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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25권, 영조 51년 11월 20일 계사 1번째기사 1775년 청 건륭(乾隆) 40년

《어제자성편》《경세문답》을 진강하도록 명하고 세손에게 전선하는 것 등에 대해 논의하다

임금이 집경당에 나아가 시임 대신·원임 대신을 불러 보고 《어제자성편(御製自省編)》, 《경세문답(警世問答)》을 진강(進講)하도록 명하였다. 동궁(東宮)과 영돈녕(領敦寧) 김양택(金陽澤), 영의정 한익모(韓翼謨), 판부사(判府事) 이은(李溵), 좌의정 홍인한(洪麟漢), 우부승지 안대제(安大濟), 가주서(假注書) 박상집(朴相集), 기사관(記事官) 서유련(徐有鍊)·성정진(成鼎鎭)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리자, 임금이 이르기를,

"탕평(蕩平)이 어느 때에 있었느냐?"

하니, 한익모가 아뢰기를,

"홍범(洪範)에 보이는데, 한(漢)·당(唐) 이후에는 그것이 없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신기(神氣)가 더욱 피곤하니 비록 한 가지의 공사(公事)를 펼치더라도 진실로 수응(酬應)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데도 어찌 만기(萬幾)를 수행하겠느냐? 국사(國事)를 생각하느라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다. 어린 세손이 노론(老論)을 알겠는가? 소론(少論)을 알겠는가? 남인(南人)을 알겠는가? 소북(少北)을 알겠는가? 국사(國事)를 알겠는가? 조사(朝事)를 알겠는가? 병조 판서를 누가 할 만한가를 알겠으며, 이조 판서를 누가 할 만한가를 알겠는가? 이와 같은 형편이니 종사(宗社)를 어디에 두겠는가? 나는 어린 세손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알게 하고 싶으며, 나는 그것을 보고 싶다. 옛날 나의 황형(皇兄)219) 은 ‘세제(世弟)가 가(可)한가? 좌우(左右)가 가한가?’라는 하교를 내리셨는데, 지금의 시기는 황형이 계실 때에 비하여 백 배가 더할 뿐이 아니다. 〈전선(傳禪)한다는〉 두 자(字)를 하교하고자 하나, 어린 세손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우므로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청정(聽政)하는 일에 이르러서는 본래부터 국조(國朝)의 고사(故事)가 있는데, 경 등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니, 홍인한이 말하기를,

"동궁은 노론이나 소론을 알 필요가 없고, 이조 판서이나 병조 판서를 알 필요도 없습니다. 더욱이 조사(朝事)까지도 알 필요 없습니다."

하였다. 여러 대신(大臣)들이 말하기를,

"성상의 안후가 더욱 좋아지셨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내 뜻은 이러한데 경 등이 몰라 주니 참으로 개탄스럽도다. 심법(心法)을 어린 세손에게 전하여 주려고 하는데, 《자성편》, 《경세문답》은 곧 나의 사업(事業)이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일후(日後)에 소대(召對)할 때에는 《경세문답》《자성편》을 가지고 들어오게 하라."

하였다. 이때 임금의 연세가 이미 대질(大耋)220) 에 올라 몸에 병이 해마다 더 많아지니 조용히 조섭을 하는 중에 늘 군국(軍國)의 여러 가지 일들로 근심하였다. 이해 10월 7일에 연화문(延和門)에서 상참(常參)을 행하였는데, 담후(痰候)가 매우 심하여 여러 신하들이 감히 일을 아뢰지 못하고, 임금은 곧 대궐로 돌아와서 왕세손에게 하교하기를,

"지난 여름 너에게 명례궁(明禮宮)의 일을 살펴보도록 명하였는데, 이는 비록 작은 일이지마는 궁부(宮府)221) 와 다를 것이 없다. 근래의 대소 사전(祀典)에 꼭 너를 시켜 대신 섭행하게 한 것은 내가 깊이 생각한 것이다. 오늘 나의 근력을 시험하여 보려고 하나, 스스로 버틸 방도가 전연 없다. 어린 세손이 숙성하여 나를 지성으로 섬기니, 결단코 나의 소망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때를 당하여 기무(機務)를 대신 듣게 한다면 내 생전에 친히 볼 수 있을 터이니, 어찌 빛나고 아름답지 않겠느냐?"

하니, 왕세손이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이 때에 이르러 시임 대신·원임 대신이 집경당에서 입시하였는데, 임금이 이르기를,

"근래 나의 신기(神氣)가 더욱 피로하여 한 가지의 공사를 펼치는 것도 역시 수응하기가 어렵다. 이와 같고서야 만기(萬幾)를 처리할 수 있겠느냐? 국사를 생각하니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은 지가 오래 되었다. 어린 세손이 노론이나 소론을 알겠으며 남인이나 소북(小北)을 알겠는가? 국사를 알겠으며, 조정 일을 알겠는가? 병조 판서를 누가 할 만한가를 알겠으며 이조 판서를 누가 할 만한가를 알겠는가? 이와 같은 형편이니 종사(宗社)를 어디에 두겠는가? 옛날 나의 황형(皇兄)께서는 ‘세제(世弟)가 가한가? 좌우의 신하가 가한가?’라는 하교를 내리셨는데, 오늘의 시기는 더욱 황형의 시기보다 더할 뿐만이 아니다. 두 자를 【대개 전선(傳禪) 2자를 가리킨다.】 하교하려 하나 어린 세손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렵다. 청정(聽政)에 있어서는 우리 왕조(王朝)의 고사(故事)가 있는데, 경 등의 의향은 어떠한가?"

하니, 적신(賊臣) 홍인한(洪麟漢)이 앞장서서 대답하기를,

"동궁께서는 노론과 소론을 알 필요가 없으며,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조정의 일에 이르러서는 더욱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한참 동안 흐느껴 울다가 기둥을 두드리며, 이르기를,

"경 등은 우선 물러가 있거라."

하니, 대신 이하가 문 밖으로 나갔다. 다시 입시를 명하고, 임금이 이르기를,

"나의 사업(事業)을 장차 나의 손자에게 전할 수 없다는 말인가? 나는 이와 같이 쇠약해졌을 뿐 아니라 말이 헛나오고 담이 끓어 오르는 것이 또 특별한 증세이니, 크게는 밤중에도 쪽지[寸紙]를 내보내어 경 등을 불러 들이게 될 것이고 작게는 담의 증세가 악화되어 경 등이 비록 입시하더라도 영의정이 누군지 좌의정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중관(中官)들을 쫓아내 버리면 나라의 일이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지금 다시 경 등에게 말할 수가 없다. 차라리 나의 손자로 하여금 나의 심법(心法)을 알게 하겠다. 이 다음부터 동궁이 소대할 때에는 《자성편》《경세문답》을 진강(進講)하여 다만 나의 사업을 알려서 후세로 하여금 나의 마음을 모르지 않게 하라."

하였다.

신(臣)이 삼가 살펴보건대, 옛날의 성인은 장차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하여 반드시 천하를 다스리는 법까지 전하여 주었으니, 대순(大舜)222) 이 전한 정일 집중(精一執中)의 훈계가 이것이다. 다만 이 두편의 어제(御製)는 곧 우리 성조(聖祖)223) 께서 50년 동안 몸소 실천하고 마음에 체득한 것을 모훈(謨訓)으로 삼는 글을 내놓아 우리 성상(聖上)224) 에게 넘겨 주었으니, 부탁의 친절함과 주고받음의 광명(光明)은 참으로 훌륭하였다. 아! 성상(聖上)225) 께서 수고로움을 쉬시고 조용히 조섭을 하시는 때를 당하여 종사(宗社)가 의지할 것이나 신민(臣民)이 바라는 바가 오직 우리 왕세손뿐인데, 국사나 조정(朝政)을 우리 세손께서 알지 못하면 누가 알아야 하겠는가? 또 더군다나 실패한 아버지의 대를 이은 적자로서 떳떳한 직분인 대리 청정(代理聽政)하는 것은 열성(列聖)의 고사(故事)에 있는 것이겠는가? 진실로 국사(國事)에 몸담은 대신이 있다면, 본디 명령하지 않아도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 저 적신은 보필(輔弼)하는 지위에 있으면서 임금의 간곡하신 하교를 듣고도 오만하게 감동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내 감히 공공연히 드러내놓고 저희(沮戱)226) 하여 그 말이 비할 데 없이 아주 극도로 패악하여 신하의 예(禮)를 회복할 수가 없었다. 우리 성상께서 부탁하고 수수(授受)하신 고심(苦心)과 대계(大計)로 하여금 달포가 지나도록 시간을 끌게 해서 막고 시행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가 안팎으로 체결(締結)하고 앞뒤로 선동(煽動)한 죄를 살펴보면 우선 그 죄는 셀 수 없을 정도인데, 곧 이 하나의 연주(筵奏)를 가지고 보더라도 반역하려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요, 역적의 죄안(罪案)이 갖추어진 것이다. 조진(朝診) 때에 홍인한이 ‘세 가지 알 필요가 없다는 말[三不必知說]’로써 임금에게 우러러 대답하였는데 혜경궁(惠慶宮)께서 이 말을 듣고 작은 종이에 써서, 반드시 수고를 덜고자 하는 성상의 뜻이라고 자세하고도 간곡한 하교를 홍인한에게 통지하였으나, 그가 석연(夕筵)에 이르기까지도 주대(奏對)한 것은 조진(朝診) 때와 같았다. 아! 만일 홍인한이 과연 성상의 본뜻을 알지 못하고 조금도 딴마음이 없었다면 ‘세 가지 알 필요가 없다’는 말은 신자(臣子)로서 감히 입에서 나올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조진(朝診) 때에 대답한 것은 그래도 임금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당황한 마음을 미봉하려고 하였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 혜경궁의 글을 본 뒤에 입시하여 주대(奏對)한 것도 또다시 전과 같았으니, 조진 때엔 비록 임금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알고 난 뒤에도 그 말이 똑 같았다면 그에게 과연 딴 마음이 없었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홍인한 일당이 이 일에 대하여 발명(發明)하려고 하였으나 참으로 수고를 덜고 싶어하는 성상의 뜻임을 몰랐다고 하는 등의 말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감히 내어놓고 공공연히 말하지 못한 이것은, 그날의 글로써 알린 뒤에도 오히려 다시 사실과 배치(背馳)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먹은 마음의 자취가 나타난 것이 이와 같았으니 비록 그들이 생사(生死)를 같이하는 당(黨)으로 하여금 변명하게 하더라도 그 사이에 딴 뜻이 없었다고 감히 말하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82책 125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03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

○癸巳/上御集慶堂, 召見時、原任大臣, 命以御製《自省編》《警世問答》進講。 東宮領敦寧金陽澤、領議政韓翼謩、判府事李溵、左議政洪麟漢、右副承旨安大濟、假注書朴相集、記事官徐有鍊成鼎鎭進伏, 上曰: "蕩平在於何時乎?" 翼謩曰: "見於《洪範》, 而以後則無之矣。" 上曰: "神氣益薾, 雖一張公事, 誠難酬應。 如此而爲萬幾乎? 言念國事, 夜不能寢者久矣, 沖子知老論乎? 知少論乎? 知南人乎? 知少北乎? 知國事乎? 知朝事乎? 知兵判誰可爲, 吏判誰可爲乎? 如此而置宗社於何地? 予欲使沖子爲之, 予欲見之矣。 昔我皇兄, 有世弟可乎? 左右可乎之敎, 今時比皇兄時, 尤不啻百倍矣。 欲爲二字下敎, 而恐傷沖子之心, 故泯默。 而至於聽政等事, 自有國朝故事, 卿等之意何如?" 麟漢曰: " 東宮不必知老論、少論, 不必知吏判、兵判。 尤不必知朝事矣。" 諸大臣曰: "聖候益勝矣。" 上曰: "予意如此, 卿等不知, 誠慨然矣。 欲授心法於沖子, 《自省編》《警世問答》, 卽予之事業也。" 上曰: "日後召對時, 《警世問答》《自省編》捧入。" 時聖壽已躋大耋, 愆候逐歲有加, 靜攝中每以軍國機務爲憂。 是歲十月七日, 行常參於延和門, 痰候添劇, 諸臣不敢奏事, 上卽爲還內, 下敎于王世孫曰: "昨夏命汝看檢明禮宮事, 此雖小事, 宮府無異。 近來大小祀典, 必令汝替攝者, 予意深矣。 今日欲試予筋力, 而萬無自强之道矣。 沖子夙成, 事予至誠, 決不負予所望。 及此時代聽機務, 則於吾身親見, 亦豈不光鮮乎?" 王世孫不敢對。 至是時、原任大臣入侍于集慶堂, 上曰: " 近來神氣益薾, 雖一張公事, 亦難酬應矣。 如此而爲萬機乎? 言忿國事, 夜不能寢久矣。 沖子老論乎? 小論乎? 知南人乎? 少北乎? 知國事乎? 知朝事乎? 知兵判誰可爲, 吏判誰可爲乎? 如此而置宗社於何地也? 昔我皇兄, 有世弟可乎? 左右可乎之敎, 今之時, 尤不啻皇兄時矣。 欲爲二字 【蓋指傳禪二字。】 下敎而恐傷沖子之心。 至於聽政, 自有國朝故事, 卿等之意何如?" 賊臣麟漢挺身以對曰: "東宮不必知老論、少論, 不必知吏判、兵判, 至於朝廷事, 尤不必知矣。" 上歔欷久之, 叩楹曰: "卿等姑爲退去。" 大臣以下, 出至戶外。 復命入侍, 上曰: "予之事業, 其將不得傳于我孫乎? 予不但衰耗如此, 譫語痰升, 又是別症, 大則夜半出寸紙召卿等, 小則痰候轉劇, 卿等雖入侍, 予不知領相左相之爲何人。 如中官之驅逐, 則國事其將奈何? 心腹之言, 今不可更言於卿等。 毋寧使我孫, 知予心法。 此後東宮召對, 《自省編》《警世問答》進講, 但知予事業, 毋使後世不知予心。" 臣謹按, 古之聖人, 將以天下傳於人, 必幷與治天下之法而傳之, 大舜精一之訓是也。 惟此兩編御製, 卽我聖祖五十年躬行心得, 發爲謨訓之書, 而擧以畀之於我聖上, 付托之丁寧, 授受之光明, 猗歟盛哉。 嗚呼! 當聖上倦勤靜攝之時, 宗社之所依, 臣民之所望, 惟我王世孫, 國事朝政, 我世孫不知, 伊誰當知? 又況幹蠱丕子之常職代聽, 列聖之故事? 苟有體國大臣, 固當不命其承, 而噫彼賊臣, 身居輔弼之地, 耳聞惻怛之敎, 不惟慢不感動, 乃敢公肆沮戲, 其言之絶悖無倫, 無復人臣之禮。 使我聖上付托授受之苦心大計, 閱月淹時, 格而不行。 顧其中外締結, 前後煽動之罪, 姑不暇數, 卽此一筵奏而將心露矣, 逆案具矣。 朝診麟漢以三不必知之說仰對矣, 惠慶宮聞之, 以小紙具道, 必欲分勞之聖意, 縷縷懃懇之下敎, 通于麟漢, 而及至夕筵, 其所奏對, 又如朝診。 噫! 使麟漢果不知聖上之本意, 而少無他心腸, 三不必知之說, 有非臣子所敢發諸口者, 而然朝診時所對, 猶可諉之於未知上心, 出於彌縫之計, 而及見惠慶宮書示之後, 入侍奏對, 又復如前, 朝診時雖曰未知上心, 而旣知之後, 辭語如一者, 其果無他心乎? 是故黨雖欲發明於本事, 而至於不知眞欲分勞之聖意等說, 猶不敢顯言公道者, 以其伊日書通後, 猶復背馳也。 心跡之顯著者如此, 雖使渠輩之血黨言之, 其敢曰無他意於其間乎?


  • 【태백산사고본】 82책 125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503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