大臣者。 是以承旨抽管, 以俟傳敎之命書, 而麟漢又以不必如是下敎之意, 高聲仰奏, 上敎承旨曰: "所書傳敎讀之。" 聖意以爲, 俄者呼書之傳敎, 已爲書之故也。 麟漢又抗聲曰: "不敢聞之敎, 爲臣子者, 誰敢讀之乎?" 時東宮侍坐, 側聞此敎, 憂懼不知所出, 謂麟漢曰: "此事非可參涉者, 而事勢迫隘, 固當上疏辭避。 雖數字文跡有之然後, 可以陳疏, 必須書數字榻敎, 以開予陳疏之路。" 麟漢默不應答, 顧見承宣, 揮手而止之。 李命彬在諸大臣後, 諸大臣在麟漢之後, 俱不知麟漢坐前事之如何, 亦不諦聽上敎之如何。 李命彬遂不得書出傳敎, 大臣又不知所以仰對之說矣。 已而麟漢與諸大臣請還寢上敎, 上曰: "卿等如此, 姑先以付標等事言之。 近來付標, 付諸中官之手。 試以巡監軍言之, 守門將輩, 皆是鄕曲之人, 與中官亦不無相親者, 安知無干囑圖免之弊耶? 若或有如此之弊, 則於國事將若之何?" 翼謩曰: "聖明在上, 渠輩何敢乃爾? 又況聖聰無減於前日, 少無遺漏之事, 不足爲憂也。" 上聞領相奏, 閉戶厲聲敎大臣曰: "卿等速退。 今日朝廷事, 可與卿等議之乎? 卿等何故若是困我? 言之無益。 予氣又甚薾然矣。" 諸臣遂退出。
- 【태백산사고본】 82책 125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504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군사-군역(軍役)
- [註 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