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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실록 121권, 영조 49년 10월 8일 계사 1번째기사 1773년 청 건륭(乾隆) 38년

지평 황택인이 상소하여, 윤득흠·남태헌·정여익의 파직 등을 청하다

지평 황택인(黃宅仁)이 상소하여, 제도(諸道)에 엄히 신칙하여 급재(給災)를 정밀하게 살피기를 청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아산 현감(牙山縣監) 윤득흠(尹得欽)은 멍청하고 어두우며 전혀 지각(知覺)이 없어서, 예사로운 청리(聽理)266) 도 스스로 처단하지 못하여 한 가지 일을 두 번 송사(訟事)하게 하였습니다. 세미(稅米)를 받을 때에는 지나치게 큰 말[斗]을 써서 더 징수하는 것이 매석(每石)마다 두어 말에 이르렀으며, 포구(浦口)에서 고기를 잡고 해초를 채취하는 백성에게 약간의 푼돈[分錢]을 주고 징색(徵索)함이 번거롭고 가혹하였습니다. 송화 현감(松禾縣監) 남태헌(南泰憲)은 두 차례 거중(居中)267) 을 일미(一味)로 버티고 앉아 법을 어겨가며 향임(鄕任)의 제수와 파면을 모두 뇌물을 받는 데로 귀착(歸着)시켰습니다. 고성 현령(固城縣令) 정여익(鄭汝益)은 간사한 기생(妓生)이 안에서 정사를 해롭게 하고 교활한 아전이 밖에서 권세를 농락하였으며, 그 곡식이 귀할 때에는 쭉정벼로서 색책(塞責)을 하고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가, 실곡(實穀)으로 받아 돈을 만들어서 오로지 사복(私腹)을 채우는 것으로 일을 삼았습니다. 세 고을 수령은, 견책(譴責)하여 파면하는 율로써 시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형조 좌랑(刑曹佐郞) 김기장(金基長)은 본래 주색(酒色)의 무리로서 추패(醜悖)한 일이 많으므로 침 뱉고 더럽게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제까지 벼슬에 있으면서 전혀 검속(檢束)함이 없으니, 간태(刊汰)268) 의 율을 시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우악(優渥)한 말로 비답(批答)하고, 세 고을 수령의 일은 입시(入侍)하여 발계(發啓)269) 하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0책 12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46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재정-전세(田稅) / 금융-화폐(貨幣)

  • [註 266]
    청리(聽理) : 소송 처리.
  • [註 267]
    거중(居中) : 도목 정사에서 중등(中等)의 고과 점수를 받음.
  • [註 268]
    간태(刊汰) : 파면.
  • [註 269]
    발계(發啓) : 의금부(義禁府)에서 처결한 죄인에 대해 미심한 점이 있을 적에 사간원과 사헌부에서 이를 다시 조사하여 아뢰는 것.

○癸巳/持平黃宅仁上疏, 請嚴飭諸道, 精審給災, 因言: "牙山縣監尹得欽, 儱侗昏聵, 全無知覺, 尋常聽理, 不能自斷, 一事再訟。 稅米捧上之時, 濫用大斛, 加徵至於數斗, 浦口漁採之民, 略給分錢, 徵索煩苛。 松禾縣監南泰憲兩次居中, 一味蹲冒, 鄕任除汰, 盡歸受賂之方。 固城縣令鄭汝益, 奸妓蠱政於內, 猾吏弄柄於外, 當其穀貴之時, 空殼塞責, 分糶貧民, 實穀作錢, 專事肥己。 三邑守令, 宜施譴罷之典。 刑曹佐郞金基長, 本以酒色之徒, 事多醜悖, 人莫不唾鄙, 及今筮仕, 全不檢束, 宜施刊汰之典。" 上優批答之, 三邑守令事, 命入侍發啓。


  • 【태백산사고본】 80책 12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44책 463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관리(管理)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재정-국용(國用) / 재정-전세(田稅) / 금융-화폐(貨幣)