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손이 상소하여 하례를 받을 것을 청하다
왕세손(王世孫)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나라의 경사가 어느 해인들 없겠습니까마는 어찌 올해와 같은 해가 있겠으며, 어느 날인들 그렇지 않으리오마는 어찌 오늘과 같은 날이 있겠습니까? 올해는 곧 보산(寶算)030) 이 90을 바라보는 해이며, 오늘은 곧 성상의 옥체가 평상시처럼 회복된 날입니다. 약원(藥院)의 관원이 옮겨서 직숙(直宿)을 하고 중외(中外)에서 걱정하고 황급해 한 것이 무려 5일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천(上天)의 도움을 받고 조종(祖宗)의 신령(神靈)의 돌보심을 힘입어 일찍이 두어 시간이 못되어서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가 곧바로 천화(天和)031) 를 얻게 되었으니, 이것은 단지 성상께서 타고 나신 강건(强健)함이 보통 사람보다 탁월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상천과 조종의 음즐(陰騭)032) 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으니, 이것은 곧 성상께서 상천과 조종이 내려주신 복을 받은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삼대(三代)033) 가 융성할 때에도 역시 이와 같이 비상한 대경(大慶)이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돌아 보건대, 소자의 기쁘고 좋아서 축원하는 정성이 저절로 얼굴에 나타나서 말로 표현하게 되었으며, 말로 표현하게 되어서는 글이 이루어 진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넓은 천하 창생(蒼生)으로 어리석은 지아비, 어리석은 지어미 그리고 보통의 혈기 있는 부류에 이르러서도 고무(鼓舞)하고 동탕(動盪)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머리를 들고 발꿈치를 돋우며 모두 구중(九重)을 바라보고 천세(千歲)를 부르기를 원하니, 조정에 있는 신료(臣僚)들의 마음은 마땅히 어떠하겠으며, 조정에 있는 신료들의 마음 또한 저절로 그만두지 못하는데 소자(小子)가 밤낮으로 목마른 것 같이 바라던 마음이 더욱 어떠하겠습니까? 이번에 나라의 경사를 높은 상천(上天)과 조종(祖宗)의 혼령에서 받았다면, 아무리 우리 성상께서 늘 겸양[撝謙]을 덕(德)으로 삼으실지라도, 어찌 우러러 신령에게 보답하고 아래 〈사람들의〉 뜻에 부응하는 거조가 없겠습니까? 이것은 신의 진청(陳請)을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성상께서 역시 묵묵히 관찰하셨던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천지의 부모이신 성상께서는 특별히 청원한 바를 윤허하여 곧바로 의조(儀曹)로 하여금 좋은 날을 가려서 빨리 욕례(縟禮)를 행하고 병이(秉彛)를 함께 얻는 마음을 이루도록 하소서. 그리고 삼가 생각하건대, 근일에 비록 음악을 정지하도록 한 성명(成命)이 있었으나, 포쇄(曝曬)034) 하는 행차에서 이미 고취(鼓吹)하도록 허락을 하였다면 대체로 소중히 여기는 점에는 마땅히 달리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나라의 경사는 진실로 고유(告由)하고 진하(陳賀)함이 마땅하니 그 소중함을 어찌 포쇄하는 행차에 비교하겠습니까? 그리고 대정(大庭)의 법악(法樂) 역시 잠깐이라도 폐지할 수 없습니다. 지금 유독 관약(管籥)의 소리를 듣지 못하여 억압되고 답답한 심정이 늘 마음속에 간절합니다. 이에 하례를 청하는 상소의 말미에 두어 마디 진달하였으니 성명(聖明)께서 깊이 헤아려 주신다면 신이 크게 희망하고 간절히 비는 지극함을 금할 길이 없겠습니다. 삼가 절하고 소(疏)를 올려 아룁니다."
하니, 답하기를,
"너의 글을 살펴보고 너의 정성을 칭찬한다. 지난 달의 3일과 이달의 1일은 아침에는 조금 나았다가 금방 다시 병기운이 있었는데, 곽란[癨]도 아니고 산증[疝]도 아니어서 형용하기도 어렵고 형상하기도 어려웠으며, 어제 아침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상치 않아서 특별히 봉조하(奉朝賀)와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을 불렀으니, 나의 생각이 매우 심각하였다. 그러나 겨우 두어 마디 말을 하고는 잠든 것인지 혼미한 것인지 취한 것도 같고 멍청한 것 같기도 하다가 3시간 정도 되자 억지로 두어 차례 토하고 거기에다 설사까지 하며 토사(吐瀉)도 겸하였는데, 추운 듯 하면서도 춥지는 않았으나 수족은 거의 차가웠고 심지어는 몸이 떨렸으며 체기(滯氣)가 다시 시작되어서 자량(自量)하기가 진실로 어려울 듯하였다. 때문에 유시(諭示)를 하려고 불렀으나 겨우 두어 마디하고 혼수상태가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제대로 자는 것이겠는가? 진실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고 이를 만한다. 지금 나의 나이 81이니 이 모두가 오르내리는 〈조상의 신령이〉 내려주신 은혜라고 말한다. 오늘의 조선(朝鮮)은 단지 쇠약한 임금과 어린 세손(世孫)이 있을 뿐인데, 올해에 그 임금의 기운이 이와 같기 때문에 종국(宗國)을 위하여 불초한 나와 손자를 불쌍하게 여기니, 추측건대 〈조상의 신령이〉 돌아보고 도와서 귀를 끌어 당겨 알려주시고 얼굴을 대하여 명령하시는 듯하니 이것이 어찌 감히 우연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진장(陳章)하여 청하는 것을 허락하였는데 그 글이 지난 번의 글보다 나으니 두어 달 사이에 문장이 어찌 그렇게 숙성하였는가? 그 글 중에 저 하늘이니, 〈조상의 신령이〉 오르내리느니라는 글귀에 이르러서는 바로 너의 할아버지의 뜻과 똑같으므로 눈물이 자리에 흘러 내림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고 미진(尾陳)이라는 두 글자는 네가 어떻게 이 글을 배웠는지? 나의 경우로 말하면 너무 지나치다고 하겠다. 할아버지가 그 손자에게, 손자가 그 할아버지에게 밤낮으로 곁에 있었는데, 할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지 못한 것은 어찌해서인가? 내가 비록 덕이 적지만 어떤 마음으로 그 손자를 위하는데 그 옛날을 잊어버렸겠는가? 매우 칭찬한 나머지 열 글자의 옛말로 너에게 힘쓰도록 하고자 하니, 그것은 곧 주(周)나라에서 숭상하던 문식[文]은 줄여서 적게 하고, 하(夏)나라에서 숭상하던 성실[忠]을 활용하여 성취하도록 하라. 그리고 이번 일은 전부 우러러 사례함에서 말미암은 것인데, 오르내리는 〈조상의 신령이〉 불초를 돌아보고 돕기를 그 저녁을 넘기지 않았으니, 불초 소자 또한 어찌 감히 그날을 넘기겠는가? 바로 고(告)하고 우러러 답하는 것이 마땅하다. 내일 새벽의 고유제(告由祭) 중에서 종사(宗社)와 영녕전(永寧殿)은 이번에 대신(大臣)을 보내어 섭행(攝行)하고, 저경궁(儲慶宮)·육상궁(毓祥宮)·휘령전(徽寧殿)에는 중신(重臣)을 보내어 섭행하도록 하라. 비록 고취(鼓吹)를 정지하였는데, 지금 내 기운이 좋아져서 능히 정치를 하는 데 힘쓸 수 있다고 여기나 일어서기에는 과연 어렵다. 융복(隆福)이 가까이 있으니 찬미하고 절하는 그 소리가 조상의 신령에게 통하도록 하고자 한다. 일영문(日永門)의 와내(臥內)에서 갓을 쓰고 하례를 받을 것이니, 너와 백관들은 곤의(袞衣)를 입고 관대(冠對)를 쓰고 예를 행하도록 하라. 나도 역시 〈글의〉 끝에 부쳐 증손에게 경사가 있기를 깊이 너에게 빌어 마지 않는다."
하고, 이어서 하교하기를,
"도승지는 이 비답을 가지고 세손(世孫)에게 전하여 유시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1책 12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470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註 030]보산(寶算) : 임금의 나이.
- [註 031]
천화(天和) : 원기(元氣).- [註 032]
음즐(陰騭) : 하늘이 은연중에 사람의 행위를 보고 화복을 내림.- [註 033]
삼대(三代) : 하(夏)·은(殷)·주(周).- [註 034]
포쇄(曝曬) : 사고(史庫)의 서적을 점검하고 바람을 쏘이는 일.○乙酉/王世孫上疏曰:
伏以邦慶, 何歲不有, 而豈有若今歲, 何日不然, 而豈有若今日哉? 今歲卽寶算望九之歲也, 今日卽聖候平復之日也。 藥院移直, 中外憂遑, 凡有五日。 荷上天之祐, 賴祖宗之靈, 曾未數時, 汗水浹洽, 旋得天和, 此非但聖上稟受强健, 卓越凡人, 抑亦上天祖宗之陰隲於不知之中者, 的然可見, 則聖上之受賜於上天與祖宗者無疑矣。 三代盛時, 亦未聞如此不常有之大慶。 顧小子懽忻忭祝之誠, 自不覺形於色而發於言, 發於言而成於文也。 至如薄海蒼生愚夫愚婦, 凡有血氣之類者, 莫不皷舞動盪。 翹首跂足, 皆願望九重而呼千歲, 則在廷臣僚之心當如何, 在廷臣僚之心亦不自已, 則在小子日夜如渴之心, 尤當如何哉? 今番邦慶, 受賜於高高冥冥, 則雖以我聖上恒日撝謙之德, 亦豈無仰答下副之擧乎? 此不待臣之陳請, 聖上亦有以默察矣。 伏願天地父母, 特允所請, 卽令儀曹以涓吉日, 亟行縟禮, 俾遂秉彝同得之心焉。 且伏念近日雖有停樂之成命, 旣許皷吹於曝曬之行, 則凡於所重, 宜無異同。 而目下邦慶, 固當告由陳賀, 其所重豈比於曝曬之行哉? 大庭法樂, 亦不可須臾廢也。 至今獨不聞管籥之音, 抑鬱之忱, 常切于中。 廼於請賀之疏, 尾陳數語, 惟聖明之體諒焉, 臣無任顒望祈懇之至。 謹拜疏以聞。
答曰: "省爾之章, 嘉爾之誠。 前月三日, 今月一日, 朝則稍勝, 旋復有氣, 非癨非疝, 難形難狀, 至於昨朝, 尤涉殊常, 特召奉朝賀時原任, 意蓋深矣。 僅能數語, 其宿乎其昏乎? 若醉若癡, 將至三時, 强吐數次, 加以泄焉, 吐瀉兼而似寒非寒, 手足幾乎厥冷, 甚至於戰慄, 滯氣復作, 自量誠難。 故欲諭而召, 僅數語而昏睡, 此豈眞宿? 誠可謂醉生。 今予八旬一, 咸曰陟降賜焉。 今日朝鮮只有衰君與沖子, 而其君逢今歲氣若此, 故爲宗國悶不肖與孫, 丁寧眷祐, 若耳提面命, 於此何敢曰偶然? 故許爾請陳章, 而其章勝於頃章, 數月之間, 文何夙成? 至於稱彼蒼陟降句語, 正若爾祖意, 不覺涕流于席。 至於尾陳二字, 汝何學此文, 予則曰濫矣。 祖其孫孫其祖, 夙夜在側, 莫體祖心何也? 予雖涼德, 何心爲其孫而忘其昔乎? 深嘉之餘, 以十字古語勉爾, 卽少損周之文, 致用夏之忠。 此擧專由仰謝, 而陟降眷不肖不踰其夕, 不肖小子, 亦何敢踰日? 其宜卽告而仰答也。 明曉告由祭, 宗社永寧殿, 今番遣大臣攝行, 儲慶宮、毓祥宮、徽寧殿, 遣重臣攝爲。 雖停皷吹, 今予氣勝, 可能致力資政, 起立果難。 隆福在近, 欲以贊拜聲徹。 當於日永門臥內, 着笠受賀, 爾與百官, 袞衣冠帶成禮焉。 予亦有附於尾者, 曾孫有慶, 深有祝於爾。" 仍敎曰: "都承旨持此批答, 傳諭世孫。"
- 【태백산사고본】 81책 122권 3장 B면【국편영인본】 44책 470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註 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